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 꿈이 뭐야?"
저녁을 먹고 온 가족이 방심하고 있던 차, 던지듯이 8살 아이가 묻는다.
아이의 삼촌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꽤 오랫동안 박사과정을 마치고 고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다. 적잖이 당황한 삼촌이 말을 꺼내 든다.
"삼촌은 지후가 커서 안 울고 공부 잘하고..."
8살도 아는 것을 모르느냐는 듯이 아이는 삼촌의 말을 막아선다.
"아니, 그런 거 말고. 직원이나 그런 거."
어려우면 다시 질문하기
"글쎄. 지후는 꿈이 뭐야?"
고민 없이 아이는 대답한다.
"난 건축가가 되어서 엄마 집 지어줄 거야."
아이에게 꿈은 뭘까? 아이가 꿈에 대해 물어보면 건축가라고 답하는 것은 유치원 때부터 꿈을 답해야 하는 아이의 상황과 맞닿아있다. 아이가 싫다고 하는 직업을 빼고 무난한 직업이 건축가였다. 마냥 로봇으로 놀기만 좋아하고 팽이만 돌리는 아이에게 우리 사회는 너무도 일찍 꿈에 대해 말하기를 강요한다. 그래서 엄마의 기준으로 추천해 준 여러 직업들이 있었다. 엄마가 말하는 직업마다 아이는 손사래를 친다.
"의사는 피를 봐야 되잖아. 징그러워서 싫어."
"경찰은 도둑을 잡다가 다칠 수도 있잖아. 아플 것 같아서 싫어."
"소방관은 불이 내 몸에 닿으면 어떡해. 무서워서 싫어."
"선생님은 아이들이 말을 안 들으면 혼내야 해서 싫어. "
"군인은 총을 쏴야 하잖아. 위험해서 싫어."
아니. 누구나 되고 싶은 직업 하나는 쉽게 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주 수많은 직업을 이야기했던 것 같다. 건축가에 이르러서는 엄마의 회유가 들어간다. 더 이상 생각나는 직업도 없어져 가는 것이다.
"너 레고 만드는 거 좋아하지? 레고처럼 실제로 집을 만드는 거야. 우리가 살고 싶은 집. 생각해봐. 다락방도 있고, 마당도 있는, 멋지지 않니?"
아이는 싫다는 말도 좋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의 꿈은 건축가가 되었다. (아이의 꿈인가? 엄마의 꿈인가?)
어른에게 꿈은 뭘까? 삼촌은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오래 공부를 했지만 지금은 고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삼촌의 꿈은 이루지 못한 것일까? 그 대답은 삼촌이 해야 하겠지만 내가 대신한다면 '아니오'라고 답할 것 같다. 꿈이라는 것이 직업이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상투적이다. (상투적인걸 알면서도 아이가 그렇게 여기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좋아하는 여가 생활을 하며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제자를 가르치는 것이 삼촌의 꿈이라면 고등학교 교사이든 대학교수이든 직업의 종류가 무엇이 중요할까.
누구나 꿈에 대한 강박이 있다. 최근 읽은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나온다. '꿈이 있는 사람은 선도적 삶을 산다. 꿈이 없는 사람은 종속적 삶을 산다.' 이 글을 보니 사람들이 느끼는 꿈에 대한 강박이 이유 있긴 하다. 그렇다면 꿈을 단순히 직업으로 생각하는 것은 철학 이론을 알기만 하고 철학적으로 사유하지 못하면서 철학을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아이들이 직업을 넘어선 가치관이 꿈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꿈도 한 번 생각해보았다. '봉오리가 스스로 꽃을 피우도록 옆에서 격려할 수 있는 따뜻한 어른'이 되고 싶다. 언젠가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조사하는 진로희망에 '따뜻한 어른'이라고 적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이런 신념에 부끄럽게도 아이가 우리 가족이 살고 싶은 집을 설명해 놓은 학습지를 보며 아이가 정말 건축가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떻게 고객의 니즈를 이렇게 정확히 알아챈 것일까? 구체적으로 말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아이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가 막히게 알고 있다. 서재가 있고, 바람이 잘 통하는 엄마의 방이라니!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도 잘 읽으니 무엇을 해도 잘할 것이다.
아직은 꿈이 없어도 괜찮다.
꿈은 평생 살면서 언제든지 꿀 수 있는 것이니까.
마음껏 꿈꾸렴. 두려워하지 말고.
아들이 살고 싶은 우리 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