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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욱 Jan 26. 2023

트렌드의 늪에서 벗어나는 법을 알려주세요

디자인의 클래식을 찾다


시간이 흘러도 결코 낡지 않는 록음악


저는 자기완성적인 삶을 살기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자기완성적인 삶이라는 것은 순간적이고 산발적인 외부적 욕구에 휘둘리지 않고 내 안에 내적인 자기원리를 갖고 그에 따라 운동하며 어떤 논쟁이나 문제를 만났을 때 나의 내적근거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그런 삶을 말합니다. 생이라는게 길진 않지만 짧은 삶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추구하는가? 라고 질문한다면 저의 대답은 감정적인 행복의 추구가 아닙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의 목표가 될 수 없고 다만 우리가 특정 환경을 조성했을 때 발생하는 부차적 현상처럼 느껴졌지 우리의 힘으로 직접 제작하고 동작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 스스로 다만 이룰 수 있는 건 내가 외적인 힘에 이끌리지 않고 내적인 단단함을 가져야 내가 상상하고 구상하는 세계를 실제 나의 근육으로 물질을 빚어서 세상에 만들어 낼수 있는 통제력을 지니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마음을 그리고 내 (멀거나 가까운) 주변 세계를 직접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추면 저는 비로소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제 나이 또래의 친구들과 대화하거나, 오래간만에 부모님과 대화할 때면 제가 어느정도 그 목표를 달성했다고 믿습니다. 저는 상대적으로 시장과 공동체사회가 암묵적으로 강제하는 성장과 경쟁에 대한 욕구, 열등감과 자존심, 누군가 나를 무시할 거 같은 두려움 등등의 감정에 굉장히 무감각합니다. 정말로요! 한 때는 그런 감각들에 휩쓸려서 고통받았고 자본주의 사회의 한 개인으로서의 역할을 열심히 수행해왔습니다. 그런데 자존심이라는 감정이 점점 환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것과 거리를 두게 되었어요. 마치 담배를 끊듯이 부정적인 감정들로 부터 많이 멀어졌습니다. 저는 생각해보면 사로잡는 것으로 부터 멀어지는 걸 잘 하는 편입니다. (?) 친구들은 저한테 돌 혹은 나무 같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제 앞에는 아직 많은 시간들이 남아 있으니까요. 시간이라는건 가능성이고 가능성이라는 건 곧 불안이라는 요소를 포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무언가로 부터 벗어나고 싶다면  그것을 부정하면 안돼요. 부정하는 감정은 결국 그것을 이끌리게 하고 말아요. 프로이트는 꿈에서 부정적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무의식이란 욕망이라는 하나의 인력작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떤 특정 대상의 긍정과 부정이 아닌 정도와 강도만이 존재합니다.


바틀비는 일을 안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prefer not to)

중요한건 나를 괴롭히는 대상의 강도를 낮추는 일입니다. 필경사 바틀비가 했던 것처럼 '행위 안함'을 긍정하는 방식으로(칸트는 이것을 부정과 구분짓는 의미에서 무한판단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버찌씨를 끊어낸 방식으로 (그는 버찌씨에 중독되는 게 싫어 토할때까지 먹었다가 다음 날부터 머릿속에 버찌씨를 비워냈다고 말합니다) 혹은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존 내시가 자신의 환영을 극복한 그런 방법들로 말입니다. 강박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선 조금 특별한 기교가 필요한 것 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강박이라는 불편한 증상 자체가 '나'라는 완성된 논리의 부분을 구성하기 때문이죠. 그걸 깨뜨리려면 평소의 평범한 태도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개인적 강박과 불안으로 부터 벗어나는 것 보다 어려운 것은 사회적 강박과 불안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특히나 저는 문화계에서 가장 거대한 강박이 트렌드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시대가 변하면 무언가 새로운게 나타나서 인류의 문화를 구원할(?) 거라는 일종의 환상이죠. 새로운 문화가 유입되고 형성되면서 시장을 다양화시키고 복잡화하는건 분명 긍정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트렌드는 우리가 알다시피 그러한 방식으로 등장하지 않아요. 어떤 특정한 부류가 지나친 관심과 지나친 자본을 업고 지나친 평가를 받습니다. 일종의 호들갑이죠. 사람들은 속고 속고 또 속습니다. 시대가 변하면 또 다른 트렌드가 나타나서 다른 메시아를 자처하는데 조금 기다려보면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져 있습니다. 이런 트렌드의 강박으로 부터 벗어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너무 답답하고 힘듭니다. 


