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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현 Jan 12. 2020

내가 지금 마늘이나 까고 있을 때야?

(어느 아재의 반성)

지근지근 두통이 몰려온다.

고된 노동에 지친 두뇌가 보내는 파업 신호다.

양 손의 검지로 관자놀이를 강하게 눌러 진압한다.

"그라믄 안 돼!"

하지만 그때뿐이다.

진압작전이 끝나면 파업 세력이 곧바로 다시 봉기한다.

웬만하면 이렇게 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좀 더 강력한 물리적 처방이 필요하다.


“두통약 어디 갔어?”


그런데 이 순간!

가뜩이나 머리에 뚜껑이 열리는 과열 상태인데

마눌이 마늘을 까달라고 한다.


“내가 지금 마늘이나 까고 있을 때야? 확 그냥!”


욱하는 감정이 명치끝에서 올라와 후두부를 강타한다.

다행히도 전두엽의 신속한 개입으로

입술사이로 말이 새 나가는 비상사태를 가까스로 막아냈다.


“에라~ 모르겠다. 마늘이나 까자.”


뭉툭한 손톱으로 애써 마늘 껍질을 한 꺼풀씩 벗겨내는데…

이거 쉽지 않다.

힘을 주면 푹 들어가고 힘을 빼면 껍질이 걸리지 않는다.

생각보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눈이 점점 맵고 따가워진다.

나도 모르게 슬쩍 비볐더니,

쓰바 눈물까지 주룩주룩.

아놔~ 진짜 딴생각이 안 난다.


어라! 근데 이건 뭐지?

난 그냥 쪼그리고 앉아 마늘을 깠을 뿐인데

그저 매워서 눈물을 흘렸을 뿐인데

어느새 머릿속이 개운해진다.

신묘하다.

마늘은 항암효과가 있다던데,

마늘 까기는 두통에 효과가 있나 보다.

이거 FDA 승인받아야 하는 거 아냐?

마늘 까기의 효능을 좀 더 느끼고 싶어 힘차게 외쳐본다.


“마늘 더 깔 거 없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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