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열이 난다.

2022.3.2.

by 인애

3월 1일, 새 학년이 시작되기 하루 전날이다.

새벽에 갑자기 딸이 가래 기침을 하며 머리가 아프다고 나를 깨운다. 밤에 자면서 엄마를 찾는 일은 거의 없는 13살의 다 큰 아이라 조금 놀랐지만 환절기가 되면 코가 자주 막히기도 해서 그러려니 생각했다. 개학 전이라 긴장했나? 일단 집에서 자가검사 키트로 음성을 확인한 후 공휴일이지만 연 병원을 검색해 방문했다. 집에서 음성이라는 것을 확인했기에 병원에서 실시한 전문가용 신속항원검사도 당연히 음성이겠지 생각했고, 약을 처방받기 위한 절차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검사실에서 검사하고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오란다. 선명하게 나타난 두 줄을 간호사가 보여준다. 양성이다. 평소 꽤 의연한 아이지만 아이는 이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아이가 양성이 나오자마자 우리는 병원에서부터 병원의 방문자들과 떨어진 다른 쪽의 의자에 앉아야 했다. 울음이 남아있는 딸은 아빠의 차로 바로 돌아가 격리되어야 했고 약국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내가 약국에서 받아온 일주일치 딸의 약은 한 봉지 가득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양성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열이 난다. 병원에서 준 그 많은 양의 해열제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해열제를 주며 열날 때 먹이면 늦다고 미리 먹이라고 했던 약사의 말은 이유가 있었다. 아이의 상태가 그냥 감기처럼 지나갈 것이라고 낙관했던 나를 혼내주는 듯하다. 아이는 자기 방에 격리된 채로 사흘간 해열제도 잘 듣지 않는 열이 났고, 머리가 아팠고, 배가 아팠다. 나도 목이 조금씩 아파왔다. 밤이 늦도록 마스크를 한 채 아이의 몸을 물수건으로 닦아주면서 나도 곧 보건소에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의 곁을 떠날 수는 없었다.




걱정되는 마음으로 확진이 되기 전까지 했던 검사

3월 2일 아침.

새 학년 첫날, 새 친구와 새 선생님과 새 학생들을 만나야 하는 우리는 아무도 학교에 가지 못했다.


오후가 되자 딸은 친한 친구들의 단톡방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다. 친구들이 "오늘 새 선생님과 새 친구들 어땠어?"라고 묻는데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에게 말하면 다른 친구들도 다 알게 될 텐데, 하지만 곧 등교하지 않은 것이 소문이 날텐에, 카톡에 읽었다고 뜨는데 대답을 안 할 수는 없는데... 한참을 가만히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아이는 증상이 있었고, 키트 검사에서 두 줄이 나왔으며 보건소에서 PCR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가 내일 나온다고 글을 남긴다. 그리고 비밀로 해달라고 한다. 혹시나 나중에 상처받을까 봐 걱정된 나는 어차피 비밀이 지켜지진 않을 것이라고 한 소리 덧붙인다. 미리 예방주사 맞는 것처럼. 아이는 열도 나고 아프기도 했지만 마음까지 가라앉아 하루 종일 그렇게 침대에 힘없이 누워있었다.


아들은 어제만 해도 누나 때문에 내일 일찍 일어나 학교에 안 가도 되어서 좋은 점도 있다고 하더니 막상 3월 2일이 되자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없이 우울하다. 온종일 마스크를 한 채 침대에 누워있다. 누나처럼 열도 나지 않고 아픈 것도 아닌데... 위로하는 말로 새 학기 첫날 새 친구들과 새 선생님을 만나야 하는 긴장감이 없어 좋지 않냐고 물었다. 아이는 친구들은 서로 인사하고 익숙한데 자기만 어색하게 다음 주에 학교 가서 인사하는 것이 싫단다. 내가 계속 다니던 학교인데도 전학생 같다고 한다. 그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방을 나왔다.


나는 새로운 학생들과의 첫 만남을 위해 준비했던 활동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첫날 새 선생님을 궁금해했을 우리 반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 집에 돌아가 '담임 선생님은 어땠어?'라고 묻는 부모님에게 아이들은 뭐라고 대답했을까. '진짜 선생님을 아직 못 만났어.'라고 했을까. 오늘 출근하지 못한 이유를 얼굴도 모르는 반 아이들의 부모님들께 글로 설명하자니 그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다. 뭐라고 죄송한 마음을 전해야 할지 한참 문자를 썼다 지웠다했다. 학교에는 학교대로 전근 간 첫날에 출근을 하지 못한 나는 죄인이 되었다. 입학식, 시업식으로 안 그래도 바쁜 3월 2일이 나로 인해 더 정신없고 바빴을 것이다. 집에 있는 내내 가시방석이었다.


365일이나 되는 일 년의 날들 중 왜 하필 오늘 이어야 했을까? 가장 중요한 새 학년의 첫날에.

각자의 복잡한 마음과 다르게 집안은 절간처럼 조용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저 그 말만 마음속으로 계속 생각하려 애썼다.




PS. 그 이후 남편과 나, 아들은 보건소의 긴 줄을 견뎌가며 3일간 연달아 확진 판정을 받았다. 많이 아프기도 했고 또 조금 쉽게 넘어가기도 했다. 일주일간의 격리기간을 지나 우리는 다시 학교에 갔고 무척 바쁘게 지냈다. 지나고 보니 3월 2일의 당황스럽던 그 경험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아들과 딸은 친구들을 일주일 늦게 만났지만 빠르게 적응해 벌써 친한 친구들이 생겼고, 나는 새롭게 만난 아이들과 새 동료들에게 벌써 익숙해져 새 학교를 우리 학교라고 부르는데 어색함이 사라졌다.


정말로,

'그 또한 잘 지나갔다.'


"겨울의 희망은 역시 봄이고, 봄을 믿을 수 있는 건 하늘의 섭리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박완서 -PCR 검사를 위해 방문한 보건소 앞마당에 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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