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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성을 기다리며 Mar 03. 2020

9월, 하루 한 권의 책을 사서 읽었다고 생각하자.

9월이 되고, 신랑은 다른 곳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지난 3년 반 동안 신랑 차를 타고 다니며 편안했던 나의 출퇴근은 끝이 났다. 운전하기를 무서워하는 나는 방학 동안 열심히 연수하여 운전에 도전해 보기로 했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결국, 집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학교까지 지하철을 타고 다니기로 했다.

가능하겠는가? 생각에 생각을 더하니 가능하다 싶었다. 7시에 집에서 나서기만 하면 된다. 그러려면 가족들 아침밥을 챙기고, 준비해서 후다닥 나오면 된다. 아침을 더 일찍 시작하면 된다. 조금 바쁘고 피곤해지겠지만 말이다. 할 수 있겠냐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묻고 따져본 끝에 결심했다.

그러나 9월 1일 아침에 나는 버스와 지하철이 아닌 택시를 타고야 말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결심을 했으나 택시를 탄 것은 아침 시간이 바쁘기도 했고, 몸이 피곤하거나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택시비는 온라인 서점에서 10% 할인된 책 한 권을 사는 값이었지만 나의 소중한 시간과 고생을 아껴주는 좋은 지불이었다. 처음부터 신랑은 "출근은 택시로 해"라고 했지만, 매일 비싼 택시비를 쓰는 것이 내가 아까웠다. 그러나 막상 혼자 하는 출근이 시작되니, 편하게, 빨리 가는 방법을 택하게 되었고, 매일 그것에 익숙하다 보니 9월 한 달 동안 택시로 출근을 하고야 말았다.

9월은 나와 우리에게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맡고 있는 중3 아이들이 중학교에서의 마지막 학기인 만큼 더 신경 써 주고 싶어 마음이 분주했고 대한민국은 새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두고 찬성과 반대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며 분주했다. 이런 9월에, 매일 나는 택시를 탔다. 시간을 아끼고, 나의 체력을 아끼기 위해.

택시를 타다 보니 다양한 관점과 이야기 소재를 지닌 기사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타기가 무섭게 법무부 장관 후보를 비난하셨던 분도 계셨고,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 행태를 비판해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학교까지 가는 길을 내가 제안하는 길로 가 주시는 분도 계신가 하면, 새로운 길을 권하며 그 길로 가자고 나를 설득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어떤 날은 택시를 시작한지 얼마나 안되셨던 분이라 다른 길로 돌아 도착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시간도 더 걸리고 요금도 더 낼 수밖에 없기도 했고, 법무부 장관의 집을 압수 수색하던 날은 도대체 나라가 왜 이런가요 라며 흥분했던 나의 의견을 받아주시며 나보다 더 흥분하시며 말씀하셨던 분도 계셨다. 한 번은 카드가 없어 택시 안에서 카뱅으로 이체를 했다. 기사님은 나의 이체를 바로 확인하시고는 얼마 안 되는 택시비를 현금으로 이체하겠다고 하시고는 안 주는 손님들도 있었다며, 돈이 문제가 아니라 약속을 안 지키며 사는 사람들을 그대로 둘 수 없어 고소하여 조사받게 한 이야기를 해 주신 분도 계셨다.

고맙게도 나는, 택시를 타며 많은 경험을 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분과 이야기 나누면서 흥분하지 않고 최대한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나의 모습을 만나기도 했고 먼 길로 돌아와서 먼저 미안해하시는 택시 기사님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괜찮습니다"라고 경쾌하게 인사를 하며 내리기도 했다. 이미 늦었고, 이미 돌아와 버렸는데, 그것도 기사님의 고의는 아니었는데, 그 자리에서 인상을 써 본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싶었다. 신경 쓰시지 마시고 오늘 하루 안전 운전하실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더 경쾌하게 인사드리고 내리면 내 기분도 더 좋았다. 몇 일 전에는 늘 다니던 길 말고 '다른 길'을 자신 있게 권하셨기에 동의하고 출발했는데 예상 밖으로 길이 막혔고 공사가 있는 구간도 있어 택시가 길에서 멈추어 섰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길'은 언제나 예측불허, 선택은 스스로 하며 그 책임도 지는 것. 길을 나서기 전에는 되도록이면 많은 정보를 수집하여 준비하고 출발 할 것. 그러더라도 '길'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므로, 우리는 최선을 다할 뿐이고, 결과를 두고 우리가 걸어온 과정을 폄하해서는 안 되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 생각해 본다. 나는 9월의 매일 아침마다 책 한 권씩을 사서 읽은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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