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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균 Aug 02. 2024

5. 스포츠에 대하여 (델피)

한 번뿐인 그리스 신혼여행기

1. 제사(祭祀)와 스포츠는 하나였다.

여행은 잘 걸을 수 있을 때 하는 게 좋다. 부모님의 말이었다. 물론 나는 아직 젊다. 하지만 스무 살 무렵 뚜벅이 여행을 다닌 시절에 비하여 몸이 분명 둔해져 있었다. 고대 그리스 민족의 영산(靈山) 파르나소스를 오르면서, 나의 운동 부족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그리스 신혼여행을 통틀어 가장 많이 걸은 하루였다. 웬만해서 힘든 티를 내지 않는 아내조차 가끔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 신혼여행은 게으른 여행이다. 정신없이 결혼식을 마치고 잠시 주어지는 짧은 휴식이다. 그렇기에 휴양지를 많이 택한다. 하지만 우리는 장기 여행이었고, 계획부터 유적지 답사가 꽤 끼어있는 편이었다. 문제는 델피 유적은 고대 그리스의 성지(聖地)라는 것이다. 본래 신이 사는 땅은 인간이 닿기 힘든 곳에 있는 법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열심히 산을 걸어 다녀야 했다.   

파르나소스산은 우주의 중심이었다. 최고신 제우스가 동서 땅끝에서 동시에 독수리를 날려 보내어 중간에 만난 곳이다. 그곳에 제우스는 배꼽이란 뜻의 ‘옴팔로스(ὀμφᾰλός)’라는 둥그런 돌덩이를 놓아두었다.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했던 아버지 크로노스에게 대신 먹인 돌덩이라고 한다. 지금도 델피 고고학 박물관에서 그 유적을 직접 볼 수 있다.   

이곳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델포이 신전이 세워졌다. 아폴론이 신녀(神女)를 통해 미래를 예언한다는 그곳이다. 온갖 영웅들과 왕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이 전통은 자그마치 로마의 기독교 국교화 이전까지 이어졌다.   

유적지는 이미 전 세계에서 모인 관광객들로 바글바글했다. 그리스어보다는 오히려 독일어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이들에겐 경주 같은 느낌인지 수학여행을 온 고등학생들의 모습도 꽤 보였다. 이 학생들은 물론 고대 유적보다는 다른 나라 동갑내기들에게 더 관심 있어 보이기는 했다. 은퇴한 여행자들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모두 옛 순례자들처럼 산을 올랐다.   

유적지 가장 꼭대기에는 작은 스타디움이 있었다. 산 중턱에 자리하여 관광객 중 여기까지 오르는 사람은 생각 외로 많지 않았다. 모두 아래 아폴론 신전과 원형극장까지만 구경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나조차 초등학교 운동장이 이것보다 크겠다 싶은 실망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이곳은 고대 그리스 4대 축제 중 하나, 피티아 제전(祭典)이 열렸던 곳이었다.

델피 스타디움 @ 촬영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육체를 숭상했다. 단순히 운동이나 싸움을 좋아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이들에게 신앙생활과 육체 활동은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제사(祭祀)와 스포츠는 하나였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어 신을 기쁘게 하고, 신께 다가가는 활동으로 스포츠를 즐겼다. 실로 문약(文弱)한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생겨난 게 4대 축제였다. 올림피아 제전, 피티아 제전, 네메아 제전, 이스트미아 제전이 그것들이다. 범 그리스 경기라고도 알려져 있다. 우리는 흔히 올림피아만 알고 있다. 모두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모여드는 축제이면서, 누가 최고인지를 겨루는 스포츠 대회이면서, 또한 신을 만족시키기 위한 제사이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것들을 굳이 구별하지 않았다.   

피티아 제전은 이 중에서 올림피아 다음으로 권위 있는 대회였다. 파르나소스산을 휘감았다는 전설적인 뱀 피톤을 죽였던 아폴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다는 멋진 명분도 있었다. 사실은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전쟁과 대립 없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흔치 않았다는 점도 한몫할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그 당시 축제들은 올림픽이나 월드컵, 아시안게임과 같은 스포츠 이벤트들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러한 스포츠 이벤트들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 이상 우리는 고대 신들을 기쁘게 하도록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왜 우리는 스포츠를 즐기고, 열광하고, 거기에 돈을 쓸까? 이 질문은 근래 나의 화두였다.   


