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on Pro 발표는 (진짜) VR 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거의 모든 tech giant들의 관심+노력을 받았던, 그러나 누구도 구하지 못했던 시장을 되살린 건 최종 보스 애플이었다. 무려 8년간 꽁꽁 숨겨놓았던 비밀에 업계의 업자들은 모두 역사의 변곡점을 직감했다. 약간은 섣불러 보이는 이런 흥분은, 아마도 학계에서 바라보던 장애물, 정확히는 HMD (Head Mount Display)가 가진 기술적 한계가 너무나도 커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애플은 몇 가지 탁월한 선택으로 이를 뛰어 넘었다.
첫째, 어지러움을 없앴다. 어지러움은 - 한 개의 단어이지만 - '가상'과 '현실'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증상의 총체에 가깝다. 한 원인은 시각 인지와 신체 운동의 불일치로 고개 돌림 같은 움직임이 가상에서 더 크거나 작게 표현될 경우 일어난다. 또 다른 것으로 VAC(Vergence Accomodation Conflict)는 원경의 이미지를 코앞의 VR 화면을 통해 보기 위해 눈동자가 필요 이상으로 돌아가 뇌가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이외에도 롤러코스터와 같은 빠른 움직임은 더 눈과 뇌를 피로하게 만들며, 남자보다 여자가 더 취약하다는 분석도 있다. 이렇듯 원인조차 제각각인 상황에서 애플의 해답은 low latency + 4K 해상도였다. 다시 말해 눈 한 개당 TV 한 대만큼 픽셀을 (거의) 실시간으로 쏴주면 승산이 있다는 것이었다 [1]. 이를 위해 맥에서나 쓰는 M2칩 외에 센서 인풋만 처리하는 R2칩을 별도로 장착하였고, 그것도 모자라 R2에 특수 설계된 ultra low latency RAM을 장착했다 Hynix 사라있네 [2]. 무자비한 가격표의 원흉이 여기에 있으니, 그 결정 과정이 참으로 궁금할 따름이다.
둘째, video see-through를 채택했다. VR과 AR의 경계는 생각보다 명확한데, 완전 합성된 이미지(VR)인지 현실과 가상의 중첩(AR)인지 여부이다. AR의 대표주자인 홀로렌즈 체험은 화려한 소개 영상과 사뭇 달랐는데, 처참히 작은 시야각(Field Of View)과 일광 조도를 넘으려는 프로젝터의 노력은 정말 눈물겨운 것이었다. 이는 투명 재질 스크린을 통해 중첩한 방식 - optical see-through - 에 기인한 바가 크다. Vision Pro는 AR시에도 video see-through를 쓰는데 마치 현실을 고화질 CCTV을 통해 보는 것과 같다. 물론 이런 방식이 최선은 아니고 또한 이전에 없던 것도 아니나 MS가 값비싼 수업료를 내고서야 깨달은 것을 보면 그 선구안이 예사롭지 않다. eyesight라는 기능도 찬사 일색으로 바깥에서 Vision Pro를 낀 사람의 눈동자를 HMD 겉면에 보여주는, video see-through를 거꾸로 적용한 것으로 깂비싸지만 확실한 경험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https://youtu.be/TX9qSaGXFyg?t=43
셋째, ergonomics는 절대 무시할 요소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HMD의 첫 경험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머리가 크고 안경을 쓰는게 얼마나 환영 못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개인 연구를 통해 아시아인들의 작은 코와 튀어난 광대뼈 또한 적쟎은 문제가 됨을 확인하고 있다) 애플은 이를 위해 시력 보정용 렌즈를 삽입하고 얼굴 굴곡을 반영한 충전재도 제공한다. 기기의 무게 또한 장기간 사용에 부담이 되므로 배터리를 일체형이 아닌 연결선을 통해 휴대하도록 디자인하였다. 다른 HMD 기기들과는 사뭇 다른, 다양한 사용자를 중시한 꼼꼼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마지막은 인터페이스 부분이다. 인터페이스가 Vision Pro의 근본적 차별점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기술적 혁신도 혁신이지만 무엇보다 소프트웨어 상호작용이 저세상이란 말이다 [4]. 이전 글에도 제시했듯 인터페이스는 애플 제품의 알파요 오메가이며 자부심의 근원이다. 시선 추적과 손가락 움직임으로 클릭하는 장면은 VR 인터페이스의 새로운 표준이자 기준을 결정짓는 하이라이트였다. 사실 VR 인터페이스는 온갖 아이디어가 난무하던 전장이었다. 핸드폰에서 스타일러스를 빼앗은 잡스의 정신은 HMD에서 컨트롤을 없앤 Vision Pro의 두 손에 현현히 살아 있다.
