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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성을 기다리며 Feb 13. 2023

[하루] 서대산갤러리에서

탁구 복식은 재미 있었다. 나는 안다, 때때로 승부욕이 강해진다는 것을. 너무 강하면 모두를 힘들게 하는 것이 승부욕이기에 그것을 멀리 하려 한다. 져도 괜찮아. 그래서 편하게 쳤다. 


너무 편했나, 연속으로 졌다. 경숙-진수에게 영숙-은영 팀이. 경숙-영숙 팀에게 진수-은영팀이. 결론은 나만 이긴 기록 없이 경기는 끝났다. 복식경기를 마치고 영숙선배님이랑 드라이브 칠 때는 더 재미있었다. 채에 공이 쫙쫙 달라 붙는 느낌과 소리가 좋았다. 실력이 없어서지만, 넷에 자꾸 걸려 슬펐다. 서른 번, 마흔 번쯤 연속으로 쫙쫙 감기는 공을 받아 칠 수 있게 된다면 참 좋겠다. 


그리고는 진수, 재욱, 경숙선배님, 나 이렇게 넷이서 대패 삼겹살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저녁 장을 봐서 서대산 갤러리로 향했다. 영숙선배님은 먼저 출발하셨다. 독서 모임 후 집에 들른 경희는 티라미수를 만들어왔다. 미모와 재주가 넘쳐나는 선배님이다. 이번 모임은 계획한 사람 넷에 갑작스레 시간이 되는 사람들 넷이 함께 모였다. 따뜻한 나무 난로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먹은 티라미수와 군고구마는 더 달콤하게 목으로 넘어갔다. 제주 거멍 에일도 맛있었다. 황토방에 군불을 떼는 일은 고되나 진수의 즐거움이었다. 배드민턴을 치고 싶어한 재욱이의 마음은 영숙선배님이 읽어주셨다. 최고시다. 

진하게 우려낸 홍삼대추차를 마시며 웃음이 가득 터졌다. 그 찰라를 놓치지 않은 경희덕분에 눈가 주름 가득한 사진이 어제 모인 이들에게 최고의 사랑을 받는 장면으로 남겨되었다. 가득 웃으시는 아름다운 영숙선배님과 함께. 


진수와 재욱이 바깥에서 안으로 장작을 좀 더 날라 놓고, 날이 더 어둡고 추워지기 전에 #서대산갤러리 그림의 이야기를 만나러 갔다. 작가님은 한 작품 한 작품 정성껏 작가의 의도와 작품을 설명해 전해주셨다. 정작가님이 평생을 함께하며 사랑하셨던 작가님, 3년의 암투병을 마치며 "순리대로 살아"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떠나가셨다고 한다. 그 때의 그림들, 아름답고 슬펐으나, 슬픔이 힘이 되는 그림들이었다. 


공주에서 하는 전시회에 일부 작품들이 가 있다면 전시 팜플렛을 보여 주셨다. 약력이 언뜻 보이기에 여쭈어 보았다. "혹시 정영상 선생님을 아시나요?" "알다 마다. 정말 친한 후배였지, 나도 우리 신랑도. 정선생님은 후배이자 우리 신랑의 제자이기도 했지." 눈물이 막 쏟아졌다. 발걸음을 옮기시더니 바로 벽면 책장에서 정영상 선생님의 시집 두 권을 꺼내 보여주신다. "중학교때 제 미술 선생님이셨어요. #행복은성적순이아니다 출판기념회때, 고2 야자를 빼고 선생님의 시를 낭송하기 위해 갔었더랬죠." 전교조 해직 후, 고향인 단양에 머무시면서도 죽령고개 넘어 안동의 제자들을 늘 그리워하셨던 선생님을 그곳에서 잠시 추억하였다. 세상의 무수한 인연들은 이렇게 이어지고, 연결되는구나. 


갤러리 한 켠에는 사부님의 작품들이 의연하게 다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두 분의 깊은 사랑이 내 마음 깊숙이 전해졌다. 


진수는 말도 재밌게 하지만, 다방면으로 아는 것이 넘쳐났다. 시골에 집을 지으시고 20년 이상 살고 계시지만 하나씩 또 짓고 늘리며 예전 것과 재배치 시키려는 영숙선배님은 진수의 의견을 매우 신뢰하셨다. 


양말을 벗고 황토길을 걸어보았다. 어싱이다. 저녁은 다 같이 준비하였다. 나와 진수는 아궁이 불에 두툼한 목살을 초벌로 굽고, 재욱은 고기구이 판에 한 번 더 구으면 먹기 적당한 크기로 잘라 접시에 담았다. 지연과 경숙선배님은 마늘과 양파를 잔뜩 볶고 그 전에 미영이 양파와 마늘을 적당한 크기로 썰었었다. 영숙선배님은 필요한 것들을 내어 주시느라 주방에서 제일 분주하셨고, 경희는 설겆이를 찜하며 밥을 준비하는 동안 사진을 담당해 주었다. 


불맛나는 고기에 양파 마늘 볶음, 상추와 고추 장아찌, 막걸리와 에일이 어우러진 우리의 저녁 밥상 최고다! 나는 재욱이의 시 '하늘'을, 맨날 다르기에 아름다운 하늘처럼 나날이 다르고, 사랑하며 성장해가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낭송했다. 후식으로 샤인머스캣으로 입안을 개운하게 했다. 이어 대파 잔뜩넣고 재욱과 지연이 난로불에 끊여 준 라면은 다시 맛볼 수 없는 천상의 면이었음을. 


밤이 깊어가고 오후 내내 불을 뗀 황토방은 절절 끓고 있었다. 그 뜨거움과 따뜻함, 다같이 앉아 그 뜨거움과 따뜻함을 마주한 시간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나누는 것이다. 스스로를 태우는 것이다. 나누고 태우는 가운데 밝아지고 따뜻해 지는 것임을. 산다는 것은 그 따뜻함을 나누는 것! 황토방의 그 뜨끈함, 두고 오기 아쉬웠지만 다음 기회를 또 기약하며 깜깜한 시골의 길, 다같이 나섰다. 저마다의 불을 켜 서로 비추어 주며. 

머리 위로는 오리온 자리 별들이 선명히 빛나고 있었다.



재욱은 장작을 나르고, 선배님은 갤러리로 그림을 옮기셨다. 저 닭들에게 매일 세번씩 영양 가득한 밥을 주시는데, 우리도 먹은대로 되듯이 닭들도 참 사랑스럽게 커간다.
영숙선배님도 나도, 잠시 (고)정영상 선생님을 추억했다.
갤러리 입구, 편히 잠든 고 김철규작가님, 아내 영숙이 그리다.


http://blog.naver.com/isimpleyoung/22301378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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