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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ongplate May 06. 2021

지우지 않는 오늘

서른이 되면 생기는 일 03








지우지 않는 오늘





처음 타투를 하고 온 날, 정확히는 처음 타투를 들킨 날. 엄마는 세 번인가 물었다. '그거 진짜 안 지워진다고?' 아, 그렇다니까. 세 번 대답해주고 나서야 엄마는 이마를 짚었다. 예쁘냐고 되물으니 깡패 같다고 했다. 약간 장미가 좀 그런 기운이 있긴 하지.



그런 후로 일 년간 나는 나의 첫 타투들과 아주 즐거운 한 해를 보냈다. 얘가 나 대신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는 무언가 대단한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는 미칠 듯한 자괴와 싸웠다. 아예 하지 말 걸부터 시작해서 이 위치, 이 크기, 이 시안, 이 작가 모두를 탓했다. 이딴 것이 나를 대표할 순 없지 않냐며 원통했다. 올해 들어서는 망각의 동물처럼 또 새로운 친구들을 몸에 입주시키고 있는 중이다.


나의 타투들에는 타인을 설득시킬 만한 아주  명분은 없다.   후의 나도 설득시키지 못한   전의 선택으로 다른 이들의 끄덕임을 바라는 것은 사치라는  작년 내내 깨달았다. 다만 타투처럼 선명한 후회의 잔상만이 약간의 고통 뒤에 남을 뿐인데, 가만 생각해보니 후회도 남는 것이더라. 다시 말하자면, '후회한다' 기억들이 일련의 타래처럼 남아있게 됐다.



내 첫 타투는 안될 게 뭐냐는 뜻의 레터링이었다. 그건 그것 그대로 내가 무엇에 홀려 타투를 받게 됐는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29살, 서른을 목전에 둔 나의 패기 어림과 아니면 그저 어림이 이끌어 도달한 곳이 비록 후회였을지라도 과감했던 이십대의 마지막을 보내던 내가 남은 흔적이며, 또 과거를 추억하는 가장 밀접한 장치이기도 하다.


이렇게 새겨가는 것들이 분명히 어느 세월에 폭풍 같은 후회를 떠밀려 보낼 것을 안다. 예를 들면 팔에 몸을 말아 앉은 나의 강아지가 어느 날 나를 울릴테고, 친구와 싸우고 난 뒤면 함께 받은 우정 타투가 미워질테다. 그리고 뭐 촌스러워지기도 할테고, 가치가 없어질 수도 있으며, 원수로 남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이 후회의 볼모로 잡혀있는 꽤나 스릴 넘치는 상태인 것이다.


그 후회에서 벗어날 최후의 대책으로 나는 나의 선택과 후회를 지속해서 남기기로 작정했다. 내일의 나에게 잔뜩 쫄아 오늘의 내가 하고싶은 것을 포기하지 않기 위함이며, 내일이면 변해버릴 추와 미, 의미와 명분의 기준으로 나를 포함한 누군가를 설득시키려 애쓰지 않고, 또 내가 감히 누군가의 몸을 평가하려 들 때 그럴 자격이 없음을 나의 몸으로 상기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멋진 포부와 더불어 필요한 것은 무계획일 뿐이다.



이제 겨우, 내 나이 서른에 비로소 후회를 받아들이며, 결정으로부터 조금씩 독립해 간다. 만 서른 오월 모일의 나는 이 시간에 존재한다. 지금 내가 내린 나의 결정을 존중한다. 내일의 네 시선에 굴복하지 말라고, 후회는 내일의 너의 몫으로 떠넘겨주라며 나는 나를 힘껏 응원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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