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재의 반성)
조직에 몸담고 있을 때
나의 목표는 위로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위로 올라가야 하고
위로 오르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늘 뭔가에 쫓기듯 노심초사했고
소신보다는 위의 눈치를 살펴야 했으며
주변의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나를 위협하는 경쟁자로 보이곤 했다.
조직이라는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보다 먼저 올라가거나 최소한 제 때에는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야 할 때 올라가지 못하면
마치 미끄럼틀 위에 선 것처럼 미끌려 내려와야만 한다.
올라갈 때는 그리도 힘들었는데,
내려올 때는 어찌 이리 허망하게 내려오게 되는지.
다시 올라가려면 맨 끝에서 줄을 다시 서야 한다.
머리 내밀어 여기저기 기웃거려봐야 소용없다.
다음 기회는 없고 안스러워 챙겨주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한번 미끌리고 나면
회복하기 힘든 충격과 절망감에 휩싸이고 만다.
공든 탑이 멀쩡하게 서있다가
맥없이 자빠져버린 꼴이랄까.
한편으로 올라갔다 한들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자리를 노리고 뒤에 줄 서 있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위로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은
오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다 미끌려 내려올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리고 막상 내려오고나면 황당하게도
내가 어느 자리에 있다가 내려왔는지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조직을 막상 떠나 세상을 경험해보니
그 좁디좁은 구석에서
따져보면 별 것도 아닌 일에
자존심을 너무 심하게 걸어버린 채
죽네 사네 이전투구했던 나의 과거가
어찌나 부질없고 한심해 보이는지 모른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사소한 일에
유치찬란하게 목숨 걸었던 일이 너무 많았다.
'우물 안 개구리'다.
아니, 이 말로는 부족하다.
개구리는 그래도 우물 밖으로 나오면
여전히 개구리 구실을 할 테지만,
조직이 오직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면
조직 밖으로 나왔을 때
자칫 제 구실을 못할 수도 있는 현실이니 말이다.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조직 속 올챙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