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달리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2020.10.

by 인애

내가 사는 도시는 강 물길 따라 도시가 이루어져 있다. 느끼지 못하고 살다가도 다른 지역 사람들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듣고, 소중함을 느낀다. 태어나고 자라 어른이 되어서도 이곳에 정착한 나에게 그 강은 늘 기척 없이 거기 있어 주었다. 여러 번 이사했지만 늘 강 주변에 살았다는 건 그 강이 주는 풍요로움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최근 이사 오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아파트 단지에서만 자전거를 탔다. 강이 가깝기는 해도 자전거 도로로 연결되어있지 않아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 자전거를 가지고 강변에 가보기로 했다. 한 번 가보니 괜찮았다는 남편의 말에 걱정은 일단 접어두고 아이들과 집을 나섰다. 목표는 인근 대교까지 달리는 것이었다.

출발은 했지만 사람이 많이 다니는 아파트 단지의 여러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느라 자주 멈춰야 했다. 행여 걷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 한 줄로 천천히 달린다. 다음은 가장 걱정되었던 코스인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변이다. 전봇대와 사람들을 피해 달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자전거 전용길이 아니라 울퉁불퉁하기도 하다. 왼쪽은 자동차가 쌩쌩 달리고, 오른쪽은 낮은 땅이라 길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아 불안하다.


엄마의 불편한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홉 살 둘째는 씩씩하기만 하다. 아이는 제 키에 맞지 않는 낮은 자전거 때문에 페달을 밟을 때마다 자전거와 함께 삐뚤삐뚤 좌우로 흔들린다. 불안한 와중에도 아이를 따라 한 줄로 달리다 보니 자주 보지 못했던 아이의 뒷모습이 새삼 뭉클하다. 발끝을 세우면 겨우 닿았던 누나의 자전거를 물려받았는데 아이는 언제 저만큼이나 자랐을까? 두 발 자전거를 가르치려는 아빠와 자신 없어 배우고 싶지 않다는 아이가 다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아이는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 늘 쉽게 도전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 아이가 수많은 실패를 딛고 누나의 자전거마저 작은 아이가 되었다.

힘들게 도착한 강변의 탁 트인 풍경과 기분 좋은 바람이 우리를 잘 왔다고 토닥여준다. 공원 앞 강변길은 처음 자전거로 달려보는데 다른 강변길과는 다른 풍경이다. 둑이 높아 위에서 강을 내려다보며 달리니 강변의 풍경이 더 그림 같다. 둑 아래의 강변은 정돈된 잔디밭이 아니라 풀들이 저마다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도 많이 없어 꼭 먼 곳에 여행 온 느낌이다. 한참을 달리다 내려가는 길을 따라 강 가까이로 가 보았다. 생각지도 않은 징검다리가 있다. 징검다리 사이 물 흘러내리는 모습이 꼭 계곡 같다. 고요한 강의 풍경에 경쾌한 물소리가 더해진다. 아이들이 돌다리를 반복해서 건너는 모습을 보며 잠시 바위 위에 앉아본다. 해가 조금씩 내려앉고 노을빛 하늘과 똑 닮은 노을빛 강물이 일렁댄다. 노을빛 바람이 나를 껴안는 듯하다. 순간이었지만 무엇인가 몽글몽글하고 울렁대는 마음 하나가 내 안에서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이런 작은 행복을 위해 살아야겠구나.


다시 처음 목표한 대로 대교까지 가보기로 했다. 강 건너 종합경기장 모습이 점점 커진다. 달라지는 풍경이 보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갑자기 둘째가 배가 너무 아프단다.

“집에서 나올 때부터 배가 조금 아팠는데 자전거 타고 강에 빨리 가고 싶어서 말을 안 했어. 근데 못 참겠어. 엄마, 아빠. 어떡해. 미안해”

이 넓은 강변에 화장실이 보이지 않는다. 왔던 길을 급하게 돌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아름답던 강변의 풍경이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지나오며 보았던 카페에 가기로 하고 힘껏 페달을 밟았다. 강변 자전거 길이 끝나고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위를 지나니 아이는 더 참을 수 없는지 인상이 굳어진다. 빨리 가야 한다는 마음에 길이 좁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아이는 급하게 카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강변으로 다시 가자고 한다. 어림없는 소리, 우리는 지쳤다.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고 집으로 향하는 길, 어둑어둑해졌다.


좁은 길이 넓은 길이 되고, 아름다웠던 풍경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다 컸다고 느꼈던 아이가 대소변을 미리 대비하지 못하는 아직 어린아이였다는 것. 이것을 시간과 공간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밝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연관 짓는 것은 억지일까? 결국 사람의 마음가짐이 ‘모든 것’이다.


그날 우리의 목표는 실패로 끝났지만 이 실패의 기억이 또 한 번 자전거를 타고 떠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아이는 또 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이고, 그럴 때마다 그럴 수 있다고, 그저 과정일 뿐이라고, 다시 해보자고 말해주는 어른이 되어야 할 일이다.


아이에게 맞는 새 자전거를 준비해주어야겠다. 또 함께 달릴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