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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눈, 하는 손

by 이상원

나에게 건축이라는 매력적인 분야를 손절하게 만든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그 알쏭달쏭한 평가 기준이다. 소싯적 이 답답함을 나타낼 방법을 애타게 헤메던 중 그럴듯한 것을 하나 찾아내었다. 아래 영상에 등장하는 건축가는 바로 프랭크 게리로 포스트 모던의 시대에 세상 둘째가라면 서러울 명예와 인기를 누리는 분이시다. 영상은 그의 작업 과정 일부를 기록한 귀중한 다큐인데, 도대체 건축 설계 중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한 번 살펴보자.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으며 전설의 반열에 오른 건축가와 그를 신봉하고 손발이 되는 것을 일생의 과업으로 삼기로 한 파트너(분명 쉽지 않은 선택이다)가 한창 작업 중이다.

매스(덩어리)들을 잘라내기 시작하는데 이미 프로그램(기능)을 우선 고려해서 선택된 위치와 크기는 근본적으로 변경하지 않으면서 그 외형을 바꾸고 있다.

게리는 이들이 뭔가 마음에 안 든다면서 시간을 두고 생각하더니 너무 거만(pompous)하다며 모서리를 깎아 높이를 낮춘다. 위압적인 탑들이 겸손해진다.

대충 잘라내는 위치나 정도에 거침이 없다. 문제의 특성 상 하나의 변경에 여러 부분이 동시다발적으로 영향을 받는데, 경험에 기반한 각종 priority와 tradeoff를 통해 주먹구구식 최적화가 이루어진다.

특기할 것은 잘라낸 부분을 다시 복기하는 일은 물리적으로 쉽지 않기에 사고의 방향이 사실상 비가역적으로 진행된다. 게리의 주문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실행해 줄 사람이 중요한 이유기도 하다.

그럼에도 예상치 못한 못 생긴 입면이 나타나면서 고민에 빠진다. 왜 싫어하는지 이유를 안다고 하지만 구지 말하진 않는데, 애매한 비례의 둔중한 사각형이 애매한 위계의 날개를 가지고 있다.

골판지처럼 구겨진 면으로 최종 결정하며 구겨진 각도를 보니 이미 내부에 있는 벽면의 각도를 따른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에는 진심으로 오랜 숙제를 마친 사람처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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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최선입니까? ㅎㅎ

짧은 과정이지만 나중에 이 건물을 사용할지 모르는 대중으로서 얼마나 설득이 되시는지. 건축을 배우는 학생의 입장에서도 말로 잘 설명할 수 없는, 때때로 극히 개인적인 미학 기준에 공감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무엇보다 딱히 경제적 이득이 보이지 않는 비정형 매스의 청구서를 순순히 받아들일 클라이언트가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그의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조차 그가 걸어 온 길을 저평가할 순 없다. 오랜 암흑기를 이겨내고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자신만의 미학을 찾아내고 완성시킨, 인류에게 새로운 익숙함을 안겨 준 위대한 파이터니까.



필자가 학교에서 작은 보직을 하며 관여했던 작업이 하나 있는데 바로 개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엠블럼이다. 시각디자인 전공자가 아니면서 다양한 구성원들의 여러 요구 조건을 만족시키는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 나름 심적으로 상당히 부담가는 작업이었다. 평판과 경력을 바탕으로 선정된 업체(tangiblebd.com)는 짧은 작업 시간과 많지 않은 예산을 극복하고 다음 네 가지 안을 전달해 주었다. 어떠한 사전 설명 없이, 최종 선정작을 모른 채 아래 후보들을 음미해보고 가장 좋아하는 안을 골라보자. 왜 그 안을 골랐는지도 자문해보시길.


탠저블에 의뢰한 연세대 140주년 엠블럼 안


A안은 일단 가장 격렬한 반응을 불러왔다. 새 실루엣이 독수리가 아니라 비둘기나 닭 같다는 험한 지적부터 날개 부분이 마치 우체국 같은 관공서를 연상시킨다는 의견도 있었다. 마음 편하게 제외할 수 있어 조쿠나 둘째 안은 나름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독수리 얼굴 부분을 더 강인하고 샤프하게 조정해달라는 주문을 적용한 후였다. C안은 개인적으로 가장 호감이 간 것으로 가장 강렬하고 심플한, 그러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느낌이었다. 모바일 기기 등장 이후 스케일 다운이 필수여서 디테일이 좀 없는 것에 눈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D가 문제작이었는데 상징이 아예 사라지고 추상만 남은, 왜 제안에 들어 있었는지 정말 미스터리한 안이였다. 아니나 다를까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했는데, A안과 같이 욕을 먹는 것도 넘어서서 아예 언급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단, 시각디자인 전공 교수님께 보여드리기 전까지 말이다.