2007년 미국 시카고 한 대학 캠퍼스 내, 긴 대학원 생활의 막학기에 들어선 필자는 Pixar의 한 직무에 꽂혀 연거푸 지원서를 보내고 있었다. technical director라는 것이었는데 아티스트들을 위한 소프트웨어 도구를 만드는, 기술과 예술의 잇는 정점의 자리였다. 그러나 대답없는 메아리는 계속되었고, 결국 모털 컴뱃이라는 명작을 배출한 시카고 로컬 게임 회사에 덜컥 취업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도심 내에 컨테이너로 짜지은 건물 내의 업무 환경은 예상처럼 우울한 것이었다. 창문이 없는 방 안에 개발자용 Xbox가 연결된 컴퓨터에 세 명의 프로그래머가 옹기종기 스크린을 보곤 했었으니까. 그래도 콘솔로 가득찬 방에서 게임만하는 영혼없는 눈빛들 - 품질관리팀 - 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식솔들을 생각해서 꾸역꾸역 출근하던 어느 날, 미국 녀석 하나가 방안을 박차고 들어오더니 흥분하며 외쳤다. "Halo 3가 나왔어!!" 격양된 분위기 속에 몇마디가 오던 중 나도 한 마디를 더했다. "Halo가 뭔데?" 이후의 적막은 지금 생각해도 오그라드는 것이었으니, 식솔이고 나발이고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KDkKKt9Y7I
퇴사는 더 드라마틱했는데 시작은 실리콘밸리 대기업 한 군데서 온 오퍼레터였다. 서로에게 큰 기대가 없으리라 생각하고 별 뜻없이 매니져에게 통보하였으나 그 반응은 사뭇 예상 밖이었다. 오퍼 연봉을 듣더니 여기 사장도 못 받는 것이라며 거짓말이라며 발끈한 것이다. 물어 본 인간이나 대답한 인간이나 그의 일갈이 사실인지 알 길이 없지만 박스를 든 시큐리티가 바로 나타났고 마치 영화처럼 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겨 출입문을 나오게 되었다. 헛헛한 느낌이 잘 가시지 않던 그 때, 나름 게임 업계에 있느라 주워 들었던 풍문이 내 머리에 맴돌았다. 덴마크의 한 현자가 개인을 위한 게임 제작 플랫폼을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컴퓨터 게임이란 알고보면 컴퓨터 그래픽을 포함한 다양한 컴퓨터 기술의 총아이다. 캐릭터를 만들고 움직여야 하고 (모델링, 리깅, 애니메이션), 그럴듯하게 색칠해야 하며 (텍스쳐링, 렌더링) 현실의 현상을 시뮬레이션하고 (물리엔진) 악당을 만들며 (인공지능) 팀플도 해야 한다 (네트워크). 이걸 한 명이 만들었다니, 무슨 리누스 토발즈가 게임계에 환생한 느낌이었다. 덴마크의 현자가 개발한 플랫폼(a.k.a. 게임엔진)의 이름은 바로 Unity 였다. 당시 여타 엔진들은 특정 게임에 특화된, 고가의 라이센스 피를 가진 것이었으나 Unity의 창업자들은 "게임 개발의 민주화"를 기치로 내걸고 조금은 허접하고 값싸지만 보다 많은 기기를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리고 iPhone의 등장과 게임 커뮤니티의 폭발은 오히려 틈새 제품을 압도적인 플레이어로 성장시켰다 [5].
