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들어야 설움을 안다: 직접 겪어봐야 그 실상을 알게 된다는 뜻”이라는 말은 경험과 관련된 속담이다. 요즘 직접 겪는 것보다 ‘보는’ 것들로 바뀌는 경향이 나타난다. 랜선 여행, 먹방, 요약본 영화나 핵심만 추린 독서로 편리하게 간접경험으로 만들어낸다. AI를 비롯된 디지털 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어 몸소 실천하는 경험은 살아지고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창의성이 위험을 받고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다. 멸종(extinction)이라는 말 속에는 강한 부정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상당히 위험한 수위에 와 있음을 암시한다.
크리스틴 로젠의 『경험의 멸종』에서 “우리는 더 이상 경험으로부터 현실을 배우지 않는다. 대신 가상의 체험을 통해서 실제 경험을 모방한다.”라며 인간의 직접 경험들이 사라져가는 지금, 이 흐름을 바꿔야 하는 근거들을 짚어보는 시간으로 채웠다.
그는 “책을 읽지 않고 기기에 요약해 달라고 하는 일은 독서의 종말을, 문서 작성을 AI에 맡기는 일은 생각의 종말을, 지시어만을 입력해 그림을 얻는 일은 창작의 종말을 앞당길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모든 영역이 기술에 우위에 있다면 ‘인간다움’을 잃을 수 있음을 경고를 던진다. 멸종에 저항하고 자기 자신이 선택의 폭을 넓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 또한 ‘인간다운 삶’으로 살기 위한 우리의 최후 보루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렇지 않으면 경험의 멸종은 시간문제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는 말했다. "관심은 가장 희귀하고 순수한 형태의 관대함이다." 물리적으로 구현된 존재로서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즉 같은 공기를 마시고, 말로 하지 않은 서로의 감정을 느끼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 서로의 몸짓에 공감하는 것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 요소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주려면 그의 물리적 존재에 시간을 할애해야만 한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이런 모든 요구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 (87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