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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원 Jan 16. 2023

UI 의 명장면

서덜랜드, 엥겔바트, 잡스, 그리고 주커버그

'인터페이스'의 사전적 정의는 '접점'이라는 뜻으로 두 개의 이질적 영역이 만나는 곳을 의미한다. 요즘은 거의 고유명사처럼 쓰이지 않나 싶은데 '인터페이스가 별로야'라고 하면 사용자가 컴퓨터와 상호작용하는 부분, 주로 Graphical User Interface (GUI)의 흐름이 영 매끄럽지 못하다는 뜻이다. 사실 UI는 화면의 레이아웃이나 버튼같은 소프트웨어 영역 뿐만 아니라 컴퓨터 마우스, 조이스틱, VR 헤드셋과 같은 하드웨어까지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사람의 생각까지, 즉 뇌파까지 인터페이스로 만들고 있는 요즈음, 역사 속에서 UI의 결정적 순간들을 한 번 알아보기로 하자.  




현대 컴퓨터 UI의 시조를 알아보면 놀라는 사실은, 모든 전문가나 교과서가 가리키는 곳이 단 하나라는 것이다. 바로 Ivan Sutherland라는 컴퓨터 과학자가 발명한 스케치패드라는 녀석인데, 유투브를 찾아보면 둥그런 레이더 같은 화면에 light pen을 갖다대면 스크린에 도형이 실시간으로 그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딱 타블렛 컴퓨터에 터치펜으로 그리고 있는 모습으로, 그 주변 배경에 비해 기술의 현대성에 놀라긴 하지만 솔직히 뭐 그리 대단한가 싶기도 하다. 그냥, 종이에 펜으로 그리는 걸 시뮬레이션 한 거 아닌가.


살짝 찝찝함을 뒤로하며 그 위대함을 알아채기 위해 더 살펴보도록 하자. 스케치패드가 만들어진 건 1963년, 마우스나 UNIX는 당연히 없었고 컴퓨터 칩이란게 만들어진지 겨우 5년째였다. 아마 웬만한 미국 대학교에서도 종이에 구멍 뚫어가며 프로그래밍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Sutherland도 카네기 멜론에서 학사를 받고 칼텍 대학원을 다니던 중, 그곳을 방문한 Marvin Minsky로부터 최신 컴퓨터 이야기를 듣고 MIT로 진학을 결심한 것이었다. 박사 지도 교수는 무려 Claude Shannon이었는데 그의 평생 제자 세 명 중 하나였다나. 어쨌든 그에게 주어진 우주 최강의 '새삥' 컴퓨터의 사양은 다음과 같다. 메모리는 1/3 MB, 저장공간은 8 MB 자기테이프, 7인치 스크린에 라이트펜 같은 I/O 기기를 연결할 수 있었다. OS는 아예 없었고 컴파일러는 '살짝 스마트한' assembler였다 [1].


ttps://www.youtube.com/watch?v=6orsmFndx_o

Sutherland의 데모는 컴퓨터를 활용한 디자인의 미래를 보여주었다


이는 대충 말해 Sutherland가 더하기 빼기 계산기로 그리기 앱을 만들기로 작정한 것을 의미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한밤중에만 배정되는 툭하면 고장나는 컴퓨터를 가지고, 계산 좀 할라치면 메마르는 비트 수를 최적화하며, 존재하지도 않았던 기하 도형의 연산을 위한 알고리즘을 구현하였다는 말이다 (Shannon이 원을 꼭 넣으라해서 고생스러웠다고 한다). 조금 전문적으로는 (1) class개념을 사용, 도형에 필요한 데이터를 캡슐화하고, (2) 도형 class에 통일된 그리기 함수를 심어 OOP의 polymorphism을 구현했으며, (3) pointer 개념을 활용해서 도형 데이터 간의 연결구조를 만들었다. 게다가 도형에 제약 조건을 부여하고 SGD로 최적화함으로써 트러스 구조물의 시뮬레이션을 애니메이션으로 시각화하였다 (헐..). 이런 과정에서 탄생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은 모두 프로그래밍과 그래픽스 분야에서 꽃핀, 그의 말을 빌리면 그냥 하다보니까 필요해서 만든 개념들이다 [2].  

