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곡소리를 크게 내 혼이 돌아오게 한다.'
병원마다 다르지만,
발인할 때 보면 기본적인 형식을 갖추지만 나름 조금씩은 다르다.
어떤 병원은 고인을 위해 이쁘게 화장을 해 주기도 하고,
어떤 병원은 그냥 알코올로 닦아 본연의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시어머니 때는 간단한 화장을 했고,
아빠 때는 그냥 그 모습 그대로였고,
외 할머니 때도 그 모습 그대로였고,
올케 죽었을 때는 이쁘게 화장을 했었다.
종교로 그 사람이 죽었을 때 장례식이 달라진다.
각자 맞는 형식으로 나름 슬픔을 이겨내고 고인을 그리며 장례식을 치른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가깝게 살며 왕래가 잦았던 어머니의 조카는 기독교였다.
임종을 기다리며 모인 가족들 사이에서 그 조카는 어머니 침대 옆에 의자를 놓고 성경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나중에 알고 보니 그렇게 읽어 줘야 하느님 앞으로 영혼이 간다고 해서 성경책을 계속 읽어 주는 것이라 했다.
'티베트 사자의 서'
다큐를 보면 그곳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다시 환생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영혼이 길을 잃지 않도록 스님이 며칠 동안 시신 옆에서 불경의 읽어준다.
종교는 달라도 영혼을 대하는 자세는 같다.
죽었어도 좋은 곳으로 갔으면 하는 바램. 간절함.
언젠가 기독교인으로 하나님을 믿으며 그분의 뜻에 따라 옳게 살고 계신 숙모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숙모 기독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돼?"
"하나님 곁, 천국으로 가는 거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지옥 가니깐 하나님을 믿어야지."
'모 아니면 도?'
사람이 죽으면 염라대왕 앞으로 가서 벌을 받는다.
사람이 살면서 죄를 짓는데 업경으로 그 죄를 보고 죗값을 받게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죽음은 간단히 말하면,
살아 있는 자체가 죄를 짓는 거처럼 된다.
말로써 남을 아프게 하거나,
행동으로 남을 아프게 하거나 해도 죄가 되고,
걸음걸이에 개미가 죽어도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참회하며 기도해야 한다.
사람이 죽으면 7대 왕에게 가서 살았을 때 죄를 받는다고 한다.
49일 동안.
하지만, 더 공부를 하게 되면 7대 왕이 아니라 10대 왕에게 심판을 받는게 나온다.
7일에 한 번씩 7대 왕에게.
그래고 100일, 1년, 3년... 이렇게 해서 10대 왕이 된다.
죽으면 저승사자가 데리고 가기 때문에
불교에서 죄에 대한 심판을 피하기 위해 '아미타불'을 열심히 불러야 한다.
그래야 저승 가서 죗값을 받지 않고 부처님 곁에 가서 도를 닦을 수 있다.
기독교와 불교 다 비슷하다.
다른 길로 가지 말라는 것이다. 저승 가서 숨만 쉬어도 죄가 되는 죗값을 받지 말고, 하나님 곁에서, 부처님 곁에서
죄를 참회하라는 것이다.
옛 어르신들 말씀에
"부모가 죽으면 곡소리를 크게 해서 돌아오게 해라."
곡소리를 슬프게 하면 저승 가는 부모님이 돌아와 다시 깨어나기를 바라는 말일 것이다.
예전에는 죽었다 관에서 다시 살아 나온 사람들도 있다 하니 같은 의미다.
죽음을 슬퍼하며 곡소리를 내면 죽었던 사람이 미련을 버리지 못해 다시 돌아온다.
93살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9형제를 낳으시고 그 자녀들이 자녀를 낳고... 이어진 핏줄은 많았다.
지방에서 하는 장례식이라 그런지 '염'을 하는 모습을 자녀들 앞에서 했다.
입고 계셨던 옷을 벗고, 알코올로 닦으며, 수의를 하나하나 입으셨다.
할머니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고, 그때 엄마와 이모들은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만지려고 다가가 얼굴을 쓰다듬고, 손을 잡으려 하셨다.
장의사는 안 된다며 손 사례를 쳤고,
"얼른 가서 씻으세요! 이게 아주 독한 알코올이라 빨리 씻으세요."
그 소리에 엄마랑 이모들을 모시고 화장실로 가서 비누로 빡빡 닦았었다.
어느 스님은 얘기하신다.
"사람이 죽으면 절대 건드리면 안 됩니다."
영이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건드리면 안 되고 슬피 울어서도 안 된다는 말씀이셨다. 조용한 추모를 해야 좋은 곳으로 간다고.
종교를 떠나 죽음의 대한 생각은,
살면서 사람은 얼마나 죄를 짓고 사느냐다.
숨만 쉬어도 죄가 되듯이 100년도 못 되는 삶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고 죄를 짓고 살겠는가.
죽어서 그 죄를 받아야 한다면 지금 살면서 참회하고 기도하고,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하루하루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참회한 사람의 죽음은 두려움, 죄책감, 미련이 아니라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신나는 죽음이 아니겠나 싶다.
어제가 있어, 오늘이 있고, 오늘이 있기에 내일이 있듯이,
하루하루 살면서 어제의 죄를 참회하고, 오늘 죄를 짓기 않기 위해 노력하고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면,
"잘~~~~ 살고 있다!"
"잘 ~~~~ 살았다!"
"잘~~~~ 간다!"
라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있으면 아빠 제삿날이 다가온다.
10년이 더 된 일이지만, 아직도 그곳에서 잘 ~ 계시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