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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원 Jun 18. 2023

교수질의 종말

이번 학기 수업은 정말 십여 년 간의 티칭 경험 중에서 가장 이상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학생들이 반응이 없었다. 그게 어디 한두 해 일이겠냐마는, 강의 중간 중간 킬링 포인트에서 공감이 없는 것은 고사하고 조별 토론에서 피드백을 줄 때마다 분위기가 싸해지다 못해 나중에는 진도를 따라 오는지 확인하는 것 조차 두려워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개그콘서트에서 어디 한 번 웃겨봐- 하는 관객 앞에 선 느낌이랄까. 더 이상했던 이유는 이번 학기 강의 등록이 소위 '터졌'었기 때문이었다. 트렌디한 강의 주제를 죽자 사자 공부해서 어색함과 쪽팔림으로 첫 학기를 보낸 후, 나름 갈고 닦아 조금 쓸 만 하게 만든 2년차였다. 강의 등록을 못 해 정원을 늘려달라는 이메일을 제일 많이 받았고, 공대, 인문대, 디자인 학생들이 골고루 섞여 있어 프로젝트 결과물도 한껏 기대가 되었다.  


달뜬 기대가 차가운 현실에 무너지고 있을 때, 나의 생존 본능은 열심히 여러 가설을 세우고 있었다. 새로 오신 신임 교수님들이 강의를 너무 잘 하나? (대개 맞는 경우가 많다) 나와 이젠 나이 차가 너무 많이 나서 질문 하기가 부담스러운가? (이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내용이 어렵거나 아니면 취업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나? (사실 졸업반이 아니면 잘 모르긴 한다) 복잡한 마음에 염색이라도 할까라고 마음을 먹는 찰나, 무언가 학생들 서로 간에도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었다. 쉬는 시간이 너무 조용해서 이게 수업인지 쉬는 시간인지 구별이 안 되었고, 수업 시작 전 커튼도 안 열고 실내 전등도 켜지 않아서 어두컴컴한 교실에서 다 같이 핸드폰만 쳐다 보고 있기도 했다. 팀별 토론에서도 논의를 이끌던 리더가 팀원들이 너무 반응이 없어 복도에서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고, 너무 과묵한 팀원에 대해서 험한 성토가 오가기도 했다. 

 

그러니까 결국 문제는 뭔 이유에선지 서로 얼굴을 보고 공감하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공동의 결과를 위해 한 발짝 나아가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 것이었다. 원인은 - 만일 밖에서 하나 찾는다면 - 코로나일 가능성이 높았다. 상당 기간 동안 소통의 공백은 교우 관계를 맺을 기회 자체를 박탈하였을 뿐만 아니라 교감 능력 자체의 성장에 영향을 준 듯 했다. 신기한 것은 이런 와중에도 개별 과제 결과물의 퀄리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만족스러웠다. 활자를 통해 주어진 숙제를 전달받고 이를 시간 맞춰 해치우는 대한민국 수험생의 능력은 어디 다른 데 가지 않았다. 




위드 코로나로 돌아온 요즈음에도 비대면 일상은 여러 면에서 교육계에 돌이키기 어려운 변화를 남겼다. 특강이든 상담이든 연구 미팅이든 온라인 모임의 가능성을 연 것인데, 지리적인 이동 비용을 줄일 수 있다거나 언제나 볼 수 있다는 것의 상대적 장점을 항상 따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아마도 어색하거나 불편한 분위기 - 나 혼자 덜렁 남겨진다거나 어떤 권위에 의해 주목해야 하는 상황들 같은 - 를 강요받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왜 재미없는 당신 이야기에 단 1초라도 낭비해야 되냐'라는 물음인데 이는 실상 코로나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변화이다. 유투브의 넘쳐나는 콘텐츠들, 거대한 사교육 시장의 일타강사들, 더 이상 교권에 억압받지 않아도 되는 제도, 바늘 귀 같은 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수업들은 직, 간접적으로 교실에서 일견 버릇없고 교감이 어려운 세대를 낳았(을 것이)다. 