 

그는 지치지 않는 호기심으로 연구를 이어나가 역사상 첫 VR 기기까지 만들었으며 결국 컴퓨터과학의 노벨상인 튜링상까지 수상하게 된다. 여기서 가장 궁금하 것은, 이러한 인류 지식의 도약을 가능케 한 그의 위대함의 원천이 무엇이냐는 거다. 모르긴 몰라도 "이게 도대체 가능할까?"라는 의심과 주저함, 그리고 안주하려는 일말의 무의식을 거침없는 실행력으로 바꾼 것일게다. 우리와 같은 범인들의 유일한 위안은 그런 꿈을 사는 것은 정말 버거운 일이라는 것 정도. 화성이 우리가 정복해야 할 두번째 행성이라 굳게 믿는 머스크의 삶은 아마도 정말 괴로울거다. 아니 왜 눈물이





다음 UI 역사의 결정적 순간은 바로 오늘날도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는 마우스의 탄생이다. 마우스는 Douglas Engelbart 에 의해 발명되었는데 푸근한 인상과 느릿한 말투는 Sutherland의 명철하고 차가운 그것과 사뭇 다르다. 그러나 그 또한 튜링상을 수상한, 마우스의 아버지로만 불리우기엔 한참 모자란 연구자이다. 'the mother of all demos'라는 심상치 않은 별명의 1968년 발표에는 그의 눈부신 업적들이 총 망라되어 있다. 영상 속 그는 먼저 마우스 포인터로 텍스트 사이를 오가다 특정 위치에 커서를 위치시키고 편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세계 최초의 워드 프로세서를 시연한 것. 이어서 장보기 아이템을 마우스로 클릭, 하위 카테고리 아이템들을 보여주는데 이는 하이퍼 텍스트, 즉 인터넷의 전신이다. 이후 원격에서 접속하는 연구원을 연결한다며 화면 구석에다가 영상을 띄우는데, 세상에, 실시간 비디오 컨퍼런싱이다. 이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고 대화하면서 공동으로 문서를 편집하는 것은 바로 오늘날의 zoom + 구글 공유 문서다. 이메일 시스템, 다중 윈도우 디자인, 비트맵 디스플레이 등은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3].


https://www.youtube.com/watch?v=yJDv-zdhzMY

The mother of all demos. Engelbart의 업적이 총망라되어 있다

 

다시 말해 그는 네트워크나 개인용 컴퓨터라는 개념이 생겨나기도 전, 현대적 의미의 컴퓨터를 상상하고 완성시켰다. 이의 근간에는 컴퓨터란 인간을 augment하여야 한다는 것, 그래서 한없이 복잡해져만 가는 인류의 문제를 풀기 위한 인간 능력 확장의 도구여야 한다는 그의 비젼이 있었다. 무척 거창하게 들리지만 약혼할 때 즈음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다가 나온 생각이란다 [4]. 그러나 이 위대한 demo 이후 그의 연구 그룹은 AI 부서에 병합되고 맥도널 더글러스에 팔려 나간다.


일장춘몽이 될 뻔한 그의 비젼은 다행히 그와 뜻을 달리하고 Xerox사의 Palo Alto Research Center (PARC)로 향한 젊은 프로그래머들에 의해 계승된다 [5]. PARC에서 제작한 비싼 프로토타입들이 우리 손에 들어오기 위해선 또 다른 영웅이 필요하였으니, 바로 약관의 스티브 잡스였다. IPO 직전의 애플 주식을 제록스에게 주는 댓가로 닭장에 온 이 여우는 GUI를 보고 방방뛰면서 왜 컴퓨터의 미래를 결정할 기술을 썩히고 있냐고 탄식한다. 이후 바로 Dean Hovey라는 훗날 IDEO 창업자를 불러 왜 그가 그인지를 보여주는 주문을 낸다 - "300달러에 2주면 고장나는 마우스를 15달러에 2년을 쓸 수 있는 것으로 만들 것. 포마이카와 내 청바지 위에서도 작동해야 함." Hovey는 볼베어링이 바닥으로 찍어 누르던 PARC 마우스의 볼을 표면을 둥둥 떠다니면서 광전자에 의해 인식되도록 탈바꿈시키며 임무를 완수한다 [6]. 컨설팅료로 $100,000을 받았는데 대당 50센트라는 로열티 형태로 해달라고 했다가 잡스에게 단번에 거절당했다고 한다. 다들 촉이 좋네 [7]

  

그러니까, 마우스는 그냥 마우스가 아니었다. 컴퓨터 화면을 통해 보여지는 것들을 어떻게 조작할 수 있느냐를 정의한 가상 세계의 손으로 Engelbart는 이를 통해 그가 원한 '컴퓨터를 이용한 협력'이라는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었다. 시커먼 화면에 끔뻑끔뻑하는 바보 상자를 총천연색의 그래픽으로 환골탈태시킨 건 목줄마냥 무심히 매달려있는 커서 이동 장치였다. 이제 마우스에서 미래를 본 스티브 잡스의 흥분됨에 조금이나마 공감이 가는지. 데스크탑의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아직 우리는 마우스의 시대를 살고 있다해도 큰 과장은 아닐 것이다.




