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귀찮은 건 남도 귀찮기 마련이다.
요즘 결혼한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대리효도'다
결혼 전에 부모님 생일도 모르더니 결혼해서는 효자코스프레한다고...
정말 그럴까?
그 예를 잠깐 들어본다.
-연예 때는 부모님께 별 관심이 없어 보였는데, 결혼하자마자 시댁을 그렇게 가자고 한다.
-시부모님의 서운한 얘길 꺼내면 '에이 그럴 리가'며 나를 이상한 사람 만든다.
-시부모님이 나이가 들면 같이 살 것처럼 자연스럽게 얘기가 나온다.
등. 이외에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여기에 변명을 하자면...
-결혼해서 분가를 하면 당연히 집에서 매일 보던 부모님 서운할까 갈 수도 있다.
-시부모님 서운한 얘기에 그럼 당장 부모님께 전화해서 화를 내며 정말 그랬냐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연로하신 부모님 나중에 모시면 좋겠다 생각에 내 뜻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댁에 가서 평소 하던 것처럼 tv만 보거나 누워 있고, 아내는 시부모님 비위 맞추며 앉은자리도 편치 않게 앉아 음식수발을 들어야 한다면...
-본인이 들어서 기분 나쁘다고 느껴지면, 상대는 실수를 한 것이다.
아무리 시부모님이라 해도 서로 다른 사람이다. 결혼했다고 갑자기 온갖 참견에 부모님도 하지 않은 잔소리를 한다면 기분 나쁜 건 당연하다.
-합가란 서로가 합의하에 좋은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계속 이렇게 말하면 상대는 수긍하겠지.'
'내가 말하는데, 별다른 반응이 없으면 좋다는 얘기겠지.'
의견을 묻어버리는 행동들이다.
이런 이유로 여자들은 시댁이란 단어를 싫어하게 된다.
-시댁에 가서 같이 도와 밥상을 차리고, 아내를 배려해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아야 하고, 시댁을 한번 갔으면 다음엔 처가에도 가 같은 시간, 공평하게 효도를 해야 한다.
내가 시댁에 가서 불편한 행동을 남편도 느끼며, '시댁에 가는 건 당연한 것이고, 처가에 가는 건 내가 배려해서 가는 것이다.'라는 인식이 없어야 한다.
-아내가 부모님께 얘기에 기분이 나빴다고 얘길 한다면, 그건 아내가 중재역할을 해 달라는 얘기다.
남편이 안 해주면, 내가 할 것이고 그럼 서로가 기분 나빠 어색한 가족이 될 것이니 남편에게 얘기를 하는 것이다.
가서 부모님께 화내고 다시는 그런 말 하지도 말라고 해달라는 게 아니다.
-합가를 생각할 때는 서로가 서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하루 중 누가 집안에 더 머무르고, 밥 준비를 하며, 사소한 일까지 책임지는지.
결혼도 전혀 다른 사람이 '사랑'이라는 허울로 맞춰서 살아가는 것인데, 그의 부모님은 오직 더하겠나.
사랑도 변하기 마련이다. 유통기한이라도 있으면 언제 끝날지나 알지..
왜 남자는 결혼을 하면 변하는 걸까?
-변하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결혼 전 남자 머리는 댕기머리였지만, 결혼을 하거나 관례를 통해서 상투를 튼다.
그만큼 나이가 들면 철들라는 말이겠지...
자신도 챙기지 않던 부모님 생신을 아내가 챙기길 바라고 챙기면 기분 좋고,
그러다 보니 그런 일을 아내일이 되어버린다. 그러다 잊어버리고 하지 않게 되면 되려 화를 낸다.
-내 자식만큼 중요한 게 세상 또 어딨겠나. 내 먹을 거 생각지 않고 아들, 아들에게 먹였다.
그러니 결혼했어도 대우받고, 대접받아야 한다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키웠으니 결혼한 며느리에게 강요한다. 밥은 챙겨 먹이는지, 옷을 깨끗한 걸 입고 다니는지,
며느리한테 홀대받지는 않는지 그 걱정에 아들한테 전화하지 않고, 며느리한테 전화해서 안부들 묻는다.
-합가도 마찬가지다.
내 자식과 같이 사는 게 뭐 어때서, 며느리한테 허락을 받아야 하는가.
내 아들집인데...
하지만,
사랑은 변하게 마련이고, 그 사랑을 변하게 만든 사람은 남편이다.
예전 시대와 다른 요즘은 여자가 인내하고, 참고 살아야 하는 시대는 아니다.
며느리는 같이 밥상에도 앉아 먹지 않고, 따로 밥상에 앉아 먹는 그런 시대는 지났다.
부인은 같이 사는 내 동반자다.
