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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 Apr 03. 2021

기쁘지 않은 합격 전화

난장판이 된 마음을 숨긴채 회사로 도망치듯 돌아갔다.



콘티 작가로 실패했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숨고 싶었다. 조언을 구하고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것에 대해 한탄스러웠다. 소리 소문 없이 스스로 일하는 콘티 작가들이 원망스러웠다. 회사의 합격 전화는 기쁘지 않았지만 난장판이 된 나의 마음을 정리하고자 회사로 들어갔다. 3개월 동안 안정을 되찾으면 다시 프리랜서로 돌아 올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나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몇 년 만에 맛보는 회사의 월급은 너무 달콤했다. 일이 언제 올지 몰라서 매번 대기를 타고 있어야 했던 상황과는 달랐다. 퇴근하면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을 안정시켰다.


그럼에도 콘티 문의가 있는 날이면 다시 불안해졌다. 나의 마음은 불쑥불쑥 찾아오는 콘티 문의 때문에 난장판이 되었다. 감추고 싶었던 나의 콘티 지망생 생활이 누군가로 인해 다시 들추어지는 느낌이었다. 일을 계속 거절하면서 죄책감이 들었다. 마치 내가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피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상처가 난 곳에 약을 바르지 않은 채 대일밴드로만 감추어 버렸는데 더 크게 곯아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회사 안에서 1년이 흘렀다.


일적으로나 조직 생활적으로나 회사 안에서 스트레스는 적지 않았다.

어설픈 일 처리를 참고 넘어가는 성격이 안됐다. 3개월 동안의 마음의 안식처로 생각했던 직장에서는 일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회사 안에서 일에만 집중을 하고 할 말은 다 하는 성격이었다. 조직 생활의 정치에는 소질이 없었다. 그렇게 난 30명도 안 되는 작은 조직 안에서 도마 위에 쉽게 오르는 대상이 되었다.


내가 도마 위에 올라간 결정적인 사건은 이렇다. 경영 관리팀 팀원의 실수로 전 직원의 4대보험 납부 기록이 경영관리팀 개인 프린터가 아닌, 직원들이 사용하는 프린터기로 출력이 된 사건 때문이었다. 사내 정치를 거의 휩쓸면서 다니는 3인방이 그 프린터 출력물을 목격하였고, 10년 차인 그들보다 경력이 낮은 내가 연봉이 더 높다는 사실에 그들은 분노하였다


그렇게 하나씩 꼬여가면서 나의 과거의 행동·말투 모든 것들 하나씩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윗분들은 나를 신뢰하고 좋아했다는 것이다. 어떤 대표가 일을 열심히 하는 직원을 싫어하겠는가. 그런 사건을 겪으면서 내가 깨달은 게 있다면 나에게 있어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중요하다는 거였다. 회사 입사 전부터 열정이 다 소멸이 되었고 생각했다. 주어진 업무는 괜찮은 선에서 마무리되는 방식으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의 거의 비협조적인 도마 위 대상이 되면서도 일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는다는 것은 나에게 크게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서 나아갈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더 사랑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한 사람이고, 일을 사랑해서 다시 프리랜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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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쓱콘티 /conti_jeong

불안한 프리랜서의 홀로서기를 위해

신입 프리랜서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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