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서방 만난 홀어미가 이튿날 내내 머리 빗을 기력도 없이 뒤숭숭한 마음이 되듯이, 교도소의 꿈은 자고 난 아침까지도 피로를 남겨놓는 꿈이 많습니다.
급히 가야겠는데 고무신 한 짝이 없어 애타게 찾다가 깬다든가, 겨울을 들여다보면 겨울마다 거기 모르는 얼굴이 버티고 섰다든가, 다른 사람들은 닭이나 오리, 염소, 사슴같이 얌전한 짐승들을 앞세우고 가는데 나만 유독 고삐도 없는 사자 한 마리를 끌고 가야 하는 난감한 입장에 놓이기도 하고......
교도소의 꿈은 대개 피곤한 아침을 남겨놓습니다. 뿐만 아니라 양지바른 시냇가를 두고 입방 시간에 늦을까 봐 부랴부랴 교도소로 돌아오는 꿈이라든가......, 징역살이 10년을 넘으면 꿈에도 교도소의 그 거대한 인력(引力)을 벗지 못하고 꿈마저 징역 사는가 봅니다.
겨울밤 단 한 명의 거지가 떨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겐 행복한 밤잠의 권리가 없다던 친구의 글귀를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불행이란 그 양의 대부분이 가까운 사람들의 아픔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라 믿습니다.
어제는아들의 생일이라 어머님을 모시고 분위기 좋은 뷔페식당을 갔습니다. 아들과 딸은 음식을 접시에 이쁘게 담아 먹으며 편안하고 즐거운 모습이었습니다. 음식 앞에 과하게 욕심부리지 않고 조금씩 여러 종류를 맛보고, 그만 먹어야 할 때를 알고 과일과 마카롱으로 마무리하는 모습에서 많이 컸구나 싶어 흐뭇했습니다. 다만, 마음에 드시는 음식을 담으러 몇 번 왔다 갔다 하셔야 했고, 평소에 안 드시던 걸 드신 어머님이 어떠하셨을지 걱정이 조금 되었지요. 다행히 어머님도 즐거운 저녁 자리였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도 삶에 서툴듯, 오늘 생일을 맞은 아들도 아직 삶에 서투른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삶이라는 것은 배워가는 것이니 괜찮습니다. 여기저기 부딪히고 무릅팍 깨지며 세상을 배워나갈 아들의 하루하루를 저는 계속 응원할 겁니다.
집에 돌아오니 그간 모자랐던 잠들이 아우성치며 눈꺼풀을 내리 당깁니다. 딸이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늦은 밤입니다. 양치와 세안을 하는데, 딸은 저에게 둘이서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하루였나 봅니다. 잠을 재워달라더니 쫑알쫑알, 오빠의 교복 수선을 맡겨준 것을 찾아오느라 세탁소에 서서 10분을 기다렸다는 이야기와 친구가 들려준 지난밤에 꾼 꿈 이야기 들은 것을 생생히 들려줍니다. 아주 세밀하고 생생히.
5학년 딸아이가 저 예쁜 입으로 쏟아내는 이야기들에 저는 귀를 쫑긋 기울입니다. 저도 어릴 적 그랬듯, 딸도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며 예쁜 나이를 살아갑니다. 마지막으로 꿈에 서 본 서로 '썸'타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전하다가 스르르 잠에 듭니다.
<데미안>을 읽으며, 저도 어릴 때에 싱클레어와 같은 행동들을 했던 생각이 났습니다. 4-5학년 또래 아이들이 모이면, 용기가 생기고, 모험담을 늘어놓을 때에 나의 차례가 되면, 싱클레어처럼 겪어보지 않았더라도 좀 보태어 이야기를 하게 되기도 한다는 것을. 학교에 등교하기가 무섭게 우리는 복도 끝 계단으로 모였고. 둘러앉아 무슨 이야기들을 그리 많이 나누었는지, 어리고 작고 서툴렀던 그 시절은 공상과 모험과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며 가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세계를 탐험하는 연습, '알을 깨고 나아가는' 무수히 많은 노력의 하나였음을 압니다.
나도 그랬고, 싱클레어도 그랬듯 우리 아이들도 그러리라 믿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필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무척 행복합니다. 편지나 글을 쓰실 당시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결같이 놓지 않으신 사랑과 연대에 대한 따뜻하고 굳건한 시선, 그리고 그런 것이 다 스며있으신 성품을 읽고 마음에 새길 수 있어 참으로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