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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봉선 Aug 05. 2024

개똥이

귀한 자식일수록 험하게 부른다





우리 조상은 귀한 자식일수록 험하게 키워야 한다고 했다.

이름 또한 굴러다니는 개똥에 비유해서 불러 화를 면하게 했다.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무 삼천갑자 동방삭..."

오래, 건강하게 살라고 이름에 이름을 더해 장수를 빈 이름이다.



엄마와 나는 아이를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

밥 안 먹는 아이를 숟가락 갖고 다니며 한술이라도 더 떠먹이는 게 엄마의 방식이고,

안 먹는다는데 굳이 '한 숟가락만~' 하면서 쫓아다니지는 않는다.

지 배고프면 밥 달라겠지. 하는 게 내 방식이다.

이것저것 학원 다니면서 자기 개발을 하고 적성에 맞게 해야 한다고 하는 게 엄마 방식이고,

재능 있는 거 한 두 가지만 학원을 보내면 된다는 게 내 방식이다.


이게 누가 맞고, 틀리고는 없다.

아이의 성향이 다 다르기에 엄마 방식이 맞을 때가 있고, 내 방식이 맞을 때가 있다.


10년을 피아노학원을 보내도 크면 건반, 음표도 읽을 줄 모르게 되어 있다.


3년을 합기도에 보내놨더니 호신술 한번 해보라고 하니 학원에서 낙법과 줄넘기만 배웠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이야~~" 학원에 전화를 했다.

"선생님 3년을 넘게 다녔는데 호신술 하나 모르고 줄넘기만 했다는데 어떻게 된건 가요?"

"아~ 어머니. 애들 그냥 학원에서 스트레스 풀라고 하는 거죠."

이 말에 당장 합기도를 그만두게 했다.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들은 하고 싶지 않은 교육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전 '무한도전'에서 명수는 12살이라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1980년대 동네애들은 뭐 하고 놀았는지를 잘 보여줬다.

말뚝박기, 오징어 게임, 땅따먹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등

놀이는 모두 친구들과 힘과 뛰기가 기본으로 되어 있었다.


뭐 하나 혼자가 아닌 같이 하는 운동이 놀이였다.


그렇게 놀다 보면 다치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넘어져 피가 나기도 했다.

그렇게 건강하게 놀며 자란 우리들은 남들과 어울리기를 배우고, 협동도 배우고, 배려도 배운다.


얼마 전 편의점을 지나칠 때가 있었다. 통유리에 안이 훤히 보이는 편의점.

그곳에서 초등학생 1학년이 되어 보이는 아이는 커다란 책가방을 옆 의자에 놓고 혼자 그 편의점에서 핸드폰을 보면서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엥~ 아니 애가 무슨 편의점에서 혼자 라면을 먹냐?"

내 말에 조카가 대답했다.

"고모 요즘 많아요. 중간 학원 가는 타임에 있어서 저렇게 라면도 먹고 군것질하고 학원 가나 봐요."

그 아이의 모습은 어느덧 누군가와 겹쳐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혼자로 자라온 아이들은 커서도 그렇게 혼자가 편하게 된다.


식당도 이젠 2인 이상이 기본인 것보단, 1인 탁자를 놓기도 하고, 벽면을 바라보며 혼식을 하게끔 만드는 식당도 생긴 것을 봤다.

점점 혼자가 좋고, 누가 내 세상에 들어와 있는 걸 싫어하게 된다.

즉, 나를 참견하는 사람들이 싫은 것이다.


명수는 12살에서는 혼자 노는 게임은 없다.

핸드폰도 없고, 오락기도 없고, 태블릿도 없다.

그저 손잡고, 어깨를 잡고, 서로서로 팀이 되어 응원하고 이기고, 지는 게임을 한다.



'개똥이'

사촌 오빠를 어릴 적부터 그렇게 불렀다.

그래서 난 그 오빠 이름이 진짜 개똥인 줄 알았다. 개똥이, 개똥이 하다가 진짜 이름을 잊어버렸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서도 어떻게 하다가 실수로

"고모 개똥이 오빠는 잘 있어?"

"아니 나이가 몇인데 개똥이라고 해. 00 이름 불러. 이름."


시대가 바뀌어 많이 험해지고, 범죄도 나날이 있지만,

명수는 12살에 했던 그 게임들은 내가 했던 게임이고, 지금도 잊지 못하고 그때 했던 재미있던 기억들만 있다.

치마 교복에 체육복을 입고 말뚝박기를 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를 하면서 점점 술래에게 다가갈 때 심장이 쿵쾅쿵쾅 뛰던 때를 기억하고, 바닥에 오징어를 그려 넣고 깨갱발로 선을 넘지 않으려 기웅뚱 했던 기억들...


우린 그렇게 바닥에 굴러다니는 개똥처럼 컸다.

귀한 자식이라고 이름만 작명소 가서 짖고,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학원 갈 때 데려가고 데려오고, 학원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머리 나쁜 자식, 머리 좋은 아이들이 있는 곳에 들여보내면 바보만 되는 세상

그러다 자식이 서운한 소리 한번 하면

"내가 저걸 어떻게 키웠는데, 지가 나한테 이래."


귀한 자식일수록 있는 듯, 없는 듯 키워야 한다.

굴러다니는 개똥이가 아닐지라도, 욕심부려 학원 한 개 더 보내려 일하는 거라고... 자식탓하지 말고, 그저 내 자식이 뭘 잘하는지 파악하고 뭘 하고 싶은지 길을 만드는 게 나중에 "내가 저걸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소리는 하지 않게 되지 않을까...


친한 동생은 딸 하나 키우고 있다.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학원을 40분 거리에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 아이의 학원비만 100만 원이 훨씬 웃돌았다.

이젠 고등학생이 된 아이의 엄마는 자기 기대에 못 미치면 입에 달고 사는 소리가 있다.

"내가 00을 어떻게 키웠는데. 지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아이는 부모에게 그렇게 키워달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 어린이들은 개똥처럼 자라기를 희망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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