사실 마우스의 시대라고 하면 틀딱 취급받기 딱 좋은 이유가 하나 있다면 바로 iOS의 존재 때문이다. 2007년 등장한 이 위대한 기기의 시작에는 스티브 잡스가 끔찍히 싫어하던 한 마이크로소프트 직원이 있었다. 잡스 아내 친구의 남편이었던 이 사람은 MS가 타블렛 컴퓨터로 세상을 뒤집어 놓을 거라고 자랑을 해댔고, 참다 못한 잡스는 한 수 가르쳐 주기를 마음 먹는다. 그는 무엇보다 스타일러스 펜부터 없애기로 결심했으니 이것이 바로 손가락이 UI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이다. 다만 그때까지는 타블렛을 만들 요량이었는데, 당시 애플 수익 절반을 차지하던 iPod의 cannibalization을 걱정하다 비로소 새로운 휴대폰까지 생각이 다다른다. 손가락 UI에 대한 확신의 결정타를 날린 건 디자인 팀의 기깔나는 프로토타입이었다 [8]. 천정에 매달린 프로젝터는 터치테이블 기기 위에 딱 휴대폰 사이즈만큼만 투사되었는데,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긁으니 전화번호 리스트를 우아하게 스크롤되었고, 이름을 탭하니 컨택정보와 전화 버튼이 있는 카드가 스-윽 슬라이드인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미래를 본 흥분의 도가니였을게다. 


애플 제품에은 UI가 있고, 소프트웨어가 있고, 그리고 하드웨어가 있었다


애플은 이제 터치 화면으로만 이루어진 휴대폰에 들어갈 기술적 성취들을 거침없이 이어나간다. 먼저 하드웨어팀은 당시 표준이었던 감압식 터치가 손가락에 불편하였으므로 멀티터치가 가능한 정전식 터치로 바꿀 것을 명 받았다. 디자인팀은 터치 화면으로 가득한 휴대폰의 폼팩터를 위해 무수히 많은 휴대폰 외형을 테스트하였고, OS 또한 Rubinstein과 Forstall이 Linux와 OSX 기반의 버젼을 각각 구현, 비교 후 OSX로 결정되었다. 초창기 센서로는 근접, 조도, 가속도센서가 탑재되었는데 추후 계속 확대되어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에 기반한 비즈니스를 활짝 열게 된다. iOS는 iPhone이 우리와 소통하는 UI 그 자체였으며 버젼업을 거듭하면서 우리가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법까지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9].


스티브 잡스의 iPhone 키노트 프리젠테이션의 내용이 의미심장하다. 그는 애플의 역사를 세 개의 UI, 즉 마우스, 클릭 휠, 멀티 터치로 요약하면서 이들이 Mac, iPod, iPhone 라는 혁명적 제품을 가능케 했다고 말한다 [10]. 뒤이어 Alan Kay의 말 - "People who are really serious about software should make their own hardware" - 을 빌려 기계가 아닌 인간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한다. 사실 컴퓨터도, mp3도, 휴대폰도, 정전식 터치와 마우스도 그 이전에 이미 존재하던 제품이었다. 그러나 그가 인간을 위한 가능성을 보고 새로운 기준을 가차없이 몰아붙였을 때, 그 결과물은 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그 무엇이 되었다.


