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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 Mar 12. 2021

프리랜서인지 백수인지

꼭 고3 수험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시절이었다.

3. 프리랜서인지 백수인지 



열정이 넘쳤던 나의 초기 마음가짐과 달리 2년이란 프리랜서 기간은 참 괴로운 시간이었고, 나의 생각을 충분히 바꿀 수 있는 기간이었다.


일하는 날 보다 콘티 그림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날들이 많았다. 꼭 고3 수험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시절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독서실로 출근을 하였다. 독서실에 있는 그림책 자료, 잡지 등을 보면서 매일 그림 연습을 하는 게 나의 하루 일정이었다. 그때는 1시간 단위로 나를 감독하며 시간을 기록하였다. 무엇을 그렸고, 어떤 그림이 몇 시간이 걸렸는지 매일 기록으로 남겼다. 하루 종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어도 그린 그림은 몇 장이 안 돼서 너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날이 훨씬 더 많았지만 아주 가끔 일 연락이 오기도 했다. 

전화를 받기 전부터 손이 떨리면서 전율이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그 전화를 받기도 싫었다. 스스로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을 했다. 완벽하지 못한 나의 실력을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너무 괴로웠다. 피디로 일을 하면서 다른 작가들의 완성된 콘티를 정말 많이 봐 왔다. 다른 작가 그림과 나의 그림은 너무 수준 차이가 났고 작업 속도도 몇 배가 차이가 났다. 나는 절대 따라잡을 수도 없는 실력이었다. 내가 전달한 콘티가 회사 안에서 어떻게 사용이 될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스토리를 내가 더 망치는 것이 아닌가, 누군가의 발표를 실패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두려움이 컸다. 내게 일을 주는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내 실력과 속도를 다른 콘티작가들과 비슷할 거라 생각을 하고 문의를 주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나는 일을 받기 싫을 때마다 선배가 말한 ‘일이 들어오면 무조건 받아라’ 조언을 계속 생각했다. 두 눈을 꼭 감고 ‘할 수 있다’를 속으로 외치며 들어오는 일은 최대한 다 받아서 진행하였다. 그렇게 나의 주변 사람들이 주는 일로 경력을 시작하게 되었다. 


광고 피디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다른 콘티작가들과는 다른 형태의 일을 받기도 했다. 콘티 작업만 요청하는 일도 받았고, 프로젝트 피디 역할에 콘티 작가 일을 더한 형태로도 일했다. 어떤 때는 내가 직접 영상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아예 10초짜리 시안 영상을 만드는 작업도 했었다. 그런데 한 번은 내가 직접 그린 콘티로 프로젝트 피디 역할을 하는 업무를 진행하는데, 회의시간에 촬영감독과 조명감독이 이런 말을 했다. “콘티 누가 그린 거야? 똑바로 알아볼 수가 없어”. 프로젝트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라도 내가 콘티를 그리면 안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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