나는 스포츠에 그리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것도 있었지만, 누군가를 이겨야만 살아남는 경쟁의 세계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승리를 위해 상대를 짓밟아야 하는 자극적인 세계. 그래서 나는 스포츠와 거리를 두고 지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경기가 있었다. 2024년 파리올림픽, TV를 켜 놓고 무심코 채널을 돌리던 중이었다. 화면 속에서 한 선수가 벽을 거침없이 오르고 있었다. 클라이밍 스포츠이다. 절벽을 오르며 정상에서 버튼을 눌러야 하는 경기였다. 평균 4분이면 끝나는 짧은 시간, 하지만 그 4분을 위해 선수들은 몇 년을 갈고닦았을 것이다.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경기는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목표 지점에 도달하면 선수들은 온 힘을 쥐어짜 마지막 버튼을 눌러야 했다. 하지만 출발점이 결승선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걸, 이 스포츠는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내 눈을 사로잡은 선수가 있었다.
벽을 오르는 치타
그 선수는 마치 치타처럼 빠르고 날렵했다. 손과 발을 이용해 순식간에 벽을 타고 올랐다. 다른 선수들보다 확연히 앞서 나가며 결승점을 향해 질주했다. “이 속도라면 3분 안에 도착하겠는데?” 나는 긴장하며 그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의 발이 미끄러졌다.
그렇게 빠르게 오르던 선수의 몸이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졌다. 바닥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위기였다. 온몸이 허공을 가르며 흔들렸다. 관중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속으로 외쳤다.
“일어나! 다시 일어나! 포기하지 마!”
그 선수는 페이스를 가다듬고 다시 벽을 붙잡았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다잡은 듯했다. 그런데 다시 오르기 전에 그는 주위를 살폈다. 다른 선수들은 얼마나 올라갔을까? 자기 위치를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그냥 앞만 보고 올라가 줘!’ 나는 속으로 외쳤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선수는 또 멈칫했다.
포기할 것인가, 다시 올라갈 것인가
나는 알 것 같았다. 그가 망설이는 이유를.
'이미 늦었어. 아무리 다시 올라간다 해도 승리는 물 건너갔어. 그렇다면 굳이 끝까지 올라갈 필요가 있을까? 아니면 포기하고 내려와야 할까?'
그 순간, 나는 또다시 속으로 외쳤다.
'포기하지 마! 넌 국가대표야! 끝까지 버튼을 누르고 내려와야 해!'
그리고, 마침내 그는 움직였다. 한 손, 한 발. 다시 천천히, 하지만 단단한 움직임으로 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속도를 내지는 못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했다. 손끝에서 힘줄이 돋아났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나 그는 결국 마지막 버튼을 눌렀다. 기록은 8분.
나는 박수를 쳤다. 승자는 아니었지만,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스포츠는 1등이 아니어도 멋있다.
경기는 나를 기다려준다
어떤 사람은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중요한 건 포기하는 순간, 경기는 끝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경기는 나를 기다려 준다는 것이다.
마라톤에서도 마지막 한 명이 들어올 때까지 관중들은 떠나지 않는다. 그들이 마지막 주자를 기다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 선수는 충분히 존경받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경기를 보며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구나 넘어질 수 있다. 중요한 건 다시 일어설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주저앉을 것인가이다. 성공한 사람만이 주목받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한 사람도 존경받을 수 있다.
결승점이 보인다고 방심하는 순간, 누군가는 끝까지 전력을 다해 승리를 거머쥔다. 어쩌면 우리는 토끼처럼 거북이를 보고 ‘이겼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 사람이 진짜 승리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또한 머뭇거리는 순간, 두 배의 시간이 흘러간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나는 결정을 내리는 데 오래 걸리는 편이다. 망설이고, 고민하고, 다시 돌아보고. 하지만 결국 처음 마음먹었던 대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흘려보낸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때때로 ‘이 선택이 맞을까?’라며 발걸음을 멈춘다. 하지만 이미 마음속으로 답을 알고 있을 때가 많다. 그러니 망설이는 동안 흘러가는 시간에 휘둘리기보다는, 한 발 더 내디뎌야 할지도 모른다.
너는 나에게 1등이야
넘어진 선수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부모라면 어떤 마음이었을까? ‘혹시 다치진 않았을까?’ ‘이 실패로 인해 꿈을 포기하지 않을까?’ 하지만 대신 올라가 줄 수는 없기에, 부모는 그저 속으로 외칠 것이다.
“너는 나에게 1등이야.”
그리고 그 응원은 결국 선수에게 닿아, 다시 일어서게 만들지도 모른다.
TV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깨달았다. 나도 넘어졌지만, 아직 일어설 수 있다. 내 인생의 벨은 아직 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경기는 나를 기다려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