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상우 Aug 15. 2021

군대 & 전쟁 , 그리고 음식

요리로 보는 글로벌리즘의 간략한 맛보기

 패션의 세계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느끼지 못하지만 남성복의 영역에서 밀리터리 즉 군대가 지금 현대의 남성 패션에 끼친 영향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또는 격식을 갖추기 위해 입는 정장 또한 영국 귀족의 군복에서 유래가 되었으며 겨울에 보온 및 패션을 위해 입는 여러 종류의 코트들 조차 대부분이 군복에서 유래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인류의 문화의 큰 발전에 전쟁이 늘 크게 기여했다고 하듯 음식의 역사 또한 전쟁이나 군대라는 조직이 끼친 영향이 매우 어마어마하다. 오늘은 깊게 들어가진 않더라도 군대 또는 전쟁에 의해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된 음식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1. 마가린


 우리나라 음식에 참기름이 빠지면 늘 섭섭하다고 느끼듯 프랑스 음식에서도 과연 버터가 빠지면 그 음식을 프렌치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프렌치 요리사로서 많이 느끼곤 한다. 물론 올리브유를 주로 쓰는 남부 프랑스 사람들은 이 말에 동의를 못할 수도 있다. 여하튼 프랑스 인들의 식문화에서 버터는 정말이지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지방 중의 하나이다. 빵에 발라 먹어도 맛있으며 고기나 생선을 굽는 데에 사용할 수도 있고 홀렌다이즈와 같은 소스를 만들 수도 있으며 빵이나 과자를 만드는 데에 있어서도 절대로 필수 불가결한 존재이다.


 그러나 이 버터에 의해 매우 골머리를 앓았던 프랑스의 역사적 인물이 있다. 바로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큰 영토를 남겼던 정복자 나폴레옹이 그 인물이다. 이유인 즉슨 프랑스를 벗어난 다른 나라로 원정을 가는 길에 마주치게 되었는데 사실 프랑스 군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군대는 병사들을 어떻게 먹일지에 대한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인 식욕을 만족시켜주지 못한다면 군사들의 사기는 바닥이 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유제품 공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기에 모든 병사들에게 빵에 바를 수 있는 버터를 지급하는 데에 있어 나폴레옹은 사실 매우 큰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그에 의해 탄생한 것이 지금의 마가린이다. 대량의 우유를 필요로 하는 버터 대신 식물성 기름이 베이스인 마가린은 대용량 생산에 있어서 단가를 크게 낮출 수도 있었으며 맛 또한 버터와 크게 다르지 않음으로 버터의 대체용품으로 크게 각광받게 된다. 


 그러나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프랑스 마트에 간다면 우유로만 만들어진 버터보다도 마가린 가격이 더 높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마가린이 건강에 해롭다는 여러 가지 설에 의해 수요와 공급의 차이가 만들어낸 가격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2. 타르타르


 앞의 마가린에 이어 프랑스 요리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프랑스의 동네 비스트로들에 가보면 매우 친숙하게 볼 수 있는 메뉴 중 하나인데 큐브 모양으로 자른 소고기 육회에다 보통 마요네즈와 계란 노른자를 비벼서 먹는 요리이다. 타르타르라는 음식은 프렌치 요리 중 하나로 늘 분류되곤 하지만 프랑스어 통역 겸 번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나의 기준에서는 요리의 이름이 전혀 프렌치에 가깝지가 않음을 느낄 때가 많다.


 사실 이 타르타르의 이름과 기원은 몽골에 있다고 보는 설이 가장 강력하다. 원나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보유했던 국가이며 지금의 과학 기술로도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의 이동 능력을 보유했다고 한다. 말을 타며 긴 시간을 이동하며 전투를 했을 그들에게 무언가를 느긋하게 먹는 시간 또한 사치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늘 말안장에 날고기를 비축해두며 이동 간 또는 전투 간에 날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안장 안에 날고기를 넣어둠으로써 말이 이동을 할 때마다 고기의 연육 작용을 돋우게 되며 숙성이 되었을 것이며 분명 그 고기를 씹는 병사 또한 육질과 맛이 부드러워짐을 쉽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비슷한 예로 햄버거의 기원을 실제 독일 함부르크로 보는 설이 많은데 이 햄버거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타르타르와 같은 몽골의 기원에서 찾는 설이 매우 유력하다.