 



학계에서 이러한 UI의 변화를 크게 Command Line Interface (CLI)에서 GUI (Graphical User Interface) 로의 이동이라고 보았다. CLI는 워드처럼 타이핑으로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GUI는 우리가 현재 쓰는 대부분의 마우스 기반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말한다. 사실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항상 GUI가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디스크에서 특정 크기 이상의 파일을 지우고 싶다고 할 때, 마우스로 모든 폴더를 열어 하나씩 클릭하는 것은 특정 명령어를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고역이다. 이런 두 가지 UI 방식을 비교하는 방법으로 한 연구자(Ben Shneiderman)는 direct manipulation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데 어떠한 object를 조작(manipulate)할 때 그 행위가 얼마나 직접적(direct)인지를 의미한다 [11]. '저 빨간 버튼을 눌러'라고 명령하는 것보다는 마우스로 클릭하는 것이 더 직접적이고, 마우스보다 화면의 버튼을 직접 터치하는게 더 직접적이다. 즉 우리의 action과 대상 object 사이의 매개물이 더 적을수록, 그리고 action의 결과가 더 즉각적일수록 더욱 직접적인 조작이다.

   

메타가 구현한 버튼. https://developer.oculus.com/resources/hands-design-interactions/


다만 스크린 터치와 음성 인식의 시대에 이러한 프레임이 얼마나 더 유용할런지 의문이 든다. 과연 터치 스크린의 버튼을 누르는 것보다 더 직접적인게 또 있을까? 눈치챘는지 모르겠으나 바로 물리적 버튼이 그것이다. 3차원에 사는 우리들에게 2차원에 갇힌 가상 공간은 라이트펜이든, 마우스든, 터치스크린이든 그 직접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VR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완벽하게 에뮬레이션해 줄 game changer이다 [12]. 우리가 GUI 시대에도 별 생각없이 사용하는, 직접적이지 못한 명령어들을 살펴보면 이해가 빠르다. 파일의 속성을 보기 위해서는 windows에서는 우클릭을 빈번히 사용하는데, 컴퓨터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알기 힘든 방식이다. 하지만 우리가 과일의 신선함을 살펴보기 위해 손으로 들고 살피는 것은 가히 삼척동자도 익숙한 방식이다. 정말 편하기 그지 없는 '복붙' 또한 CLI의 잔재이다. 제스쳐를 통해 복붙 대상을 정의하고, '눈에 보이는'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원하는 곳에 다시 제스쳐를 통해 붙일 수 있다면 인터랙션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질까?   


그런 면에서 주커버그의 사운을 건 실험은 꽤 설득력있고 가치가 있다. VR이라는 새로운 미디어는 분명 가상 환경과 인터페이스하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 뿐더러 3차원 공간 너머로까지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그의 꿈을 현실화할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의 발전도 숨가쁘다. 그러나 현재까지 가상의 3차원에 들어가기 위한 '헬멧'은 가장 도드라진 아킬레스건이자 회의론자들의 단골 메뉴다.


잡스의 마우스와 정전식 멀티터치는, 기존의 아이디어를 제품화한 것이라고만 말하기 어려운, 새로운 발명에 가까운 일대 사건이었다. 우리가 갖게 될 인터페이스의 미래가 넘실거리는 이 때에, 그가 없는 시대에 메타는, 애플은, 혹은 구글은 그런 마법을 부릴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또다른 혁신가를 기다려야 할까? 그도 아니면 저 멀리 우리 뇌 속에 바늘을 들이대고 있는 머스크 훨씬 더 과격한 인터페이스의 미래를 가져올까? Norman이 그린 인간 인지능력의 확장은 주머니 속의 만물상으로 현실이 되었다. 미래의 인류 모습이 새로운 인터페이스의 그것에 달려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참고문헌


[0] 썸네일 사진 소스

https://www.wired.com/story/how-doug-engelbart-pulled-off-the-mother-of-all-demos/


[1] https://www.youtube.com/watch?v=-sbeghygOt4&t=429s


[2] http://images.designworldonline.com.s3.amazonaws.com/CADhistory/Sketchpad_A_Man-Machine_Graphical_Communication_System_Jan63.pdf


[3] https://www.youtube.com/watch?v=sG3PWet8fDk


[4] https://youtu.be/xQx-tuW9A4Q?t=54


[5] https://dl.acm.org/doi/10.1145/274430.274436


[6] https://www.wired.com/2014/08/the-engineer-of-the-original-apple-mouse-talks-about-his-remarkable-career/


[7]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11/05/16/creation-myth


[8] https://youtu.be/5xDRdWFdsoQ?t=5160


[9] https://www.youtube.com/watch?v=l7eucqQMXDw


[10] https://www.youtube.com/watch?v=VQKMoT-6XSg


[11] https://www.cs.umd.edu/~ben/papers/Shneiderman1983Direct.pdf


[12] https://mikealg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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