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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소유 Mar 27. 2024

나의 이름은


  최근 이름을 바꿨다. 법적으로 개명까지 한 것은 아니고, 연예인의 예명처럼 작가의 필명처럼 그렇게 바꿨다.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바꾼 이름은 아니다. 아버지가 잘 아는 작명소에서 받아 오셨다. 여러가지 이름 후보군이 있었는데 어떤 이름은 촌스러웠고 어떤 이름은 무난한 대신 흔했다. 한번 퇴짜를 놓고 두 번째 받은 이름 중에 마음에 드는 이름을 만났다. 소유, 나의 새 이름이다.


  나의 첫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단다. 당신의 첫 손녀여서 할아버지가 귀한 마음으로 손수 지어주신 건지, 손자가 아니라 손녀라 굳이 철학관을 찾는 품이나 돈을 들이는 대신 직접 지어주신 건지는 알 수 없다. 당연히 전자일 거라 믿고 살았는데 내 밑으로 남동생 둘은 모두 철학관에서 지었다고 하니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게다가 어른이 되어 사주를 볼 때마다 이름을 잘 못 지었다, 이름을 바꾸라는 말을 듣곤 했으니 말이다. 부모님까지 나서서 이름을 바꾸자고 할 때는 개명을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러다가도 내 인생이 부모님 눈에는 썩 잘 풀려 보이지 않은가 싶어, 그거 다 미신이라고 심통을 부리다가 흐지부지되곤 했다.


  혜경. 평범한 이름이다. 나조차 내 이름에 이렇다 할 감상이 없다. 어릴 적에 가족과 친지들은 흔히 그러듯, 끝 이름자에 ‘아’만 붙여 ‘경아야’라고 불렀다. 나중에 학교에 들어가 정식(?)으로 혜경이라고 불리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오랫동안 나는 경아였다. 그래서 그 시절 가수 박혜성이 ‘경아’라는 노래를 불러 인기를 끌었을 때 꼭 나에게 불러주는 노래 같아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당시 라이벌이었던 가수 박혜성과 이승진 중에 나는 말할 것도 없이 박혜성의 팬이었다.


 경아.라는 이름은 내 20대 초반에 불렸던 별명으로 이어진다. 한창 PC통신에 빠져 살던 대학 시절 밤마다 시끌벅적한 접속 소리와 함께 전화선으로 연결되던 통신 친구들은 나를 ‘갱아’라고 불렀다. ‘경아’라는 이름에 친구끼리의 장난기가 가미된 버전이랄까. 거기에 성을 붙이면서 나의 또 다른 이름은 ‘전갱이’가 되었다. 그 시절, 요즘 말로 하루키 덕후였던 나는 전갱이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하루키 책 속 인물들이 전갱이 요리를 자주 해 먹었다는 시시한 이유로도 불만 없이 전갱이로 불리었다.


  하루키 덕후로 활동하던 그쪽 세계 친구들에게 불리던 또 다른 별명도 있었다. 짧았던 PC통신의 시대는 가고 바야흐로 인터넷 시대가 열렸던 2000년 초반, 나는 전국구 인터넷 하루키 동호회에서 활동했다. 그때 내가 정한 아이디는 ‘유키’였고 동호회 사람들에게 나는 ‘유키’라 불렸다. 유키(雪)’는 하루키 책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장편 <댄스 댄스 댄스>에 나오는 묘한 매력의 열세 살 여자아이 이름이었다. 소설 속 캐릭터가 은근 내 마음을 끌었고, 유키의 일본어 뜻이 ‘눈(雪)’이라는 것도 좋았다.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는 하루키 덕후 친구들에게 나는 여전히 ‘유키’로 불린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기 위해 본명 외에 다양한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아명(兒名)이라 해서 어릴 적 불리는 이름이 있었고 성인이 되면 다시 허물없이 불리는 자(字)도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짓거나 남이 지어주는 호(號)도 본명 외에 다수 존재했다. 물론 양반 성인 남자에 국한된 것이긴 하였으나, 이렇게 나를 부르던 이름 또는 별명들을 하나하나 나열하고 보니 양반도 뭣도 아닌 나에게 아명도 있었고 호도 있었구나 싶어 흥미롭다.


  다시 나의 첫 이름을 생각한다. 혜경. 惠(은혜 혜) 卿(벼슬 경). 성명학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지만, 할아버지는 첫 손녀인 내가 남자 못지않게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바라셨던 것은 아닐까. 더불어 지혜로운 사람으로 말이다.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한자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세심하게 손녀의 이름자를 찾으셨을 할아버지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진다. 이제는 할아버지의 심중을 알 도리가 없지만 첫 손녀에게 기대하는 바람이 분명 이 이름 속에 담겼으리라 믿는다.


  나의 새 이름 소유. 음색이 매력적인 여가수가 떠오른다. 이름만 있을 때보다 내 성을 붙여 부를 때의 느낌이 경쾌하다. 전소유. 모든 걸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은, 여유로움이 한껏 묻어난다. 아버지는 내 이름을 바꿔주는 일이 흡사 당신 생전의 사명이라도 되는 듯, 꼭 바꿔주고 싶다고 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철없는 이유로 또 심통을 부릴 수는 없었다.


  무릇 이름이라 하면 그저 법적으로 통용되는 이름만이 나를 증명하는 거라 여겼다. 그래서 내 이름이 별로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무심한 척하다가도, 인생이 좀 고달플 때면 조금은 신경이 쓰였다. 이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나를 이름이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그런데 이렇게 내가 불렸던 이름들을 나열하고 보니 나는 내 삶의 여러 소중한 이들에게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왔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 이름들 속에는 이름을 붙여준 사람들의 다양한 마음이 깃들여 있음도. 손녀가 지혜롭고도 큰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가족과 친지, 친구들의 다정하고도 허물없는 마음 그런 것들. 그리고 아버지의 딸에 대한 사명감과도 같은 뭉클한 마음까지.


  처음 이름을 바꾸자는 말을 들었을 때 뭔가 이 이름으로 살았던 삶까지 싹 사라지는, 혹은 부정하는 것만 같아 머뭇거렸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니 이름은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새로 생기는 것이었다. 정다운 이름들이 켜켜이 쌓인 오랜 지층 맨 꼭대기에서 알알이 쌓여갈 새로운 지층처럼, 나는 새 이름이 생겼다. 꽤 마음에 드는 경쾌한 이름처럼 남은 삶도 그렇게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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