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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구봉선
Jan 08. 2025
사라진 블럭
새해가 밝아오면 저마다 소망을 빌어본다.
각자 마음속에 있던 간절함을 '새해'라는 명목을 빌어 조심스럽게 빈다.
친오빠는 새해 1월 1일에 꼭 산에 올라 새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며 소원을 빈다.
사진도 찍어 000 톡으로 인사와 함께 가족들에게 보낸다.
"정성이다."
"그 해가 그 해지. 오늘 해는 뭐가 달라?"
감정이 서서히 메말라 가는 건지 떠오르는 해를 보며 감동을 먹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들었다.
중년의 나이가 되니, 소원보다는 가족의 안정을 더 바라게 된다.
아프지 않았으니 됐다.
사고가 크지 않았으니 됐다.
사기당하지 않았으니 됐다.
한 해를 보내며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 보면 그저 가족이 잘 지내는 게 최고.
찾아오는 한 해에도
아프지 않았으면,
사고가 나지 않았으면,
사기당하지 않았으면...
2024년 9월 2일이었다.
16년을 살다 간 내 강아지 밍크가 죽었다.
내 품에서 심장이 멎고 인사할 새도 없이 죽었다.
(심장병)
살다 처음으로 기른 강아지여서 애착이 많았고, 실수도 많았고, 잘못도 많았다.
장례를 하면서
"이쁘게 잘 키우셨어요."
장례식장에서 서류 사인을 하는데 직원의 말에 멈칫했다.
정말 이쁘게 컸다.
내가 이쁘게 보는데 남들 눈에도 이쁘게 보인 걸까?
집에 돌아오고 아기가 항상 잠자던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이제 그 자리에 없다고 생각하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내 핸드폰 사진첩을 보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사진 하나에도 눈물이 흘러 도저히 마음을 잡지 못했다.
(지금도 이 글을 쓰니 눈물이 난다.)
조카의 말이
"고모 이게 무슨 감정인지 그냥 레고블럭을 자리에서 쑥 하고 뺀 거 같아요."
"갑자기 사라져서?"
"네. 모든 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쏙 그 밍크자리 블럭만 뺀 거 같아요."
요즘엔 잠이 잘 오지 않으면 짧은 영상을 돌려 보다 보면 내 아이와 같은 영상을 접한다. 소리 없는 눈물이 흐르다 어느새 통곡이 된다.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거란 말...
아직은 아닌지 아직도 아프다.
2024년 12월 29일.
아침밥을 먹다 신랑과 뉴스를 틀어놓고 시끄러운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 주시하는데,
"어? 비행기가 추락했대."
"무슨 말이야?"
뉴스에서는 속보로 비행기 폭파 사고를 자막으로 보내며
사망자수 17명.
사망자수 32명.
사망자수....
점점 갈수록 사망자수의 숫자가 올라갔다.
처음 속보가 뜰 때부터 봤기에 처음 비행기가 부딪치는 영상을 여과 없이 봤었다.
"큰일 났다. 저 정도면 사람이 살 수 있겠어? 이게 무슨 일이야."
사고는 컸고, 뉴스속보는 시간단위로 뒤 바뀌고 있었다.
"하..."
정말 입에서는 탄식밖에 나오지 않았다.
사람이 강한 충격을 자주 받으면 멍해지는 걸까?
하루종일 가슴이 답답하고 한숨만 나왔다.
뉴스를 보려 핸드폰을 손에 놓지 못했다.
그러다 일가족 9명의 사고 소식이 들렸고 그 주거지가 '영광군 군남면'이라는 뉴스에 가슴이 뛰었다.
엄마의 친정이였다. 삼촌, 이모들은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었기에 이름 모를 두려움이 있었다.
"엄마, 빨리 삼촌한테 전화해 봐. 사고 일가족이 군남면 사람들이래."
"뭐야? 알았어. 끊어봐."
한참 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둘째 숙모네 외가 쪽으로 친척이란다."
"어머. 큰일이네."
사촌(삼촌 딸)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조카의 말처럼,
세상의 모든 게 그대로 있는데 그 블럭 하나만 뽑은 거처럼 그 자리만 비어 있다.
누군가는 달려가 아픔을 같이 하는 반면, 누군가는 고까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이 받을 보상금을 셈하며 못된 얘길 입에 담는다.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슬픔에, 아픔에, 충격에 있을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밥을 나르고 청소를 하며 빨래를 자처했다.
갑자기 사라진 가족 잃은 슬픔을 조금이라도 온기를 주고자 했던 이들이 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그들의 고통은 생각치 않고 보상에 대한 돈을 받을 생각만 하는 뒤틀린 사람들은 쓰레기를 입에서 내뱉고 씹는 이들도 있다.
죽음이란,
잊고자 하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시간의 굴레에 있다.
나고 자라면서 함께했던 이들의 시간을 무엇으로 살수도, 팔 수도 없는 내 굴레이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가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사람이 없다는 걸 인식하는 것뿐.
그 사람을 잊는 것이 아니다.
일가족을 잃은 무안집에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다.
이름은 '푸딩'
오지 않는 가족을 기다리며 그 집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동물권 단체'에서 임시 보호를 하고 있다고 했다.
뉴시스 출처 사진
전남대학교 응급학과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새벽 요청 즉시 DMAT(재난의료지원팀) 팀이 출동하고 속속 응급실로 모여 중환을 받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는데 한 명도 이송 오지 못하였다. 단 한 명도 이송 오지 못하였다. 병원으로 꼭 돌아와야 할 사람도 결국 돌아오지 못하였다. 무너져 내린다."
(희생자 중에는 전남대학병원 교수 부부와 중학생 자녀가 같이 있었다.)
너무 아픈 말이였다.
이 글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
시간의 굴레에 있던 사람들은 그 사람의 부재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어떻게 잊어야 하는지, 어떻게 인정해야 하는지...
갑자기 사라진 사람들.
세상은 모두 그대로인데, 사라진 블럭처럼 그 자리가 비어 있다.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고, 만지도 싶어도 만지지 못하는 그 황망함.
뉴스로 접하는 이야기이지만,
그 아픔을 어느 정도 가늠하기에 마음이 아프다.
일상이 무너지고, 어떻게 일어서야 하는지,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하는지...
그 아픔에 칼을 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차도에 차가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하얀색의 비행기가 그 도로를 따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가던 비행기는 차가 다니는 도로가 아닌 다른 도로로 가기 시작했다.
"어? 저 비행기는 왜 다른 도로로 가지?"
그리고 꿈이 깼다.
일어나 숫자를 세어보니 사고 6일째 되는 날이였다.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이런 기사도 나왔다.
인터넷-
"차를 타고 가는데 수직으로 뜬 무지개를 이상해서 찍었는데 그 방향이 무안공항으로 가는 방향이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이었다.
흰색의 비행기에, 무안으로 향하는 무지개를 연결 짖는 건 그저 희생자들에 대한 아픔에 부디 좋은 곳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가슴 아픈 한 해를 보내며,
이런 글을 쓰는 자체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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