같이 가족을 만들고, 그 가정에 앞으로도 계속 둘은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의논하고 가정을 흔들리지 않게 이끌어 가야 한다.
그렇기에 결혼 전과는 다른 내가 있어야 한다.
부모님께 손 벌리고, 밥상 차려놓으면 먹고, 내가 잘못을 저질렀으면 방패막이되어 나를 막아줬던 부모님을 떠나 내가 부모님처럼 가정을 이끌고 살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아내가 시댁부모님 생일을 기억하고, 챙겨줬으면 당연 고마워해야 하고 감사의 인사도 해야 한다.
더불어 아내가 한 것처럼 장인, 장모님 생일도 기억해 아내가 한 것처럼 나도 해야 하고, 아내의 인사를 받아야 한다.
내 기분이 최우선이 되고, 시댁부모님이 다음순이고, 그다음이 아내의 기분이 되어선 안 된다.
나를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는 하늘과 같겠지만, 그 은혜를 아내 보고 갚으라 하면 안 되는 것이다.
TV를 보다 보면 합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나이가 연로해 자식과 같이 살고 싶은 마음과,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 시집살이에 자유가 없어지는 며느리는 당연히 싫어한다.
샌드위치럼 가운데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며 하소연하는 남자들이 있다.
부모님을 거역할 수도,
아내에게 이해하라고만 할 수도 없다.
물론 이런 일이 100% 일어난다는 건 아니다.
서로 결혼해 의지하며 잘 살고, 며느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더 잘해주려는 시부모님도 계신다.
그런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사는 부부는 더 많다.
하지만, 포털에 계속 나오는
'이런 남편 버리는 게 좋겠죠?'
'이런 시부모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결혼 계속 유지하는 게 나을까요?'
라는 자극적인 문구에 글을 잃다 보면 댓글 80%는
'왜 사세요? 버리세요'
혀를 차게 한다.
그 중에는 자작글이라며 혼을 내는 댓글도 존재한다.
댓글은 손으로 치지만, 머리가 내보내는 말을 전달한다.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한 번 더 느낀다면 그런 얘길 할 수 있을까 싶다.
남의 이야기라고 쉽게 얘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댓글 중에는 중요한 얘기도 많이 하고, 정작 머리를 깨우치게 하는 댓글도 많이 달린다.
하지만, 그런 댓글만 생각하고 정작 나 자신은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단 몇 줄의 사건 일로 몇 년, 몇십 년의 결혼 생활에 환멸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본인도 결혼해 살다 보니 이런저런 사건도 많았고, 도장도 몇 번 찍으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생각나는 건 부모님 얼굴이고, 형제들 얼굴이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연예를 시작했고, 결혼을 했으면, 그 많은 난관을 헤쳐 나갔는지 생각이 나게 마련이다. 그런 난관이 하나, 둘 생각이 났다.
며느리 생일에는 전화도 없다가 아들 생일이니 미역국을 끓여 먹였냐는 그냥 단순한 전화에도 고슴도치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결혼 20년을 겪어보니,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말'
반을 맞고 반을 틀린 부분이 있다.
30년을 그 고집으로 산 사람을 하루아침에 기계 고치듯 'reset'을 시킬 수도 없는 것,
그렇다고 앞으로 4~50년을 같이 살 사람이 그대로인 것도 아닐 것이다.
그냥 서로가 서로 존중하며,
잘못을 지적하고 싶을 땐, 적당한 시간에 둘만이 있을 때 얘기해 본다.
그때 그 분위기에서 기분이 나빴고, 당신의 행동이 나를 상처받게 했다고.
처음에 상대는 당황하고 자기변명을 할 것이고, 화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말솜씨가 늘어가면 상대는 당신이 어떤 부분에서 기분이 나쁠지, 상처받을지 알게 되며 그렇게 조심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reset'은 되지 않는다.
그저 고치고 고쳐서 사는 것이다.
부부는 철도의 길처럼 같은 길을 같이 가는 것입니다.
수평선을 같이 바라보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해, 더 행복하자고 결혼하는 것인데
왜 결혼해서 불행을 느낄까요.
세상에는 좋은 사람은 많습니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동물과 사람은 다릅니다.
말귀를 알아듣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서로가 대화로,
차근차근,
상대의 입장이 되어서 한 번 더 생각해 본다면,
이해라는 감정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빨리빨리'는 우리나라에서 빠질 수 없는 단어입니다.
주문을 해도 음식이 빨리 나오고, 와이파이는 어디에서도 킬 수 있으며,
속도가 늦게 되면 속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그런 빨리빨리에 적응된 몸은
결혼 생활도 아니면 그만이라는 속도에 적응하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