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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원 Sep 30. 2023

르 꼬르뷔제, 임윤찬, 그리고 예술

 

지금은 모교 건축학과에 있는 강모 군과 인도 여행을 계획한 건 아마도 대학교 2-3학년 때 즈음인 것 같다. 한창 건축을 보러 여기저기 돌아 다녀야 된다는 의무감이 든 시기이긴 했지만, 뭘 공부해보겠다는 뜻은 전혀 없었다. 첫 전공수업에서 제도기 소개했다고 분연히 뛰쳐나간 '승'모 선배 이야기는 아득한 전설일 뿐, 대부분의 우리는 조교 누나의 마음에 들기 위해 예쁘게 선긋기를 겨우 마친 시점이었다 (비록 C+을 받긴 했지만서도). 뉴델리에 내리자마자 우리를 기다린 건 온갖 질병과 사기꾼, 열악한 위생상황과 길거리에 널려 있는 소들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도시를 탈출하여 북부 히말라야로 가는 기차 루트를 그리던 중,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별 인기도 없고 교통도 불편한 찬디가르란 도시를 들르기로 결정하였다. 르 꼬르뷔제라는, 건축을 공부하다보면서 자꾸 걸기적(?) 거리던 건축가의 새로운 도시를 향한 비젼이 신기루처럼 남아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뭔가 좀 다르긴 했다. 그 낙후한 인도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모든 바닥이 콘크리트로 구획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릭샤의 덜컹거림이 조금 줄어들었을 뿐 길거리가 빈둥되는 성인 남자들로 뒤덮여 있는 건 매 한가지였다. 그러던 중 강렬한 첫 인상을 느꼈으니 역시 르 꼬르뷔제가 설계한 찬디가르 주정부 미술관에서였다. 마당의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커다란 선큰 공간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지친 다리를 쉬고 있을 때였다. 비가 부슬부슬내리기 시작하고 얼마 안 가 지붕에서 갑자기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높은 위치에서 떨어지는 물은 굉음을 내며 움푹 파인 공간을 서서히 연못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거장의 손놀림이 청각으로 전달되는, 정말 비현실적인 경험이었다. 


[1] 둥근 선큰 공간과 지붕 위에 나 있는 물길 (gargola)


이후 도착한 주정부청사 지역은 책에서 보던 익숙한 모습으로 나를 서서히 흥분시키기 시작했다. 엄청난 크기의 콘크리트 평야 위에 입법, 사법, 행정을 관할하는 건물이 서 있었는데 우리를 처음 맞이한 건 의회 의사당이었다. 앞머리를 올린 이마 같은 캐노피, 하이퍼볼릭 천창, 루버로 이루어진 파사드는 강한 개성 간의 강렬한 대조를 만들며 해자 위에 은은히 반사되고 있었다. 소성을 암시하는 곡선, 중력 방향의 반복되는 직선과 깊은 음영, 손으로 그린 듯한 개구부와 벽화는 조소와 회화와 건축 간의 경계마저 흔들고 있었다. 서울의 답답하고 암울한 풍경에 익숙한 우리들은 예술로 승화된 기계에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지붕 위로 솟은 저 대포 천창을 내부에서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의사당이 다보탑이면 법원은 석가탑에 가까웠다. 두툼하게 둘러쳐진 지붕과 외벽, 숭숭 뚫린 공간들은 기후를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쾌적한 내부를 만들었다. 딱 편안한 각도의 램프를 따라 올라 끌려 올라간 끝에는 사무실에는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 대신에 집 없는 가족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테라스에서 저 멀리 히말라야를 바라보던, 빛으로 감싸인 어린 소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시간이 멈추었으니 이 에피소드로 가득찬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Photography: Roberto Conte @  https://shorturl.at/tvxX4