소위 SKY대학의 엠블럼. 서울대는 아무리 잘 봐주려해도 ㅠㅠ


사실 전공 교수님도 D안이 제일 좋다는 딱히 설득력있는 이유를 전달해 주진 못했다. 그냥 정답이 '떡'하니 보이고 만일 최종 선택자가 이것을 선택하게 된다면 정말 좋은 일일 것이라고만 하였다. 그러면서 같은 이유로 라이벌 학교의 그것이 매우 수준 높은 작업이라고 하였는데 (위 가장 오른쪽) '아 저것보단 잘하는 건 어렵지 않겠네'라고 안심했던 생각이 한없이 쪼그라드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경험이 많은 업체에서 이미 이러한 결정 과정을 잘 알고 안을 제공해 준 것이라고도 했다. 즉 A에서 D로 갈수록 아는 자의 눈에만 보이도록 나열했다는 것인데, 정말 뭔가 그래보이지 않는가? 결국 결정권자의 오랜 고민 끝에 최종안은 B로 선정이 되었고, 정말_최종_안에는 조금 더 대중화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 차이가 보이시는지?) 지금도 구성원에게 자긍심을 주는 엠블럼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데, 뭐가 더 좋은 결과인지는 둘째치고 나만 간직한 없어지지 않을 찜찜함을 남겼다.




chatGPT의 등장은 대학생들이 학습을 하는 방식만 바꾼 것이 아니라 교수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잘 안보이겠지만 교수들의 진정한 전장은 바로 국제 학술지이다 (publish or perish라는 과격한 격언이 있다). 논문 리뷰어와 학술지 에디터에게 내 논문을 실을 가치가 있다고 설득하는 교수직의 생사를 건 영업의 장이다.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연구의 훌륭함 판별이 항상 자명하거나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서 좋은 결과는 댱연하고 어떻게든 호의적인 편향을 받기 위해 온갖 머리를 쥐어짜낸다. 오죽하면 연구에서 가장 오래 걸리는 것은 예산도, 실험도, 학생도, 데이터도, 리뷰도, IRB도 아니고 documentation이라고 할까. 툴툴댈 수도 없는 일인 것이 대가의 그것을 보면 하나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극도로 정제된 작품에 가깝다. 여기서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는 어려움은 바로 영어 작문이다.


요즘은 네이티브에 가까운 연구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이들에게 GPT는 영어 논문 작성의 game changer가 되고 있다. 머리 속에 간질거리는 그 단어가 떠오르지가 않아서, 과연 이 문장이 어떤 뉘앙스로 다가올지 불안해서 하루에 한 문단 진도 나가기도 벅차던 것이 특정 학술지 스타일로 챕터 하나를 순식간에 몇 번이고 볼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먼저 떠오르는 대로 한글이든 영어든 막 뒤섞어 쓰고 맡기는데서 시작한다. 특정 학술지 문체나 톤을 요구할 때도 있고 글자수를 맞춰 달랄 때도 있다. 첫번에 만족스러운 경우는 거의 없는데 LLM 특유의 그 문체는 둘째치고 분야의 전문가들만이 알 수 있는 뉘앙스, 용어들의 학술적 의미, 그리고 죽일 듯 달겨드는 리뷰어의 심경을 건들 말투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강점은 부각시키고 단점은 미꾸라지처럼 피해나가기 위한, 그래서 감동(의 합격!)으로 끝마치기 위한 스토리 제작에 본격적으로 들어간다. 이를 위해 한영사전이나 유사어사전, 관용구사전 등이 추가로 총동원된다.

이런식의 피드백인데 꽤 정확할 때가 많다


이렇게 1차 드래프트를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릴 눈이 있는가가 훌륭한 연구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면 과장으로 들릴런지 모르겠다. 결국 최종 게이트키퍼를 뚫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말빨'인데, 이의 주요 근거가 되는 것은 바로 내가 한 '행동'이며, 이는 결국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설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족한 부분을 아프지만 정확하게 지적할 수 있는 brightest minds를 품기 위해 대학과 연구소들은 경쟁을 펼치고, 또 이러한 눈을 갖기 위해 교수들은 밤낮으로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다. 초기 드래프트를 지나 GPT와의 옥신각신 끝에 나름 만족스러운 버젼이 도출될 때면 가끔씩 느낌표까지 붙여가며 잘썼다고 칭찬을 받을 때도 있다. 안도, 뿌듯함, 그리고 약간의 서늘한 감정이 교차하면서 알파고를 이겨먹었던 이세돌의 심정에 문득 생각이 미친다. 물론 항상 이런 건 아니고 GPT가 고집스럽게 제안하는 것을 고집스럽게 끝까지 안 쓰는 경우도 있다. 그냥 내 직감이 더 나은 것 같을 때이다.




