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문과 장문

어른과 아이 사이, 말과 글

by 인애

아이가 일기를 쓰고 있다. 일기를 쓰며 어디서 들어보았는지 동상이 뭐냐고 자꾸만 물어본다.

"엄마, 동상이 뭐야?"

"물이 추우면 어는 것처럼 손도 너무 추운 곳에 오래 있으면 얼음처럼 어는 거야."

"그러면 다시 따뜻한 곳에 들어가면 얼음이 녹는 것처럼 손도 녹는 거야?"

엄마의 답이 부족했구나 싶어 다시 이야기한다.

"사람의 손은 생명이니까 얼었다 녹으면 피부의 색깔도 달라지고 아파. 그러니까 장갑을 껴야 해."

라고 말해준다. 사실은 동상에 걸려본 적이 없는 엄마라 더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군대에 다녀온 아빠라면 달랐을 것이다. 아무리 오래 산 어른이라도 경험이 부족하면 어떤 설명이든 부족하기 짝이 없다. 뜬금없이 나의 경험이 부족함을 탓한다.




아이의 일기를 보았다.


'나는 오늘 윤주와 유주와 물놀이터에서 얼음이 얼어 있어서 나무까지로 콕콕 때려서 얼음을 부서서 꺼내 발로 발바서 부수기 놀이를 했다. 손이 엄청 시려워도 자꾸 했다. 다행히 동상에 안 걸렸다. 그래서 그 놀이는 다시는 하지 말자고 했다.'


글을 쓰는 기본은 단문이거늘, 비록 칸 공책이지만 한 문장이 공책 반바닥을 넘는다. '아니 왜 이렇게 문장을 길게 쓴 거야.'라고 엄마는 한 마디 한다. 그러다 두세 번 읽어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아들의 장문에서 아들의 마음을 읽은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담고 담다 보니 문장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평소 같았으면 글은 끊어서 써야 한다고 잔소리에 잔소리를 붙여 선생님 같은 말을 더 했을 것이다. 이 글을 보니 뭐 꼭 그렇게 써야 정답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법 호응도 맞다. 엄마의 마음에 긍정의 징조가 피어난다.


좋은 문장이다. 길지만 좋은 문장이다. 하루를 자세하게, 넘치게 알려주고 싶은 그 마음이 참 예쁘다.


교실에서 아이들의 일기를 검사하다 보면 10명에 8명은 '정말 즐거운 하루였다.'로 끝이 난다. 날마다 즐거운 일이 있다는 것은 진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기가 즐거운 일만 써야 하는 '꼭 즐거운 일만 쓰기'가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끝이 나는 일기는 대부분 쓰기 싫은 읽기를 억지로 쓴 것이다. 정해진 틀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이 이렇게 써온다는 것은 교사의 잘못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 집 1학년 아이는 가끔 오늘은 일기가 쓰고 싶다는 말을 한다. 얼마나 글로 담고 싶은 일이 있었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런 마음이 들도록 일기 지도를 가르쳐야 할 일이다.


위의 일기를 보자. 아직 때 묻지 않은 1학년이라 그런가 일기의 결말이 흥미롭다. 쪼그리고 앉아 얼음을 깨는 아이 셋이서 '우리 다시는 이거 하지 말자. 동상 걸린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하니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동상이 물이 어는 것처럼 손이 어는 것'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설명한 나의 과거를 탓한다. 손이 얼었다가 물처럼 녹는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래서 계속 반복해서 물었던 것이구나. 엄마가 너의 마음을 잘 몰랐어.


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언젠가는 끝날 순수함이지만, 아직 순수함을 잃지 않아 준 아이에게 감사하다.


아직 맞춤법은 엄마와 함께 많이 고쳐야 한다. 일기를 한 번 썼다 하면 누나와 달리 고민 따위 오래 하지 않는 1학년 남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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