건축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다. 스케일에 압도되는 경우도 있고, 디테일의 완벽함에 혀를 내두를 때도 있으며, 예산과 중력을 거스르는 형태에 본능적인 긴장을 느낄 때도 있다. 인간 행위의 원형을 담은 경우도 있고, 빛과 풍광으로 만든 서사일 때도 있으며, 이도저도 아니면 그냥 빈 공간의 모양이 감정을 자극하기도 한다. 하늘의 별만큼 느끼고 만드는 방법이 있다는 뜻일진대, 그 압도적 정점에 있는 건 르 꼬르뷔제라는 건축가이다. 여정을 겨우 시작한 병아리들에게도 시대를 초월한 위대함을 그냥 지나치기엔 그 포스가 너무 강렬했다.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 마지막 라운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한국에서 온 18살의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연주가 막 끝났다. 머리칼이 희끝한 노년의 관객들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활를 내려놓고 박수를 치고 지휘자는 순간 눈을 훔쳤다. 무슨 아이돌 콘서트 저리 가라인데 나도 같이 알아채고 기뻐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영상을 돌려 보니 어라, 라흐마니노프 2번이 아닌 3번이다. 그런데  전혀 난해하지 않고 신나고, 애절하고, 또 웅장하다. 결국 예술의 전당 공연 예매에 뛰어들었는데 대기번호 2만번을 받고 장렬하게 전사해 버렸다.  

 

이 연주를 설명하는 유투버는 그의 연주가 왜 다른지 심사위원들의 목소리를 빌려 하나하나 지적해준다. 일단 강약(pulse)과 방향(trejectory)이 훌륭한데 숨 쉬듯 리듬을 타되 전체적인 흐름이 느껴진다는 뜻이다. 타악기라 근본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옥타브를 옮기며 빠르게 쳐야 될 경우 더욱 어렵다. 다성음악(polyphony)의 특징인 여러 층(layer)의 멜로디가 모두 살아나며 한음 한음 뭉개지는 법이 없다 (articulation). 힘(power)과 속도(speed)가 모자른 느낌이 전혀 없으며 필요할 때 누르는 터보 버튼은 모두가 공감할 만하다. 아예 악보를 바꾸는 것에도 두려움이 없으며 (옥타브 낮추어서 소리를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오케스트라와 조화를 이루지만 때때로 급하게 이끌며 달려갈 때도 있다. (돌아보며 이제 가자! 라는 제스쳐까지 취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고귀함 (nobility)과 오로지 음악을 향한 순수함 (purity)을 느낄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hUFLepewgA


그런데 이런 설명이 그 연주의 위대함을 알아채는 데에 분명 도움이 되건대, 이를 딱히 알 리 없는 일반 대중들의 댓글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감동으로 가득 차 있다. 


"임윤찬은 저를 클래식에 입문시킬 것 같아요. ... 저에겐 정말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클래식을 잘 모르니까 임윤찬의 피아노는 뭐가 저에게 달랐는지 저도 잘 모르겠고 설명을 잘 못하겠어요.  그냥..  음악이 살아 숨쉬는 것 같이 느껴진다고 밖에 표현을 못하겠습니다." @sunj8851

"취미로 피아노 가끔 치는 사람이라 클래식은 깊이 잘 모르지만 원래 이런 공연보면 눈물이 나는게 맞는건지.. 피아노 연주 듣고 눈물이 계속 나는건 처음인데.."  @seungae 

"듣다 슬슬 포기하게 되는 시점이 2악장인데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2악장을 놓치지 않음 처음부터 끝까지 듣게 만드는 저력을 2악장에서 느낌" @Thedongsful 

"I don't know whether he is best or not but i am just crying every time I watch his playing." @mireajoe5915 

"I never get tired listening to this over and over again. It gets better everytime I listen." @Sophie-fs3yf 

" I watched Yunchan's performance live and can honestly say I was changed as a human. .. I saw God in his playing."  @johndaker9489

"Now I know, after listening this masterpiece, what Liszt would say to us and how great he is" @aug28th84 

"The 18-year-old boy exquisitely delivers 17-year-old Chopin's emotions and spirits!"  @jaydekaya2892 

