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원 Nov 06. 2023

주례사 2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이 좋은 가을 날 한 커플의 성혼을 축복하러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신랑 김** 군은 학부 및 석사로 컴퓨터학을 공부하고 SK하이닉스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중 새로운 학문에 뜻이 있어 저의 지도 아래 디자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며 빅웨이브 로보틱스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신부 조** 양은 역시 컴퓨터학과를 졸업하고 다국적기업인 에머레이츠 항공과 자라에서 근무한 후 현재 쿠팡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선남선녀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정말 든든하고, 자녀를 키우는 아비로써 두 사람의 부모님들이 참 부럽습니다. 

 

김** 군은 박사과정 동안 연구실의 큰 형으로서 남다른 리더십을 발휘해 주었습니다. 저 모르게 후배들을 데리고 밥과 술을 무척 많이 사 주었는데, 개성 강한 연구원들이 끈끈해지고 한마음을 가지는 데에 참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회식비를 더 줄걸 하는 후회도 남습니다. 지금은 직장생활과 병행하여 지도를 받고 있어 좀 아쉽기도 하지만, 가정을 꾸리기 위해 밥벌이의 무게를 선택하는 것에 동의하였고 또 아낌없는 응원을 보냅니다. 


두 사람으로부터 주례사 부탁을 받은 후부터 결혼이 도대체 무언가에 대해 고민을 해 보았습니다. 혹시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생각해 볼수록 참 신기한 것 같습니다. 생면부지의 이성에게 끌리는 것도 그렇고, 겁도 없이 평생을 기약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배우자를 통해 비로소 남의 수고를 알게 되고, 또 자식을 위한 고단함을 함께 하며 늙어 가는 것도 그러합니다. 조물주의 섭리가 아닌 바에야 누가 시킨다고 그렇게 열심히 하겠습니까. 하지만 갈수록 결혼에 대한 생각이 다양해지면서 더 신중하고 까다로워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만일 선택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하나보다는 둘이 나을 것 같습니다. 잔소리는 싫지만 일단 심심하지 않습니다. 남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고, 자식 새끼하고 씨름할 때 선수교체도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인생에서 한번씩 주저 앉을 때 서로 일으켜 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랑과 신부는 서로를 위해 여기까지 정말 잘 커 왔다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자녀를 키우면서, 그 뒤에 숨겨진 부모님들의 노고와 애씀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만 마지막으로 어려울 때를 헤쳐나갈 지혜 하나를 주려 합니다. 결혼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여러 사람의 인생을 살겠다는 결심인 것 같습니다. 급한 연락이 올 때마다 가슴 철렁할 일들이 생길 것입니다. 사랑했던 만큼 더 야속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고 내팔자야' 라고 한탄할 때가 분명 옵니다) 혹자는 기대가 작은 것이 행복에 이르는 첩경이라고도 하는데 저는 이것을 '꼭 이래야 된다'라는 마음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결혼을 통해 더 다양한 인생을 사는 동안 그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다라는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펼쳐질 때마다, 그 동안 당연시했던 것들에 감사하고 겸손해지면 됩니다. 힘을 빼야 될 때를 안다면, 배우자와 함께하는 롤러코스터를 훨씬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습니다. 


괜히 겁먹을 것 없습니다. 군대 제대한 복학생이 신입생들이 부러워서 하는 말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마음껏 즐기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의 하나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그 앞날을 축복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르 꼬르뷔제, 임윤찬, 그리고 예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