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비에 찍힌 길만 갔으면 좋으련만, 10년도 더 된 이야기라 네비라고는 실시간 네비가 아닌 머릿속에 그려진 지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자신만만했던 남편 친구는 가는 길초에 뭘 그렇게 먹어야 했고, 가야 할 곳이 많은지.
우리가 속초에 도착한 시간은 7시간 훌쩍 넘고 있었다. 화창할 줄만 알았던 날씨는 먹구름과 함께 많은 장대비를 내렸다. 그렇게 비가 오니 바닷가에는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었고, 7시가 넘어가니 날도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화장하던 하늘은 금방 검게 변했다. 이럴 수도 있구나...
생각과 다르게 180도 다른 전개에 조금 실망했지만, 우선 잠잘 곳이라도 빨리 잡자는 생각에
해안도로를 따라 눈을 크게 뜨고 보기 시작했다. 근데 우리 일행이 갔던 곳에는 여관이 없었다.
서울과 달라서일까. 드문 드문 있던 가계들은 문이 다 닫혀 있었고,
온통 창밖의 세상은 회색이 되어 있었다.
세차게 와이퍼를 움직이며 네 명의 눈은 이 비 만이라도 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창문에 딱 붙어 쉴 곳을 찾고 있었다.
"찾았다."
운전하던 남편의 소리에 앞을 바라보니 여관건물 하나가 보였다.
하지만, '어서 들어오세요'라는 불빛은 찾아볼 수 없고, 간판도 불이 꺼져 있었다.
저 건물을 보고 어떻게 여관인지를 안 남편의 눈을 찬양하며 건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남편과 남편 친구가 먼저 들어갔다.
차 안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비가 내려 그런지 뭔가 어두운 그림자가 있어 보이는 건물이었다.
'이러려고 여기까지 내려왔나.'
한탄이 밀려오고 있을 때쯤, 남편이 나왔다.
"방이 하나 있대."
차 안에 있던 여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비를 피하며 건물 안으로 가방을 들고 들어갔다.
지금생각하면,
방으로 들어가는 그 복도는 왜 그렇게 축축하고, 습하고, 어두웠는지...
해안가 방이라 그런지 방하나 덜렁이였지만, 제법 큰 방이라 답답함을 느끼지 못했다.
들어가자마자 TV를 틀었다.
한 사람씩 씻고서 모여 TV 보며 밖의 내리는 빗소리를 들었다.
"비 온다는 소리 없었는데, 웬 비가 이렇게 내려"
"그러게, 갑자기 먹구름이 보이더니 세차게 내리네."
남자들은 밖의 비가 원망스러운지 혀를 끌끌 찾다.
나는 갑자기 몰려드는 피곤함에 잠자리 이불을 깔고 한켠에 누웠다. 그 옆으로 남편친구 부인이(몇 살 많은 언니) 누웠고, 남자들은 그렇게 수다를 떨더니 어느새 불을 끄고 TV만 켜 놓고선 넓은 방에서 이리저리 누워 자기 시작했다.
"탕! 탕! 탕"
문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누구세요?"
문을 부술기세로 두드리는 소리는 마치 총소리와 같았다.
잤던 잠을 깨고서 남자들을 봤더니 여기저기 이불을 깔고 엎어 자고 새우잠을 자고 있는 게 보였다.
'아니 이소리에 잠을 자는 거야?'
그때, 또다시 문을 심하게 두드리는 소리에
"잠시만요."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한 할머니가 서 계셨다.
"아니 여기 왜 있어. 나가!'
"네?"
"나가라고, 나가!!!"
할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큰 소리를 냈다.
"왜 나가라고 하세요. 그리고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세요."
"안나가! 나가! 나가라고!"
머리는 파마를 짫게 하고, 체크무늬 남방에 흔히 말하는 몸배바지를 입고서 문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문 밖에서 나가라고만 연신 외치는 할머니의 등장에 당황한 나는 할머니 뒤쪽 복도를 봤다.
어두운 복도에는 그 소리를 치는데 누구 하나도 나와 보지 않았다.
주인 할머니인가?
근데 손님 보고 나가라고 하니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얼굴에 눈은 치켜뜨고서 뭐가 그리도 불편하신지 연신 화를 내며 나가라고 하신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