2. 스포츠 회사

나는 스포츠 회사에서 일했다. 정확히는 스포츠 전문 OTT 회사였다. 다양한 전 세계 스포츠 이벤트들을 서비스하는 곳이었다. 나의 첫 직장이기도 했다. 20대 동안 방황과 고민을 차마 끝마치지 못하고, 직업을 선택해야만 했다. 지쳐있던 나는 즐겁고 재밌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었다.   

스포츠를 언제부터 좋아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사실 하는 건 지금도 썩 내켜 하지 않는다. 하는 쪽보다는 보는 쪽이다. 대학 시절 자취방에서 혼자 컴퓨터를 켜놓고 농구와 격투기 등을 보던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시간 때우기였다. 하지만 곧 눈에 밟히는 선수들이, 팀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열정도 따라왔다.   

덕업일치라는 말이 있다. 신조어인데 자신의 취미와 직업을 일치시킨다는 의미다. 요즘 신세대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감히 그런 직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잔소리도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래도 가능하다고 믿고 싶었다.   

그 마음으로 자기소개서를 썼다. 운이 좋아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정신없이 업무를 배우느라 시간을 보냈다. 스포츠 콘텐츠 서비스에 내가 참여할 수 있다는 게 즐거웠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경기를 보면 그 자체보다는 시청자 수를 확인하는 게 더 중요해졌다.   

그러다 보니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도대체 왜 스포츠를 볼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회원 잔존율과 스포츠 이벤트 달력을 보며 숫자를 맞췄다. 단순히 사람들이 재미 때문에 스포츠를 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건 게으른 대답이다. 그리고 내가 다루는 것은 프로스포츠였다. 즉, 돈을 벌어야 하는 영역이었다.   

프로스포츠라는 건 비교적 낯선 개념이다. 누군가 운동하는 것을 보고 돈을 낸다는 개념은 생긴 지 이제 백 년이 약간 넘었을 뿐이다. 고대 올림피아 초대 우승자의 직업은 빵집 요리사였다고 한다. 이렇듯 인류 역사상 대부분 우리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일종의 취미로 운동했다. 하지만 이제 프로스포츠는 전 세계적으로 몇백조 시장 규모를 가지고 있다. 21세기는 더욱 프로스포츠의 시대일 것이다.   

앞서 본토에 오기 전, 에게해를 여행할 때 우리는 페리를 탔었다. 섬 많은 그리스에서는 주로 페리를 타고 이동할 일이 많다고 한다. 사람들이 우르르 선착장에서 기다리다가 배에 탑승하는 광경이 꽤 장관이다. 물론 지중해 지역 특유의 느긋느긋한 일 처리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배에 타보니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다. 페리 한가운데 모두가 보기 좋게 스포츠카가 놓여있었다. F1 차량 경주 대회에 출전했던 차량이라고 안내가 돼 있었다. 그리고 페리 이곳저곳에 놓여있는 모니터들에서는 각종 극한 스포츠 경기 장면들이 송출되고 있었다.

F1 차량이 전시 되어있던 페리 @촬영

처음에는 굳이 왜 이런 스포츠들을 주제로 배를 꾸민 건지 의아했다. 하지만 곧 깨닫게 되었다. 이 회사는 빠르고 강력함 스포츠를 통해서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이를 통해 페리가 단순히 교통수단이 아닌, 일상과 다른 경험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가 스포츠를 즐기는 이유도 어쩌면 이와 같을 것이다. 스포츠 회사에 다니며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사람들은 스타에 열광한다. 그리고 자신의 스타가 스포츠에서 겪는 성장 여정 그 자체를 즐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스포츠는 경력이기에 오히려 더 의미가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스포츠가 주는 원초적인 멋이 사람들을 고양하게 만드는 건 분명한 것 같다. 일상에서는 오히려 경쟁적인 환경에서 무언가를 성취하는 일이 감춰져 있다. 즉각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땀을 통해서 노력하고 몸을 움직여 결과를 얻는 것에 감동하고 열광한다.   

스포츠가 아무 쓸모 없다는 생각을 가끔 하기도 했다. 보통은 회사 일이 힘들 때였다만. 유명한 말처럼 스포츠는 직접 볼펜 한 자루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직접 스포츠에 참여하든, 아니면 어느 특정 스타의 팬이 되어 응원하든 그것은 우리 삶을 조금이나마 바꿔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보람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3. 아라호바

델피 유적지 탐방을 끝마친 뒤, 근처 아라호바(Αράχωβα) 마을로 차를 몰았다. 온종일 걸으며 고생했던 보상이 필요했다. 어느 유럽의 오래된 마을들이 보통 그러하듯 차량을 주차하기 어려워 마을 초입에 차를 대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서 자갈돌로 쌓아 만든 집들 사이로 걸어들어갔다.   

