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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 Mar 22. 2021

내 마음속 응어리

콘티 작가로 일했던 경험은 내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아있다.


항상 언제 올지 모르는 일로 안절부절 불안했다. 바로바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생각했다. 쉬는 날도 맘 편히 쉬지 못했고 쉬고 있으면 죄책감이 들었다. 일 문의를 받으면 어떤 소재를 그리게 될지에 대한 불안해했고, 빠른 시간에 완성을 못 하면 어쩌지 대한 조바심으로 마음을 떨었다. 하지만 현장에 가서 그림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될까?


콘티 작가로 일했던 경험은 내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아있다.  매번 일할 때마다 많은 현장의 오류를 접했다. 그래도 몇 가지 에피소드를 뽑아서 나열해 보자면, 첫 번째는 ‘짜장 파티’ 사건이다.


콘티 작가를 시작한 지 1년도 안 되던 시절이었다. 아는 분 소개로 처음 뵙는 감독님이랑 일하러 프로덕션에 찾아갔다. 그때 전달받은 작업은 새로운 콘티 작업이 아니라 다른 작가의 콘티를 수정하는 작업이었다. 기존에 작업했던 작가는 스케줄이 안돼서 수정 작업이 나에게 온 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작가는 스케줄이 안 돼서가 아니었을 거다. 난 일을 전달받은 후 긴 테이블 끝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감독님과 프로덕션 식구들은 식사를 못 했는지 갑자기 옆에서 단체로 짜장면을 먹기 시작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 일하다 보면 옆에서 누가 밥을 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양해도 구하지 않은 체 처음 겪는 나에게는 꽤 충격적인 사건으로 남아있다. 난 일할 때 긴장을 하면 배가 아파서 일부러 식사를 안 하고 갔다. 대부분 작가들도 식사를 안 하시는 분도 많은 거로 알고 있다. 빨리 그려야 해서 밥을 안 먹는 이유도 있고 편하게 밥을 먹고 싶어서 안 먹는 이유도 있다. 손이 느린 나는 밥을 먹는 시간도 작업 시간으로 사용해야 하는 이유도 있었다.


그렇게 내 옆에서 짜장 파티가 일어났고, 난이 일을 ‘짜장 파티’ 사건으로 말한다. 짜장 냄새와 사람들의 대화에 그림에 집중할 수가 없었으며 나 혼자 멘붕이 터져버렸다. 그렇게 개판으로 완성한 콘티를 넘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 ‘짜장 파티’ 작업 건의 콘티 작화료는 결제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무례하게 행동을 해놓고 결제까지 안 해주니 정말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입 피디와의 대화에서는 내 작화료를 챙겨주겠다는 책임감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나의 연락이 올 때마다 정해진 반응을 보여주듯이 “죄송합니다. 작가님. 요번 달 말에는 꼭 결제될 거예요”라고 대답을 했다. 난 5번이나 프로덕션 피디에게 연락했었고, 계속 요번 달 말에 결제가 됩니다. 말을 들으며 계속 기다렸다. 그렇게 나의 콘티 작화료는 결제가 되지 않았다.


두 번째 사건은 작업을 하지도 않았는데, 콘티료 견적 후려치는 이상한 감독을 만났던 기억이다.


나는 콘티 작업을 받기 위해 회사로 방문했다. 그 작업은 회사에서 발주를 받고 집에서 그리는 작업이었다. 보통 회사에 방문하면 콘티 발주가 정리된 PPT를 보여준다. 무엇을 그릴지에 대한 설명 듣고 다시 회사를 나오는 시간이 거의 30분도 안 걸릴 때가 많다. 하지만 요번에 간 회사에는 콘티 발주 PPT가 정리가 안 된 상태였다. 그렇게 회의실에서 2시간 동안 스토리에 맞는 콘티를 같이 정리하게 되었다. 흑백 콘티인 줄 알고 갔던 콘티는 갑자지 컬러 콘티로 변경이 되었다. 컬러 콘티는 흑백 콘티보다 스케치 컬리티도 높고 채색으로 작업 시간의 약 2~3배 이상이 더 걸리는 작업이다. 촬영감독은 내 옆에 앉아서 여러 가지 막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원하는 대답을 하면 너를 콘티 작가로 인정해준다는 뉘앙스로 물었다. “작가님이 보기에는 여기에 어떤 컷이 붙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작가님 의견은 어때요?” 처음 보는 촬영감독한테 전문적인 콘티 작가로 보이기 위해 나에게 없는 사회성을 다 끌어와 그 회의에 참여하였다. 콘티 자료가 다 정리가 되고 촬영감독은 콘티료가 너무 비싸다며 깎아달라는 거였다. 나는 속으로 그 감독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같으면 2편 찍어달라는데 1편 견적으로 진행하겠냐?’ 그 감독이 나한테 마지막으로 했던 막말은 “그냥 여기서 그리고 가”였다. 100컷이 넘는 컬러 콘티를 여기서 그리고 가라니? 미리 스케줄을 조율한 피디는 옆에서 안절부절못하였고 나는 끝까지 눈으로는 욕을 하면서 그 회사를 나왔다.


이런 사연을 말하면서 콘티 작가 선배에게 들은 한 마디도 기억에 남는다.  “성희롱하는 감독도 많다. 그 정도면 괜찮은 편에 속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다. 그 대답을 듣고 난 후 나의 감정은 ‘난 그런 쓰레기는 안 만나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말이 머릿속에 오랫동안 맴돌면서 다시 들었던 감정은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았어도 괜찮지 않다’였다.


그 외에 수많은 날의 기억이 있다. 일을 하러 가는 당일 버스정류장에서 갑자기 캔슬된 적 스케줄도 있었다. 울면서 그림을 붙잡고 있었던 새벽도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에 프로페셔널한 사람이 일을 주기에는 내가 실력이 많이 부족하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엄마의 잔소리도 한 획을 그었다. 엄마한테 오는 “넌 도대체 뭐 하고 사니?” 카톡은 공포 자체였다. 콘티를 그리면서 처음으로 하루에 100만 원을 벌어본 날도 기억도 남는다. 작업 후에는 표현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가 치솟아 온종일 기분이 좋았던 날도 분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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