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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소유 Feb 15. 2024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남포동극장가의 추억

  영화가 보고 싶으면 으레 남포동을 나갔다. 집에서 가까운 극장이 남포동에 모여 있었고 그때 우리에게 영화는 큰 즐길 거리 중 하나였다. 처음으로 남포동에 나가 영화를 본 것은 중학생이 되고 나서였다. 일요일 오전 대학생이었던 사촌언니와 만나 극장 나들이를 했다. 언니는 내 기호에 맞춰 영화를 골랐고 그날 우리는 <영심이>를 보았다. TV에서 방영하던 만화 '영심이'를 좋아해서 영화도 보러 갔는데 만화 캐릭터에 비해 실사 배우가 영 맘에 들지 않아 실망하며 극장을 나왔던 기억이 난다. 또 당대 최고의 하이틴스타 이미연이 주인공이었던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도 보았다. 주인공에 감정이입할 만큼 과하게 공부를 하지도 않았으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펑펑 쏟았다.


 중고등학생 때는 시험을 마친 날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부영극장 앞은 긴장이 풀렸는지 고삐가 풀렸는지 모를 여학생들로 북적댔고 그 들뜬 열기가 극장가 거리를 가득 채웠다. 아직도 기억나는 영화는 1994년 국내 개봉했던 <필라델피아>다. 동성애자나 에이즈에 대해 가십거리로만 알거나 입 밖에 내기를 꺼려하던 시절에 그러한 주제를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보게 했던 영화였다. 고된 시험을 끝내고 보기에 참 무거운 주제였지만 처음으로 영화가 던지는 화두를 막연하게나마 깨달았고, 그것이 나는 어쩐지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친구들과 만나 영화를 볼 때면 부산극장 1층 맥도날드가 만남의 자리였다. 영화 시간 전까지 신나게 수다를 떨다가 영화를 보고 나면 다시 맥도날드에 둘러앉아 방금 본 영화 얘기로 또 한참을 재잘댔다. 소개팅을 할 때도 영화를 보곤 했다. 낯선 상대와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처음 만난 상대의 첫인상에 따라 그 컴컴한 공간과 시간이 살짝 두근거리기도 내심 불편해지기도 했으니, 영화는 그렇게 들러리가 되기도 했다. 물론 남자친구와의 데이트에도 영화는 빠지지 않았다. 처음 함께 본 영화표부터 시작해 매번 본 영화표 딱지를 노란 병아리가 그려진 앨범에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2000년 전후로 남포동 극장가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익숙했던 극장들이 하나둘 대기업 멀티플렉스 상영관으로 바뀌어갔다. 부영극장, 부산극장, 대영시네마, 국도극장이 있던 자리는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CGV가 되었다. 남포동 극장가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듯 좁고 낙후된 시설의 극장들은 최신식 영화관으로 바뀌었고 극장 이름도 달라졌다. 나에게는 그저 깨끗하고 편안한 영화관이 새로 생긴 정도였다. 매년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곳이니 변화가 필요하겠구나 싶기도 했다. 그래도 이렇게 고민 없이 순식간에 헐릴 일인가. 그 이름의 장소에 쌓인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려나,라는 생각이 든 것은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였다.


 2006년 남포동을 오가다 ‘국도예술관’ 간판을 발견했다. 옛 국도극장은 진작 남포 CGV영화관으로 바뀌었고 국도극장 2관 건물이 국도예술관으로 살아남았다고 했다. 살아남아서 ‘국도’라는 이름이 더 반가웠다. 이름처럼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극장이었다. 처음 본 영화는 <브로크백 마운틴>이었다. 관객은 나포함 3명. 오직 영화와 나뿐인 듯 오롯이 영화에 빠져드는 시간이었다. 영화 자체의 감동도 있었지만 영화관 자체가 주는 아늑함이 있었다. 국도예술관 인터넷 카페에 가입을 하고 상영시간표를 자주 살피며 눈길이 가는 영화를 보러 다녔다. 예술영화전용관답게 보다 조는 영화도 있었지만 그 특별한 공간에 속한 느낌이 근사하게 다가왔던 날들이었다.


 다음 해 결혼을 하고 북구에서 2년 가까이 살았다. 가끔 남포동으로 올 일이 있었지만 새로운 삶에 적응하느라 예전처럼 다니기는 힘들었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6개월에 들어설 무렵 다시 남구로 이사를 했다. 이삿짐이 다 정리되었을 즈음 산책 삼아 동네를 탐색하는 길에 다시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국도 예술관’이었다. 2008년 극장 건물이 철거되면서 사라질 뻔했지만 다행히 남구에 있는 가람아트홀로 이전해 올 수 있었다고 한다. 나 혼자 반가워 어쩔 줄을 몰랐다. 상영관은 훨씬 작아졌고 약간 지하에 위치해 늘 습한 느낌이 감돌았지만 영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더 아늑했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자주 찾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짬을 내어 영화를 보는 동안은 나에게 집중하며 육아에 지친 마음을 달래고 새로이 힘을 얻어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2018년 1월 말 국도예술관은 영업종료를 공지했다. 대연동으로 이전하고 재개관한 지 10년째가 되던 해였다. 처음 문자로 소식을 받고 내 마음은 먹먹하고도 막막했다. 남포동 극장들이 모두 이름을 잃고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바뀔 적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그때도 지금도 너무나 순식간이었다. 국도예술관, 이름 때문이었을까. 나의 추억을 품었던 남포동 극장가의 역사가, 기어이 마침표를 찍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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