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서는 오래된 일이 떠오르면서 감정이 다시 올라올 때, 그 감정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라고 본다. 이미 지나간 줄 알았는데 다시 마음을 건드리는 이유는, 그때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감정은 시간이 한참 흘러도 불쑥 고개를 들곤 한다.
그 일이 마치 지금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누군가의 말투나 표정, 내가 느꼈던 억울함이나 서운함이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단순히 기억이 아니라, 여전히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있는 감정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심리학자 다니엘 시겔은 “감정은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다른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이야기한다. 프로이트 역시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무의식 속에 남아 있다가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억지로 눌러뒀던 감정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머물며 기회를 보다가 다시 떠오른다. 그래서 어떤 감정이 반복해서 떠오른다면, 그것은 내 마음이 아직 다 끝내지 못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
그럴 땐 그 감정을 무조건 밀어내려 하기보다는, “아직 내 안에 이 감정이 있었구나” 하고 조용히 알아주는 게 더 도움이 된다. 억울했던 일, 아팠던 말, 마음에 상처로 남은 장면들이 떠오를 때도, 그 감정들을 억지로 없애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한 번쯤 천천히 들여다보는 것, 그 자체로 치유가 시작되기도 한다.
감정은 우리가 느낄 준비가 되었을 때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라질 수 있다.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잠깐 멈춰서 내 감정을 이해해보려는 그 시간이 꼭 필요하다.
결국 감정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는, 내가 그 감정을 얼마나 솔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반드시 해결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감정이 내 안에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한 걸음 더 회복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