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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 Mar 12. 2021

콘티 작가에 대한 환상

콘티 작가라 될 수 있는 확신과 함께 나는 퇴사했다.



내가 프리랜서로 선택한 직종은 콘티 작가였다. 광고 에이전시 피디로 일하면서 콘티작가라는 직업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광고 피디는 전체 스케줄, 프로젝트 견적, 섭외 등 각 제작파트 간의 소통의 일이 주된 업무이다. 광고 피디로 수많은 프로젝트를 하면서 많은 콘티 작가를 섭외해왔다. 선호하는 작가가 생길 정도로 콘티작가라는 직업을 옆에서 가까이 봐왔다고 생각했다.


내가 콘티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 사건은 이렇다.

어느 날 회사 출근길에 고양이 한 마리가 양손을 모은 채 사람들을 피하지도 않고 앉아있는 걸 봤다. 그림을 그리러 온 작가님도 고양이를 보았고, 작업이 마무리된 4시간 후 고양이를 데리고 가셨다. 다음 작업을 하러 회사에 오셨을 때 작가님한테 고양이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병원비 300만 원 정도가 나왔고 현재는 집에서 쉬고 있다고 했다. 애교가 그렇게 많은 아이는 처음 봤다고 했다. 난생처음 본 고양이를 데려가서 병원비 300만 원을 지불했다는 말에 꽂혀서 난 더 이상 대화에 집중이 안되었다. 새벽 퇴근하며 피곤에 찌든 삶을 살고 있는 내가 한 달 동안 일해도 받는 월급보다 큰돈이었다.


피디는 광고 제작 프로젝트에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를 한다. 하지만 콘티 작가는  최종 오케이 난 스토리를 그림으로 옮겨주는 부분에만 관여를 한다. 이렇게 프로젝트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참여하는 나는 콘티작가보다 적게 벌어가는 것에 대한 의문이 해결되지 않았다. 작가들이 보여준 시간적 여유로움과 1시간 단위로 벌어가는 금액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혼자 콘티 작가에 대한 꿈과 희망을 품었다.


고등학교 때 대학입시미술 발상과 표현을 하였지만 사람 인체에 대한 그림 공부를 한 적은 없었다. 나의 그림 실력은 회사를 다니면서 취미미술학원에서 스트레스를 푸는 정도였다. 나에게 콘티 작가만큼의 실력은 없었고 처음부터 기술을 배워서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27살에 회사를 나왔고 그림 공부준비 기간을 2년으로 잡았다. 2년 뒤 29살에는 내가 일하면서 접했던 작가님들처럼 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2. 콘티 작가 지망생의 시작 


콘티 작가라 될 수 있는 확신과 함께 나는 퇴사했다. 내가 가장 첫 번째로 했던 일은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는 일이었다. 회사에서 일을 주고받았던 콘티작가들에게 만남을 요청하였다. 그들을 인터뷰하 듯 떨리는 마음으로 정리한 질문지는 아직도 네이버 메모장에 남겨져 있다.





여러 콘티 작가 선배들과의 만남은 끝은 허무함이었다. 뚜렷한 정답을 말해주는 분은 없었다. 다들 어쩌다 우연한 계기로 이쪽 일로 넘어와서 일을 시작했다, 일을 하다 보니 계속 일이 들어와 하고 있다 정도였다. 


어떤 콘티 작가는 나에게 누구 밑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면 콘티 작가는 될 수 없다, 누가 일을 가르쳐 주겠냐고 막말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가장 친근하다고 생각했던 작가님한테 희망적인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소정님은 그래도 광고 업계에 있다 나왔으니 다른 사람보다는 기회가 많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보다 좋은 조건인 건 분명해요. 기획자, 피디, 감독 등 주변의 아는 사람들로 일을 받을 수도 있잖아요. 프로젝트의 전체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작업하는 것에 아주 큰 장점이에요. 다른 사람이 안 보이는 것이 소정님한테는 보일 것이며 더 빠르게 캐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거니깐. 일이 들어오면 무조건 받아서 하세요. 만약 일이 잘 안돼서 일이 점점 줄어든다고 해도 괜찮아요. 실력이 올라갔을 때 다시 같이 작업을 하게 되는 날이 올 거예요.”


내가 되고 싶었던 콘티 작가는 장소 상관없이 태블릿과 펜만 주어지면 주어진 시간 내로 완벽한 그림을 그려내는 작가였다. 실제로 콘티 작업은 시간이 촉박한 작업들이 많다. 오늘 일을 주고 다음 날까지 그려서 달라고 하는 건 그나마 시간을 넉넉하게 준 편이다. 프로덕션, 에이전시 회사로 직접 가서 광고 제작 현장에서 바로바로 그림을 그려 몇 시간 만에 완성해야 하는 작업도 있다. 너무 오래 그리고 있으면 기다리다가 지친 조감독, 감독들이 옆에 와서 말을 걸거나 눈치를 줄 것이다. 실제로 난 프로덕션에서 10시간 동안 앉아서 그려본 적이 있다. “쟤 아직까지 그려?” 그때 누군가 지나가면서 하던 말은 절대 잊혀지지가 않는다. 고개를 푹 숙인 체 손은 멈출 수가 없고 머리는 멘붕 상태인 그 감정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림 실력이 부족했던 나에게는 현장이든 집에서든 많은 컷 수를 짧은 시간 내에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가 맨 처음으로 의뢰받은 일은 지인으로부터 받은 일이었다. 광고 에이전시에서 발주해준 13컷의 넥스트 라운드 공기청정기 콘티 작업이었다. 13컷이면 일반적인 광고 콘티 컷 수랑 비교했을 때 절대로 많은 컷 수는 아니다. 손이 빠른 작가들이라면 2시간 안에도 끝낼 수 있는 분량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만큼 빨리 그릴 수 없을 거라는 판단이 서서 스케줄을 이틀로 조율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그림을 가르쳐주던 학원 선생님과 이틀 내내 밤을 새워서 콘티를 같이 완성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 3. 프리랜서인지 백수인지 ] 다음 글도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conti-jeong/25


#쓱콘티 /conti_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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