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아 Apr 07. 2021

음성으로 만나는 내적 친밀감

나의 숨은 덕질은 점점 실행으로 옮겨져 가고 있었다.

프리랜서 준비하면서 직장인 친구들도 하나둘씩 줄어갔다. 몇 년의 고립된 생활 동안 내 옆에 있어 준 것은 라디오였다. MBC mini 라디오의 아침부터 저녁 일정까지 줄줄 꿰고 있을 정도로 라디오를 들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다른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면 혼자 있는 기분을 덜어낼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드는 불안과 우울을 어느 정도 차단해주었다. 나의 라디오 최애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라디오 디톡스 백영옥입니다’였다. 새벽 2시에 시작하여 새벽 3시 정도에 끝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라디오 프로그램에는 ‘딥 톡스’ 코너가 있었다. 백영옥 소설가가 사람들의 가슴 깊이 있는 고민을 받아서 일주일 동안 고민한 뒤 사연을 아주 딥하게 상담해주는 코너였다. 매일 새벽 같은 시간에 라디오 듣고 공감하고 메모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그 라디오의 처음부터 종방까지 같이하였다.


프로그램의 종방과 DJ들이 자주 바뀌면서 난 라디오를 듣기 시작한 지 2년 뒤부터는 팟캐스트 채널로 넘어갔다. 나의 요즘 최애 팟캐스트는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이다. 나는 이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박초롱 작가, 이다혜 편집장을 만나면서부터 나의 많은 일이 변해갔다. 가장 큰 변화는 다른 분야의 프리랜서 선배들이 생겼고, 같이 동기부여할 수 있는 프리랜서 동료들이 생겨났다. 프리랜서 커뮤니티 속 안에서 보호를 받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팟캐스트에 사연도 보내고 DJ들이 하는 활동을 찾아서 나의 숨은 덕질은 점점 실행으로 옮겨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박초롱 작가가 하는 프리랜서 책 모임을 기점으로 난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 라디오에 출연하는 성덕이 되었다. 사실 출연 제의를 받은 그 날부터 나의 마음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손으로는 그림을 그리면서도 머리로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녹음하기 3일 전 전체적인 질문 리스트를 공유받았다. 난 그 질문 리스트를 머릿속에 저장한 다음 그림을 그리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매일 잠들기 1시간 전에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정리하면서 잠들었다. 그렇게 정리한 문서는 A4용지 2~3장의 분량이 나왔다.


라디오 녹음 당일의 감정도 잊히지 않는다. 오전 10시 홍대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에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전 날부터 홍대 근처 친구네 집에서 잠을 청했다. 친구에게는 내일 팟캐스트의 녹음으로 떨리는 마음을 숨긴 채  혼자서 정리한 문서를 생각하고 몰래 보고 또 보았다. 녹음 당일  전문가 포스가 폴폴 풍기는 녹음실에서 들어서자 더욱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이다혜 편집장은 녹음을 시작하자 전문 성우처럼 목소리가 바뀌면서 첫 멘트를 시작하였다. 그렇게 두 분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 앞에서 말을 하는데 보이는 라디오를 보는 느낌이었다. 잠시 넋이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방청객 모드로 갔다가 정신을 차린 것 같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재미있는 대화가 오고 갔고 녹음 후에는 내가 뭐라고 떠들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체적으로 망했다는 기분과 정리해간 내용의 1/10도 말하지 않고 딴소리를 하고 왔다는 건 분명했다. 그 후 방송 나오는 3주 정도의 기간을 기다리면서는 또 다른 감정에 시달렸다. 뒤늦게 밀려오는 후회와 민망함은 방송이 나오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문득 생각이 나서 한숨이 나오고 잠자려고 누워있다가도 생각이 나면 허공에 발길질을 하였다.  말하는 사람의 역할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존경심이 새롭게 피어나기도 했다.


2020년 12월 드디어 방송이 나왔고 그건 나에게 정말 좋은 영향을 주는 추억이 되었다. 프리랜서 책 모임 카톡방에서도 잘 들었다는 응원이 올라왔고, 또 인스타에 몇몇 분들이 댓글도 남겨주었다. 그리고 얼마 전 박초롱 작가가 내가 출연한 에피소드를 듣고 누군가 뒤늦게 남겨준 후기를 캡처해서 나에게 보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들었고 이런 경험을 제공해준 ‘큰일여’에 대해 정말 감사했다.





71화. [청취자를 소개합니다] 콘티 작가 소정님이 알려주는 콘티 프리랜서의 세계


재밌었어요! 잘 들었습니다. 노하우를 많이 알려주셔서 강의하시는 건 어떻냐 하는 부분에서 공감했는데! (노하우를 파셔야 하는데...) 진짜 계획 이야기도 그렇지만 내용도 다 구체적으로 말씀하셔서 (상상이 잘 가서 신기했고) 그 점이 굉장히 전문적+신뢰성 있게 느껴졌습니다. 목소리가 신뢰 안 간다고 말씀을 하시던데 쏙쏙 잘 들어오는 걸요. 다음에 또 이야기 들려주실 날 기대할게요. 이렇게 소개하는 콘텐츠 정말 좋아요♡♡♡♥︎




음성으로만 알기 시작한 사람들과 실제로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나의 주변 사람들도 바뀌기 시작했다. 회사 동료나 오래된 친구들의 만남은 나의 에너지를 차감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 속에서 그 나이 때 당연시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이슈, 고민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들과의  할 수 있는 대화는 한정되어 있어 답답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프리랜서 모임에서는 나의 응어리를 토해내도 모든 사람이 격하게 공감을 해주었고, 그들의 대부분 삶의 이야기가 공감되며 더욱 깊숙이 알고 싶었다. 그들과의 모임에서는 새벽까지 이야기해도 점점 신이 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프리랜서의 모임이라면 장소가 멀어도 절대 빠지고 싶지 않았다



https://brunch.co.kr/@conti-jeong/32  >다음 글 보기


https://brunch.co.kr/@conti-jeong/30  < 이전 글 보기



#쓱콘티 /conti_jeong

불안한 프리랜서의 홀로서기를 위해

신입 프리랜서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난 언제까지 신입일까?

작가의 이전글 다시 프리랜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