"He becomes Johann when he plays Bach. He becomes Wolfgang when he plays Mozart. He becomes Ludwig when he plays Beethoven. He becomes Franz when he plays Liszt." @jhjoo96 

"An 18-year-old painter took down the Mona Lisa and hung up his own. Everyone agrees." @sbdIcan'tfind


2악장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었는지, 특히 작곡가들이 얼마나 위대한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하는건 익숙하거나 지루한 패턴이 완전히 다른 차원의 긴장과 떨림으로 다가온다는 뜻일 게다. 신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개인이 사라지고 더 나은 음악을 위한 의지만 보이기 때문이리라. 이건 임윤찬의 생활과도 연결되는데 SNS를 안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길 '작곡가들의 생각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스승인 손민수 교수도 그의 연주가 '작곡가와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다며 항상 가장 높은 기준을 가지고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아니, 그보다 그 수많은 해석 위에 도대체 또 무슨 새로운 것을 얹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까. 




A Walk at Dusk by Caspar David Friedrich (Getty Museum)


LA의 게티 미술관을 들렀다가 한 작품 앞에서 얼어붙은 적이 있다. 아주 작은 그림이었는데 숲 속의 무덤 앞을 걸어가는 모습이 나에게 여러 상상과 알 수 없는 느낌을 전달해 주었다. 그림에 전혀 주목하지 않는 인파 속에서 나만의 보물을 만들었다는 생각으로 뿌듯해 하던 중, 뮤지업 샵에서 이 그림으로 만든 엽서가 떡하니 있는 것을 보고 왈칵 놀람과 기쁨을 느낀 적이 있다. 꼬르뷔제와 임윤찬은, 눈치 챘겠지만 예술의 보편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개인의 천재적인 감성과 구도자적 노력이 거의 모든 이들에게 최고의 예술적 감흥을 안겨 준 사례이다. 예술의 주관과 객관의 논쟁을 아득히 넘어서서 인간 뇌 제일 안쪽 깊숙히 숨겨져 있는 비밀의 스위치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들의 위대함을 칭송하기 위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들의 천재성에 피흘리는 살리에리들이 모래알로 한 트럭은 될 것이다. (건축가 중 자기 자식에게 직업으로 추천하는 사람은 한 명도 못봤다) 오히려 깨닫게 되는 건 예술의 무한한 자유로움에 대한 안도이다. 그렇다면 하루키, 고흐, 꼬르뷔제의 스타일을 흉내내는 인공지능은 어떨까? 기계는 과연 가장 개인적인 판단이 가장 보편적인 감동을 주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진지하게 인공지능 예술가의 가능성을  물어본다면, 꼬르뷔제와 임윤찬이 직관적으로 알았던 '감동의 여부'를 데이터로 바꾸는 일이 그 시작이라 할 것이다. 임윤찬은 콩쿠르에서 본인 의도의 30%도 못 보여준 것 같아 속상하다며 전세계를 돌며 그 말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인공지능도 이제 걸음마도 떼기 전이다. 진정한 예술을 향한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Reference 


[0] 헤더 사진 출처  https://cliburn.org/yunchan-lim/#photos

[1] https://archinect.com/news/article/150020290/getty-foundation-s-keeping-it-modern-grants-conservation-efforts-for-twelve-major-works-of-20th-century-architecture#&gid=1&pid=1

[2] https://m.blog.naver.com/ywpark5293/222639438533

[3]  https://blog.naver.com/max63kr/110027924968

[4] https://www.youtube.com/watch?v=eLDc3KRZBfM&list=PLw2tSWTztRA1JjEZDiIIN6ML9FmkvrVZB&index=2

[5] https://www.youtube.com/watch?v=sBydUC6GhNI&list=PLw2tSWTztRA1JjEZDiIIN6ML9FmkvrVZB&index=3

[6] https://www.youtube.com/watch?v=QM-r-0uQnZ4&list=PLw2tSWTztRA1JjEZDiIIN6ML9FmkvrVZB&index=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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