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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익지 않았을 뿐 실패는 아니다

by 부아c

포도가 포도주가 되려면 시간과 온도가 필요하다. 익은 열매라 해도 바로 술이 되는 것은 아니고, 그 안의 당과 향이 서서히 변해갈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사람의 성장도 그 숙성과 닮아 있다.


그 누구도 포도 자체를 비난하지 않는다. 덜 익었다고 실패라 하지 않고, 아직 이르다고 탓하지 않는다. 단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걸 안다. 사람에게도 그런 시선이 필요하다.


조급한 마음은 때때로 나 자신을 의심하게 만든다. 왜 나는 아직 이 정도밖에 안 될까, 왜 다른 사람보다 느릴까 하는 생각에 괜히 초조해진다.


하지만, 숙성 중인 시간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그 시간은 멈춰 있는 게 아니라 준비되고 있는 시간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쌓이는 것들이 있고, 언젠가 향으로, 깊이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포도도 마찬가지로 사람도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익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 시간에 너무 조급해 하지 않는 것, 시간이 걸린다는 걸 인정하는 것, 그 자체가 성숙의 과정이다.


좋은 포도주일수록 시간이 더 걸린다. 더 좋은 환경에서 충분히 잘 숙성되어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오래 걸리는 내가 꼭 틀린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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