난 정말 디자이너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야


제가 특히나 힘든 이유는 제가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요. 브랜드 디자인에 흥미를 느끼는 저는 반트렌트? 적인 저의 성향이 디자이너로서 커리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트렌드를 잘 읽고 잘 따라가는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유혹이 디자이너에게 항상 따라 붙습니다. 제 주변에도 트렌드를 연구하는 스터디모임을 하는 디자이너 친구들이 매우 많구요. 그들은 종종 트렌트를 잘읽고 해석한 브랜드 리뉴얼을 보고 감탄하고 긴 글을 쓰며 분석하곤 하는데 저는 그 브랜드가 2,3년 후에 또 리뉴얼 할 텐데 왜 그렇게 감탄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로고의 가치를 만드는 무엇보다 가장 큰 요소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뚜기 로고보다 강력한 식품 로고가 또 어딨을까요. 오래 지속하는 디자인과 브랜드는 단순한 시장논리를 넘어 디자인 윤리(그런걸 말할 수 있다면)를 실현하는 진정 가치있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신발장에 5켤레의 신발이 있는데 그중 4켤레는 모두 닥터마틴입니다. 그야말로 닥터마틴이라는 브랜드의 '찐'팬이라고 할 수 있죠. 제가 닥터마틴을 신는 이유는 크게 3가지 입니다. 첫째, 예뻐서입니다. 제가 프랑스 살 때, 레게머리를 하고 반짝거리는 옷을 입은 히피같은 친구들이 신은 닥터마틴은 정말 멋있었습니다.

둘째, 튼튼합니다. 저는 발 볼이 넓고 뒤꿈치가 뾰족해서 신발을 몇개월만 신으면 헐고마는데요. 닥터마틴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셋째,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1940년대 후반 만들어진 닥터마틴 신발의 시리즈 디자인은 백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크게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스킨헤드, 펑크, 히피 등 세대별로 다양한 스타일에 맞게 해석되고 전유되어 왔죠. 오랜시간 지속되어왔던 디자인은 앞으로도 오랜시간 지속될 것이란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미지의 내구성이 매우 강력합니다. 그렇다고 고루한 브랜드는 결코 아니죠. 고유의 개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조그만 변화를 준 절충적인 디자인이 시즌별로 나와준다는 점도 저에겐 매우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합니다.


제가 오래된 브랜드의 가치만을 긍정하는 건 아닙니다. 어떤 디자인이든 시간이 쌓이면 그게 브랜드가 된다라기 보다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트렌드의 홍수에서 견디며 버티는 디자인 (혹은 이미지)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보통 건축가나 가구 디자이너의 말 처럼 들리지만 저는 오늘날 같은 때에 그래픽 디자이너가 가져야하는 매우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픽디자인이 지금까지 기술의 발전과 함께 기술친화적인 디자인 발전사를 보여줬다면 지금은 보편지속적인 디자인 언어를 정립하고 설득할 수 있는 그런 디자이너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기완성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태도를 디자인에 담아 녹여내고 싶습니다. 디자인이란 인간 내면의 감성적 운동을 사물에 형태화 시켜넣는 행위니까요. 일종의 나의 다짐과 태도에 대한 증명과 설득을 하고싶습니다. 그걸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에 관해 정말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은 디자인이 트렌드를 빨리 잡아채는게 일종의 유행처럼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2022년 동안은 NFT니 인터렉티브니 해서 유독 심했던것 같구요. 빨리 달려가는 것도 좋지만 지속하고 보편적인 디자인 가치를 찾고 공부하고 정립해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디자인이 매력을 끌어당기는 역할 이상으로, 어떤 윤리와 철학을 제시할 수 있는 그런 힘이 있다는 가능성을 더 많은 사람들이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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