임윤찬의 유투브 연주 영상 아래 댓글에는 항상 극찬으로 가득 차 있다. 가끔 악플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한글의 경우는 대부분 칭찬일색이다. 그 중 하나 내 머리를 계속해서 떠나지 않던 영어 댓글이 하나 있었는데 대충 다음 내용이었다.

"임윤찬의 위대함은 그 연주에 있지 않다. 완벽한 테크닉을 가진 신동의 등장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 왔는가. 우리는 그의 듣는 귀가 해 준 선택에 감사해야 한다."

글쎄, 그의 천재성을 단번에 보여주는 건 그의 극악스러운 터치에 있지 않았나. 물론 그가 전달하는 감성이 훌륭하기도 하지만 테크닉이 갖추어진다면 오히려 이런 선택은 쉬운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다. 정말 그와 같은 테크닉을 가진 사람이 많아도 그의 연주가 돋보일까. 그의 머리가 그의 손을 이끈 것보다 그의 손이 그의 머리에 자유를 준 것이 더 크지 않을까. 내가 원하는 그 소리가 나오지 않아 좌절하는 음악가가 더 많지 않은가.


임윤찬의 '선택'이 돋보이는 경우가 두 가지 정도 떠오르는데 바로 원래 스코어를 변형한 때(루바토)이다. 하나는 라흐마니노프 3번으로 왼손 반주의 옥타브를 하나 더 낮추어 버렸다 [1]. 더 웅장한 효과를 내기 위해 작곡가의 지시를 멋대로 어긴 것으로 실제 연주에 참여했던 오케스트라 단원이 이 부분을 해설한 유투브에 댓글을 달았다 ('정말 맞아요~' 정도?). 또 하나는 쇼팽 에튀드 앨범 중 가장 맛깔스럽게 친 '나비'로 그냥 없는 음을 하나 만들어 버렸다 [2]. 역시 왼손으로 반복되는 패턴을 흥에 못 이겨 악보에 없는 음을 한 번 더 나가 버렸다. 다만 이는 혼자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라흐마니노프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를, 쇼팽은 이그나츠 프리드먼의 연주를 그대로 따라한, 오마주에 가까운 것이었다 (심사위원들 앞에서 한 게 미친 짓이지만서도). 사실 임윤찬의 옛날 피아니스트들에 대한 사랑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공개한 애플 플레이리스트에는 19세기 소위 피아노의 황금기들 레코드로 가득한데 [3] 리파티나 코르토 정도 빼고는 듣도 보도 못한 연주자들이다. 이렇게 100년전 음악에 빠지는게 얼마나 흔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으로 유도한 것이 손인지, 귀인지, 머리인지 알 길이 없으나 그는 우리에게 확실히 '난이도'와 '실행도' 면에서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HTo6krH880


지휘자인 마린 알솝은 18살짜리가 그런 영감같은 취향을 가진 것과 관련하여 old soul이다라는 것을 넘어서서 reincarnation(환생)을 생각케 된다고까지 하였다 [4]. 그녀애개도 그만한 영감(inspiration)을 10대가 도대체 어디에서 가져왔겠느냐는 반쯤은 경외하는 심정에서 나온 말로 짐작해볼 뿐이다. 어쨌거나 그런 목표를 가진, 게다가 완벽한 테크닉의 자질을 갖춘 윤찬로서는 연습이란 정말 보상 가득한 고통일 것이다. 장영주가 child prodigy에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삶을 온전히 살아라 - 나가서 즐기고, 사랑하고, 고통받고 - 라고 한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임윤찬은 절대적 고독을 위해 산 속에 혼자 들어가 연습하는게 소원이라고 하니, 자기 내면 깊숙히 길어 올릴 무엇이 너무도 많은가 보다.




디자이너든 연주자든, 혹은 영화감독이든 kpop 작곡가든, 그들의 꿈이 우리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경우를 보게 된다. 우리의 기대를 훌쩍 뛰어 넘는 천재들의 영역도 있지만, 우리가 바랬지만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을 기필코 이루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경우 우리가 그려 보았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성취이다. 그러나 실제로 꿈을 꾸는 것은 괴롭다. 현실적인 문제도 그렇거니와 나보다 더 높은 꿈을 더 쉽게 이루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꾸지 못하는 것은 죽은 것과 다름 없다.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관대한 사회, 그리고 돈과 지위 자체가 꿈이 되지 않는 사회, 인생을 하나의 꿈을 위해 걸어볼 수 있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1] https://youtu.be/DhUFLepewgA?si=U5BoEA_YU2xPZJwc&t=1704

[2] https://youtu.be/15whVdgHyDo?si=hSc8UF5R4wENIPnB&t=603

[3] https://music.apple.com/us/playlist/yunchan-lim-the-golden-age-of-piano/pl.b2fdd1a5358c430aaa6ad82086b3ef8e

[4] https://www.youtube.com/watch?v=QHTo6krH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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