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럽지도 않게 코끝이 차가운 바람이 일고, 가을은 지나가고 있다.
돌고 돌아 요즘 다시 독서를 시작했고, 주말부터 "대학, 중용"을 읽고 있다.
남편은 이십대 초반부터 중국 고전, 특히 논어를 즐겨 봤었는데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읽기 시작했다.
대학의 중반부쯤 읽었는데 그야말로 심금을 울리는 구절이 있어, 기록을 위해 글을 쓴다.
대학 제9장 제가치국 중에서
강고에 말하였다.
(백성을 보살피기를) 마치 갓난아이 돌보듯 한다.
마음으로 정성껏 (백성들이 원하는 바를 헤아려) 찾으면,
비록 (백성들의 뜻에) 적중하지는 않더라도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식 기르는 법을 배우고 시집가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대학,중용P. 98~99./ 을유문화사
이 구절은 본래 위정자가 백성을 자기 자식처럼 여겨야 한다는 말로 해석이 된다고 한다.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오늘이 난세라서일까.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서일까.
마음에 뜨거운 뭉클함이 맺히는 구절이었다.
이 구절은 위정자의 마음됨까지는 내가 참견할 바가 아니지만, 지극히 소인인 부모마음으로 읽혔다.
정말 그랬다. 줄곧 혼자 살거라고 외쳤던 내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서 내가 이렇게 온화한 마음으로 키우는 걸 보면서 주변 사람들은 또 한번 놀랐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화가 많은 사람이었다.
상대가 나를 부정하게 대할 때는 그 자리에서 응수를 해야 직성이 풀렸고,
상대가 누구든지 내 생각과 맞지 않는 사람과는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든 해야할 말이 있으면 참지 않고 그 자리에서 쏘아 붙였고, 공격하고, 나무랐다.
상대가 나에게 잘못한 일은 두고두고 곱씹었으며, 꼭 되갚아 주리라 다짐하고 살았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그야말로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 열렸다.
이상하게도 아이에게는 거의 화가 나지 않았다. 물론 사사로운 일로 아이에게 야단을 치고 감정적으로 대하기는 했지만, 이전의 나와는 놀랄만큼 달랐다.
아이가 하는 말은 되도록이면 다 들어주려 했고,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의 편에서 안아주고 응원해줬다.
부정적인 말은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려 했고, 아이가 모르는 것은 최대한 알아듣기 쉽게 그때그때 알려줬다. 그야말로 마음을 다해 아이와 함께했다. 물론 현재도 그러는 중이고.
그리고 이따금씩 생각했다.
어째서 이토록 화가 많은 내가 온순해졌을까.
어째서 자식을 이렇게나 사랑해도 되는걸까 싶을만큼 사랑하며 살고 있을까.
오늘 이 구절을 읽으니, 아이에 대한 나의 모든 마음과 행동은 비로소 천성이고, 그것이 내리사랑이란 걸 알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아이를 사랑해야한다. "따위의 말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다.
혹여 나온다 할지라도, '그렇구나.' 하고 책장을 휙 넘겨버렸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오히려 자라면서 "니 자식 낳아봐라. 너는 엄마보다 더 할거다."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잔소리겸 푸념처럼 듣고 자랐다. 그리고 그땐 저 말이 어떤 뜻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했다.
아이가 크면서 부모도 함께 자란다는 말이 있다.
인생에서 내게 이렇게 큰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자식말고 또 있을까.
존재 만으로 감사하고 행복한 사람이 또 있을까.
아마도 대학에서는 이 세상의 위정자 중에 백성을 자기 자식처럼 대할 수 있는 자는 있을 수 없기에 이런 이상적인 말을 남기지 않았을까 싶다.
난데없는 서평을 기록하며 11월의 첫 월요일은 이렇게 흘러간다.
2020년 11월 2일 나의 한 평짜리 서재에서 BY.에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