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프리랜서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서웠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이 무한정으로 늘어나는 게 무서웠고, 이 시간을 내가 다시 버틸 수 있을지 두려웠다. 하지만 나와보니 의외로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콘티 작가를 하면서 억대 연봉인 사람이 되겠다는 기대감은 한층 낮아졌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의 삶이 조금 더 열악해져도 스스로에게 계속 이 직업을 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섰다. 처음에는 콘티 작가가 고수입 직종이라 선택했다. 하지만 나는 주체적인 노동에 더 즐거운 사람이었고 노동이 끝난 후 받는 기분에 희열을 느꼈다.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꽤 멋진 일이었다. 그들의 요청한 부분을 완벽하게 전달할 때의 그 쾌감은 아직도 좋아한다. 콘티 작화료가 결제가 되면 월급을 받는 것보다 더 기분이 좋다. 어설프게 일을 줘도 나의 전문력으로 완벽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믿음을 받는 게 좋았다. 회사처럼 직장동료, 윗사람들과의 관계, 정치 등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나의 전문력으로 대가를 받는 프리랜서의 형태가 좋았다.
프리랜서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을 잘 아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다. 어느 정도의 일감이 내가 완벽하지 않지만 할 수 있는 일인지, 내가 완벽하게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아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면밀히 관찰하는 게 우선이다.
2년 동안 시간 기록은 나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보여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넘치는 일을 구분할 수 있게 도와줬다. 회사로 들어가 ‘잠깐 멈춤’ 기간을 가지는 동안 나는 나를 관찰하고 정리하는 기간을 가졌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이상 다시 회사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졌다. 난 남들에게 일로서 인정받는 인정 욕구에 미쳐있는 사람이었다. 일을 마치면서 오는 감정으로 한 달 동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관심이 가는 일은 한 번씩은 다 건들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된 이상 더는 회사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제는 나를 너무 잘 알아서 다시 후퇴가 안 되는 기간이 프리랜서가 되기 위한 마음가짐으로 딱 알맞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