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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봉선 Jul 02. 2024

외로움...





문득 '외로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족이 있고, 주위에 친구도 있는데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왜 그럴까?


'외로움'하면 꼬리처럼 따라붙는 영화가 있다.


'나는 전설이다'

윌 스미스가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2007년작이니 좀 시간은 지났지만, 그 영화를 보면 공포 아닌 공포를 느낀다.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좀비로 변해 윌 스미스(네빌)과 반려견(샘)만이 지구에 생존자로 살고 있었다.

낮이면 폐허로 변한 거리로 나와 돌아다니다가 저녁이 되면 좀비 세상에 모든 걸 걸어 잠그고 숨죽이며 산다.

어딘가에 혹시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전을 보내면서,

그러다 반려견 샘이 좀비와 싸우다 좀비가 될 때 자신이 반려견을 죽이게 된다.

세상에 혼자 남게 된 샘은 죽을 생각으로 자동차를 몰고 좀비들을 향해 달린다.



('나는 전설이다' 포스터)


이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건 '공포'였다.

'좀비'가 무서운 게 아니라, '외로움'의 공포였다.


세상이 조용하다.

나 혼자만이 움직이고 있다.

진저리 나도록 외로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주인공을 보면서 나를 생각했다.

'나라면 저렇게 살고 있을까?

아니 살아 있을까?'였다.

반려견 샘이 죽으며 주인공 네빌은 폭주하듯이 죽음을 향해 좀비에게 돌진한다.


혼자라는 생각에 외로움이란 단어가 떠오르듯이,

숨 쉬는 동안 우리는 '외로움'과 함께 살아간다.


혼자 밥을 먹다가도 '외롭다'라는 생각이 나고,

혼자 tv를 보다가도 '외롭다'라는 생각이 나듯이

우리는 문득문득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네빌은 반려견 샘과 함께 그래도 혼잣말이 아닌 대화를 하면서 어디를 가든 같이 동행했다.

그러다 샘의 죽음으로 살 생각을 잃은 네빌은 죽을 생각을 하듯이.

누군가 아니, 무언가가 옆에 있다면 외로움은 덜 하게 된다.

살아갈 수 있다.


'펫로스 증후군'이란 말이 있다.

반려동물이 죽으면 우울감과 상실감을 느낀다고 한다.


예전 동물들은 무조건 밖에, 먹이는 사람이 먹다 남은 음식, 간혹 사료를 주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동물들은 집을 지키거나 쥐를 잡거나 하려고 기르는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공간에서 사랑을 주며 나보다 건강을 챙기며 키운다.

그래서 동물들의 수명은 늘어났고, 늘어난 시간만큼 주인과 더 많은 감정을 키운다.


그런 반려동물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 어디에도 없는 외로움을 느낀다.


집에 돌아오면 몇 년 만에 만난 가족처럼 펄쩍펄쩍 뛰며 반겨주기도 하고,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도 어디서 나타나서는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주인이 슬퍼하면 그 슬픔을 아는 거처럼 옆에 딱 붙어 앉아 가만히 보며 위로를 해주기도 한다.


같이 동거한 지 16년이 되는 나에게 반려견이 있다.

성질이 지랄 맞아 많이 물기도 하지만, 간식 달라고 애교를 부릴 때 어디서 저런 걸 배웠지?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런 반려견이 지금 아프다.

포메라니안 4kg의 내 반려견은 심장이 아프다.

증상이 심할 때면 눈물 밖에 나지 않았다.

장례식 준비를 미리 한다고 여기저기를 알아볼 때도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저 조그만 게 어디가 저리 아파 내 곁을 떠나려 할까 '

새벽에 혼자 기침하다 기절할 때 산소호흡기로 겨우 살려놨을 때 안고 눈물 흘리며 '편하게 보내줘야 하나'를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또 기운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리저리 돌아다닐 때는 '저게 나를 얼마나 놀라게 하려고 저럴까' 하기도 한다.

새벽에 기절을 한 그날부터 난 거실에서 이불을 깔고 잔다.

내가 자는 곳 머리맡에 자려고 오는 녀석 때문이다.

침대는 왔다 갔다 너무 힘들 거 같아 거실에 이불을 깔고 잔다.

더우면 기침을 더 하기에 하루종이 에어컨을 켜놓고 외출을 하고, 잘 때 이불을 덮고 있어도 약하게 에어컨을 켜 놓는다. 그러면 어김없이 내 머리 근처 시원한 곳을 찾아 잠을 잔다.


유별나게 키우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보다 더 신경 써가면 키웠던 아이다.

내가 어디에 뭘 하든 자기 눈에 보이는 곳에 나를 보고 잠을 청했던 아이라 저 녀석의 빈자리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나는 전설이다'처럼 주인공 네빌은 세상에 혼자 남아 있어도 옆에 반려견 샘이 있어 견뎠다.

샘이 좀비로 변하면서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했을 때, 샘이 죽고 나서의 그 고독, 외로움.


'나는 그렇게 까지는...'이라는 사람도 변려동물이 죽었을 때는 그 후유증이 몇 년을 간다는 이도 있다.


외로움은 혼자가 되었을 때,

나를 생각하는 이가 없을 때,

내가 눈을 맞추고 얘기할 이가 없을 때,

그리고 내가 돌봐줘야 하는 이가 없을 때도 온다.


세상에 혼자 남은 네빌은 죽음 직전 어딘가에 숨어 있어 있던 사람으로 인해 다시 살아간다.

그렇게 하나, 둘 숨어있던 이들을 찾으러 다니며 영화는 끝이 난다.


외롭다고 험한 생각을 조금씩 조금씩 하면 안 된다.

외로움을 즐겨도 안 된다.

결코 좋은 감정이 아니기에...


네빌이 사람을 찾은 거처럼,

나도 나와 같이 해줄 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돌멩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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