오늘날의 Unity는 디자이너들, 특히 3D 상호작용을 만드는 이들에게 필수인 도구로까지 성장하게 되었다. 언뜻 게임 엔진이라하면 개발자의 영역이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재미란 것이 결국 새롭고 특별한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디자이너/기획자가 이런 도구를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사실 컴퓨터 안의 모든 움직임은 숫자이고 규칙이긴 하다. 하지만 포토샵, 오토캐드, 그래스하퍼가 그랬듯 Unity는 재미를 시각적인 조작으로 만들어내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리고 오늘날 건축, 자동차, 광고, 영화, 패션 등 그 활용 범위가 급속도로 넓어지면서 우리는 더 많은 technical artist의 등장을 목도하고 있다.
애플이 Unity를 소프트웨어 파트너로 결정한 이 시점에서 [6][7] Vision Pro의 발표가 Unity 주가를 폭등시킨 건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현실에 가까운 메타버스 속에서 영화관, 콘서트장, 운동 경기장, 교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디즈니월드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고퀄의 엔터테인먼트도 집안에서 가능할 것이며, 심리나 통증 치료와 같은 효과가 증명된 의료 행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iPhone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되어 들리지 않는 이유다. 3D 디자이너-프로그래머들은 완전히 새로운 감성을 창작의 차원으로 활용하는 VR앱 개발의 주역이 될 것이다.
다만, 안 될 이유만 찾아 공매도를 날리던 때는 언제고, 이제 와 (민망할 정도로) 성공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주고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Vision Pro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경험을 제시해 준 탓일 것이다. 애플 본사에서 공수된 머그 컵을 하나 선물받은 적이 있다. 아무리 애플이라지만 도대체 '머그 컵'이 뭐 크게 다를까 싶었다. 하지만 사용하면 할수록 빠져드는 것이었으니 입이 닿는 부분은 몸체의 두께 그대로 두툼하고 거칠게 마감되어 입술에 완전히 다른 촉감을 전달하였다. 손잡이는 그 길이와 크기, 각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지렛대를 잡듯 컵을 드는 손을 편하고 심지어 즐겁게 만들었으며, 바닥 마감도 유약 없는 porcerlain의 그것처럼 단단하지만 코르크처럼 부드러워 놓을 때마다 폭신한 느낌을 주었다.
Vision Pro와 머그컵에서 공통점을 찾는 건 좀 오바일 수 있지만 어쨌거나 길이 없을 것만 같은 그 곳에서 애플은 새로운 이정표를 뚜벅뚜벅 만들어 내고 있다. 불편하고 힘든 부분을 인정사정없이 직시했을 것이며 그 구현에 있어 기술은 제약보다는 차라리 enabler의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자동차 번호판이 자동차의 아름다움을 망친다고 생각하고 (당연하지) 캘리포니아 법에 따라 번호판 없는 렌트카를 3개월마다 갱신했다고 한다 (대박이다). 어쩌면 위대한 디자인은 타협없는 간절함에 있는지 모른다. 잡스는 위대한 디자이너였다. 그리고 팀 쿡에 의해 계승되고 있는 one more thing은, 그것이 기예가 아닌 정신에 가깝다고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1] https://beebom.com/apple-vision-pro/
[2] https://9to5mac.com/2023/07/11/vision-pro-performance/
[3] https://namu.wiki/w/Apple%20Vision%20Pro
[4] https://outstanding.kr/2023visionpro20230706
[5] https://techcrunch.com/2019/10/17/how-unity-built-the-worlds-most-popular-game-engine/
[7] https://developer.apple.com/vision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