각종 가설을 검증하는 발버둥 속에 한 줄기 빛을 발견한 것은 뜻밖의 MBTI 덕분이었다. 정말이지 과묵하다 못해 정적과 같은 토론 시간을 보내는 조가 있었다. 같이 원인을 찾던 중 "믿지 않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E 입니다" 라는 한 조원의 고백이 툭 튀어 나왔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그럼 넌 지금 마음 속으로 우리랑 막 하이파이브 하고 있는 거니?"라고 묻자 갑자기 전체가 빵 터졌다. 뒤이어 "처음에 제가 낯을 좀 가려요"라는 대답이 돌아오기 무섭게 다들 자기의 MBTI를 털어놓기 바빴다. "나도 Big I야 얘들아. 저 교단 앞에 서서 말하는 것도, 사실은 약간 미친 척 하고 하는거야." 


항상 지각하는, 조별 실습 시간만 되면 컴퓨터로 카드 게임이나 만지작 거리는 한국말이 유창한 러시아 여학생이 있었다. 항상 모자를 쓰고 오고 팔에는 문신이 가득한, 밤에는 이태원에서 클럽 DJ를 하는 학생이었다. 학기 말 성적이 뻔히 보였으나 무슨 생각에선지 왜 지각하는지를 항상 묻게 되었다. "늦잠을 잤어요." "이태원에서 갑자기 사고로 버스가 막혀서 늦었어요." 조별 토론에서는 무슨 역할을 맡았는지도 꼭 확인했다. "저도 애니메이션을 맡았어요!"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나에게 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지각도 점점 줄어들었다. 조별 토론을 할 때에도 카드 게임을 계속 하긴 했지만 그래도 수업은 꾸역꾸역 나와 주었다.  




내가 석사를 마친 카네기멜론 대학은 과거의 철강의 중심지라는 영광이 녹슬어 있는 피츠버그라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 대학의 커다란 미스테리는, 실리콘 밸리의 냄새조차 맡을 수 없는 곳의 한국의 고등학교 만한 캠퍼스에 컴퓨터와 관련된 전 세계의 거목들과 수재들이 모여 든다는 것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수업의 담당 교수는 어느 날 Dijkstra's algorithm과 비슷한 문제들을 내 주면서 '자신을 직접 찾아와 토론할 수 있다'고 하였다. 끙끙대다 찾아 간 연구실에서 그는 마치 파인만이 살아있으면 그랬을 것 같은 패션을 하고 나를 맞아주었고 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모든 논리를 박살내었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발걸음에는 인류 지식의 경계에 도달한 자에 대한 경외감,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결심, 그리고 무엇보다 외국인의 어리버리한 영어에 존중을 잃지 않은 채 논박해 준 학계 전설에 대한 고마움으로 인한 충만함이 있었다. 


디자인과 학생들이 이제 교수 의견을 귓등으로 들어도 된다라고 생각하는 건, 사실 라떼를 생각해보면 천지개벽할 소리다. 하지만 이런 패러다임 변화가 전 사회 -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 군대, 그리고 직장까지 - 에 퍼지게 되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격변기에 대학의 역할은 도대체 무얼까? 내 지인의 말대로 어떤 exclusive한 social club이 되어 버린걸까? 최근 경험과 과거를 반추해보면서 어쩌면 우리들은 가장 살냄새나는 관계없이 살 수 없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줄어드는 인구와 AI에 의해 격변하는 직업, 지인들의 행복한 인스타 사진들 속에서 젋은 세대들에게 필요한 건 자신에게 딱 맞는 조언, 유머와 공감을 통한 소통과 섬김, 존경할만한 롤 모델이 아닐런지. 워낙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강의 만들기도 헉헉대지만 chatGPT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나 발견했다는 사실에 안도를 느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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