3. 소주


 한국 사람들의 가장 소울 알코올을 고르자면 누가 뭐라고 해도 소주가 아닐까 싶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 조차 소주는 어렵지 않게 등장한다고 한다. 대한민국 어느 곳에 있는 마트, 슈퍼 그리고 편의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이 술 조차 기원은 위에 언급한 몽골에 있다고 보는 게 가장 강력한 설이다.


 고려 시대 때 무신 집권기에 시작하여 공민왕이 주권 회복을 하기 전 한반도는 몽골에게 지배를 받는 즉 원 간섭기 시기를 보내게 된다. 우리는 잘 인식하고 있지 못하지만 원 간섭기에 한반도에 처음으로 들어와 지금까지도 소비가 되는 작물이 있다. 바로 수박이 그에 해당된다. 

 다시 소주의 이야기로 넘어가 소주는 술의 종류로 분류했을 때 엄밀히 증류주의 하나에 포함이 된다. 증류주란 와인이나 막걸리와 같은 앙조 주들에 더욱 순도 높은 주정을 얻기 위해 인위적으로 작용을 한 술로써 대표적으로 위스키, 브랜디 그리고 보드카 등이 있다. 전통적인 방식의 소주는 막걸리를 한번 더 증류하여 만들어낸 술이다.


 증류주의 기원을 찾아보자면 사실 중국에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중국은 요리의 역사를 보면 볼수록 엄청나게 인류 역사에 기여한 바가 매우 많다. 산업 혁명 이전 세계의 경제에 압도적으로 우두머리를 차지하고 있던 나라로써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여하튼 증류주 기법은 중국에서 처음 탄생했으나 아랍 문화권에 가 진정한 꽃을 피우게 된다. 그리고 이 기법들이 유럽으로 넘어가 지금의 위스키와 브랜디의 초석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아시아와 중동 그리고 유럽의 일부를 전부 지배해버린 몽골은 그들이 흡수해버린 문화들을 다른 나라에게도 크게 전파해준 역할 또한 그 시기에 소화해내고 있었고 한반도에 자리 잡은 그 문화 중 하나가 막걸리의 증류주 ‘소주’이다. 


4. 탕수육


 부먹과 찍먹의 논란에 가장 큰 중심에 있는 요리로 탕수육을 꼽는다. 짜장면과 짬뽕의 가장 큰 친구이기도 하고 배달 중국집의 식사가 아닌 요리로써 가장 쉽게 떠올리는 음식 중 하나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탕수육은 그리 역사가 오래된 음식이 아니다.


 영국은 청나라와의 아편 전쟁을 통해 홍콩에 대한 100년간의 임대 형식으로 자기의 영토로 만들게 된다. 그러나 포크와 나이프에 익숙한 영국인들에게 젓가락을 사용해서 먹는 중국 광둥 지방의 음식들은 너무나 먹기가 불편했고 그들이 포크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중국 음식을 요구하게 된다.


 그리하여 탄생한 게 한입 크기의 돼지고기 튀김이며 서양인에게도 익숙한 단맛이 도드라지는 소스를 가미하여 만든 요리가 지금의 탕수육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중국의 입장에서는 참 굴욕적인 요리가 아닐까 싶다. 


 여기에 더하여 탕수육의 소스는 전형적인 달고 신 맛의 소스인데 프랑스어로는 aigre doux라고 표현을 한다. 분자요리의 기법의 시초를 닦은 프랑스 현대 요리의 거장 피에르 갸니에르에 의해 이 조리법이 특히 서양의 대중들에게도 각광받게 되었으나 엄밀히 이러한 맛의 조화의 기원은 위의 탕수육을 보더라도 중국에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끝으로 요리의 역사를 보다 보면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우리가 세계화라고 부르는 단어가 사실 매우 오래전부터 인류는 동양과 서양을 넘나들어 교류를 하면서 발전했다는 점을 크게 느낄 때가 많다. 너무나 미국적인 소스라고 생각하는 케쳡의 기원이 중국이라는 것을 생각해 봐도 말이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을 가기가 매우 힘든 시기이지만 이 글로 나마 해외여행의 목마름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줄 수 있길 크게 바래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