사실 계획에 없는 여행지였다. 여행은 하지만 가끔 우연히 큰 선물을 주기도 한다. 전날이었다. 해가 진 산길을 덜덜 떨면서 달렸다.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1차선으로 꼬불꼬불한 길이 이어졌다. 한국이었으면 다리를 짓고 터널을 뚫고 길을 새로 내었으리라 생각했다. 긴장하며 핸들을 꼭 붙잡았다. 이제는 결혼도 했으니 좀 더 운전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도 생겼다.   

그러던 도중 정말 거짓말처럼 중세 마을이 나타났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동화 같은 마을이었다. 집들은 돌로 만들어져있었고 간판과 문은 나무였다. 작은 골목골목 사이로 마치 크리스마스처럼 불을 밝혀두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검은 돌 위로 주황색 지붕들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마을 시청 위로 멋진 시계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그 거짓말 같은 마을을 지나친 뒤에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계획을 바꿔서라도 여기 다시 오자” 그리고 늦게나마 그곳에 갈 수 있었다. 골목골목을 탐험한 뒤, 카페에서 해가 지는 산 풍경을 감상했다.

@아라호바 마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미 한국에서는 워낙 유명한 마을이라고 한다. 자그마치 국민 드라마 촬영지다. <태양의 후예>라는 작품에서 주인공 커플이 키스하는 곳이 바로 아라호바 마을의 시계탑 아래라고 한다. 솔직하게 그 드라마를 본 적이 없다. 그 주인공 커플 배우들의 스캔들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만 모르는 장소였구나 싶었다.   

그리스인들에게는 워낙 이름 있는 관광지라고 한다. 귀동냥으로 들어보니 그리스인들은 여름에는 이오니아해 해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겨울에는 이 아라호바를 방문한다고 한다. 파르나소스산에 눈이 덮이면 스키를 타기 최적의 환경이란다. 마을을 돌아다녀 보니 설산과 관련된 간판이 많이 보이기도 했다.   

단순히 스키 여행지로서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라호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당연히 옹기종기 붙어있는 주황색 지붕과 돌로 만들어진 건물들인데, 이 모두는 지방정부 조례의 결과라고 한다. 지방정부는 전통 건축 문화를 보존하기 위하여 반드시 돌로만 건물을 짓도록 강제했다.   

도시의 아름다움은 소재의 획일성과 형태의 다양성에서 나온다고 한다. 우리가 이런 유럽 전통 도시들을 보고 감탄하는 이유다. 그 지역의 특성에 맞는 건축 소재들은 보통 한정되어있다. 아라호바의 경우에는 돌이었고, 우리는 나무였을 것이다. 반면 건물을 지어야 하는 땅을 모두 제각각이다. 어떤 땅은 좁고 어떤 땅은 휘어있다. 그 삐뚤빼뚤한 땅 위로 지어지는 건물 형태는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 땅에 적응하기 위한 건축의 결과에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반면 현대 도시는 소재는 다양하고 형태는 획일하다. 우리가 현대 도시에서 아름다움을 찾기 어려운 이유라고 어느 건축가의 글을 읽었다. 이 때문에 아라호바처럼 건축 조례를 통해 소재를 획일화 할 수도 있다. 그리스 여행이 끝나고 이후에 경유지로 두바이에 방문했다. 그곳에서는 어떤 건물도 똑같은 설계로 지을 수는 없다고 했다. 이 경우에는 형태를 강제로 다양하게 만든 것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시도들이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다. 보통은 지방의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늘 콘텐츠이다. 남도의 어떤 마을에서는 마을 지붕을 모두 보라색으로 칠했다고 한다. 멋진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왜 하필 보라색이어야 할까는 의문 역시 남는다. 아라호바의 건물을 돌로 지어져야 하는 이유는 그 역사 때문이다. 한국의 개성을 가진 마을들은 이제 각각 그 이유를 찾아야 할 단계에 들어선 것 같다.   

여행은 절반을 지났다. 우리는 계속 코린토스 해를 따라서 서쪽으로 나아가 바다를 횡단하는 리오안티리오 대교를 지났다. 점차 시야에서 산들이 사라지고 다시금 바다가 다가왔다. 지금까지 지나온 작은 소도시들에 비하면 거대한 항구 도시 파트라스에서 다시 배를 기다렸다. 그리스에서 배를 타지 않고 여행하는 건 정말 쉽지 않다. 다음 목적지는 신화의 섬, 케팔로니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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