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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ongplate May 28. 2021

영원이라 불리던 것들

서른이 되면 생기는 일 05








여태 내 방에서 버려진 것들을 생각해보면, 이 방에 나 말고 적어도 두 명은 더 기생해 살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버렸는데도 여전히 이 방 안 가득, 끝의 끝까지 차 있는 것을 보면 맥시멀리스트로서의 삶의 종착지는 100평 단칸방이 아닐 수가 없음을 오늘도 여지없이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소소한 이평 남짓의 방(정확히는 모르지만, 내 마음이 그 정도라고 한다)에서 나도 사람다운 삶을 영위하려면 정도껏 주기적으로 끝의 끝의 끝 정도는 버려줘야만 한다. 차근차근, 내가 모은 쓰레기들, 한때는 영원의 마음으로 주어 모으던 것들을 말이다.



내가 버리는 것에 진심이  것은 2019 퇴사 즈음으로 흘러간다. 아무 계획도 없이 호기롭게 회사를 차고 나온 나는, 꽤 긴 방황의 시간을 거쳐 어쩌다가 어느날 어느 순간 홈워커가 되었는데, 일하는 공간과 집이라는 공간의 중첩이 서서히 쌓이게 되자 견딜  없는 나머지 치우기 시작하게 된다.   생각을 하는데 오싹해지는 건지,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게 2020년의 팬데믹 상황은 그 견딜 수 없음을 가속화시켰고 나를 하릴없이 주기적으로 치우는 것을 일상 삼게 되었다. 주기가 우연하게 나의 서른과 맞아떨어졌으니, 과감하게 기회 삼아 주제에 끼어 이야기를 더 이어보자면.



버리는 것은 내 삼과 삶의 오답표 같은 것들이다. 너 이건 진짜 실패다. 이건 잘했네. 그렇게 O와 X를 번갈아가면서 표시하면 자연스럽게, 아니 사실은 꽤나 큰돈을 들여 나라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 계속 좋아할만한 것들의 리스트를 얻게 된다. 그러니 이 오답 리스트를 내 눈으로 확인하려면, 사야하는 것, 그리고 살아야 하는 것이 분명한 선행 과제로 주어진다.


내가 가장 큰돈 들여 구입한 노트북은 당연하게도 몇 년 동안 나의 방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지켰다. 그러니 이런 건 재투자의 가치가 있다. 얘가 나한테 벌어다 준 게 자기 몸값의 몇 배는 했으니까, 새 노트북을 다시 탐내는 것도 이치에 맞는다.

서랍장 하나를 뒤집어엎은 듯 나온 버리는 옷들은, 사이즈가 줄고 늘었던, 주머니 사정이 여이치 않던 이십대 중후반 시절 확신의 대변자다. 지금도 주머니 사정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내년에 다시 꺼내입기 민망한 옷을 사 또다시 버리는 것보다, 마감 잘 된 옷들이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한다는 걸 한 무더기 씩을 버려가면서 익히는 중이다.

서랍 가장 아래에 뭉터기로 있던 연필 꾸러미는, 여행 다니는 곳곳에서 하나하나 사 모은 것들이었다. 그걸 사자고 마음먹었던 이십대 중반의 내가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몰라도, 너는 좋은 선택을 했고 나는 네 선택을 존중하며 네 뜻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어두컴컴한 밑바닥에서 빛 보는 데로 꺼내 주었다. 내가 이방인이었던 곳들의 친밀한 흔적을 왕왕 들여다보려고. 다시 여행을 꿈꾸려고.

책상의 위치를 재배치하며 뒤로 간 책장에는 내가 꾸준히 좋아한 아티스트의 앨범이 빼곡히 꽂혀있다. 나의 열정이 다른 옷을 빌려 전시된 걸, 나는 꽤 만족스럽게 등에 진다.


여기에서 크게 언급되지 않은 것들, 그러니까 내 돈 주고 장만한 것들 중 리스트 상위에 오르지 못한 것들을 다시는 안 살 리는, 없다. 또 사겠지. 그리고 버리겠지. 가볍기 그지없는 영원의 마음으로. 어머, 이건 꼭 사야 돼. 모든 것에 설레는 수줍은 마음으로.


그리 사모으며 나는 '버리면서 얻는 과정'을 좋아하게 되었다. 동시에 그것은 내가 생태계를 망치는 주범임을 확신하는 과정이기에, 소비하지 않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경종을 딸랑, 울리기도 하는 교훈적 행위에 닿기도 한다, 아주 가끔은.


내가 오늘의 나이기까지 내가 선택한 낯낯들을 파헤치고 폐기하는 건, 어느 순간은 해야 할 일들임을 확신한다. 버려야만 남는 것들로 오늘의 나를, 서른의 나를 비추어 보게 된다. 몇몇 가지가 나를 어떻게 움직였는지, 나를 어디에 데려다 놓았는지, 나에게 어떤 만남을 주었는지. 나는 다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그 물음표들에 자그마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나는 이제 크라임신을 방불케 하는 나의 공간에서 힌트 1을 획득하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온 것이다, 무엇이 기다릴지 아직은 잘 모르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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