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농구... 좋아하세요?
나는 농구팬이다. 나를 설명하는 중요한 정체성 중에 하나라고까지 느낀다. 특히 한국프로농구를 가장 좋아한다. NBA와 같은 외국 농구 리그도 물론 가리지 않지만, 마음속 첫 자리는 늘 한국프로농구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계절은 사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즌과 비시즌이라는 이름의 계절도 존재한다.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농구가 시작되기만을 마냥 기다린다. 우리 팀이 이번 시즌에는 다르겠거니 기대하며, 새로운 선수 이적 소식에 귀를 기울이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러다 시즌이 개막하면 나의 농구팬으로서 생활도 시작된다. 한국프로농구는 6라운드를 치르게 되어있다. 하나의 라운드란 다른 모든 팀과 경기하는 일정이다. 전국에는 총 10개 팀이 있으니, 자신을 제외하고 총 9팀과 여섯 번씩 맞붙게 된다. 결국 정규리그 동안 한 팀당 1년에 54경기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이 일정들을 잊지 않게 미리 달력에 표시해두곤 한다.
정규리그로 시즌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대망의 플레이오프가 곧 열리게 된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진출하게 된다면, 이제 우승을 위한 도전이 계속 이어진다. 플레이오프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기에 훨씬 더 치열하다. 탈락의 위험을 안고 매 경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매번 손에 땀을 쥐는 경기를 하게 된다.
솔직하게 말해, 가끔은 이런 농구팬으로서의 일상이 힘들기도 하였다. 특히 팀이 어려운 사정에 처해있을 무렵에 그랬다. 심지어는 패배 때문에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가끔은 경기 전부터도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매번 시청하게 된다. 왜 하필 이런 팀, 그리고 농구를 좋아해서 이런 고통을 겪는지 한스러웠던 적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있을까? 이미 팬이 되어버렸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일종의 업보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애착을 느끼면 자연스레 삶의 희로애락이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팬이 되면 마음의 평안은 순전히 나의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의 플레이에 좌우된다.
물론 그렇게 내 감정을 투사하지 않으면 되는 문제이다. 하지만 사실 어느 스포츠든 마찬가지겠지만 팬이 되지 않는다면, 그 종목의 참재미를 느끼기 어렵다.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결국 스포츠의 본질은 남의 운동을 옆에서 관람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랑 상관없는 일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농구가 나와 상관있는 일이 되어 버렸다. 홀로 자취방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으로 기억한다. 우연히 본 경기였다. 내 고향 팀이 큰 점수 차를 뒤집고 역전승에 성공했다. 마지막 골대를 향해 슛을 쏜 선수는 카메라를 향해 세레모니를 했고 그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그날 나는 팀의 다음 경기 일정을 찾아보았고, 그렇게 팬이 되었다.
어쩌면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절이었기에 농구라는 스포츠가 큰 힘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그 결과인지 인생의 첫 직장을 선택해야 할 무렵에 한국프로농구를 중계하는 회사에 입사했다. 회사 일하면서 잔뜩 농구를 볼 수 있어 나쁘지 않은 추억이었다.
처음으로 고양체육관에 방문한 것은 그 회사에서 일할 때였다. 고양체육관은 지금은 ‘고양 소노 아레나’라는 이름으로도 쓰인다. 고양을 연고지로 하는 농구팀이 소노 그룹에 인수되면서 생긴 변화다. 당시 나는 중계 회사의 일원으로서 VIP석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어느 스포츠팀의 팬이 되는 계기는 우연일 수도 있지만, 한번 팬이 되고 나서는 마치 운명과 같다. 내 나름의 충성심이 존재한다. 그래서 새로 이사 온 동네를 연고지로 하는 팀이 있다고 하더라도 쉽사리 응원하는 팀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이 비좁지는 않으니, 이제 가까이 있게 된 농구팀에 당연히 애착이 간다. 더구나 요즘 소노 그룹에게 인수되며 몸단장을 새로 했다. 산뜻한 하늘색이 대표색이다. 세련되게 바꾼 유니폼을 입고 뛰는 선수들도 보니 약간은 멋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고양에 살게 되면서 고양체육관을 자주 찾게 될 것이다. 앞으로 좋은 경기로 더 많은 날을 즐겁게 해주리라 의심치 않는다.
2. 스포츠를 권하다.
농구 경기를 보러 경기장에 들어가는 길, 유니폼을 입은 어린아이들이 눈에 많이 띈다. 보통 부모님의 손을 잡고 신이 났다. 확실히 아이들이 관람하기에 좋은 스포츠라는 생각이 든다. 끊임없이 음악이 나오고 선수들이 뛴다. 그래서 보통 농구장에서 아이들은 방방 뛰면서 에너지를 방출한다. 어쩌면 승부와 상관없이 농구 경기 자체를 즐기는 건 어린이들일지도 모르겠다.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체류했던 적이 있다. 그 시절 내가 묵고 있던 홈스테이 집 자식들과 나름 친해져서 부탁해서 현지에서 농구 경기를 보러 갔다. 호주는 국민 전체가 스포츠를 사랑하는 나라다. 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는 것에도 열광한다. 어느 스포츠 경기를 가득 사람들이 모여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경기에 열광하는 모습이었다.
사실 한국에서 스포츠 경기를 보러 가면, 비단 농구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마찬가지로 경기장을 찾는 연령대는 국한되어 있는 느낌이다. 텔레비전을 통한 시청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호주 농구 경기장에서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휠체어용 좌석에서 응원하던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었다.
스포츠 회사에서 일하며 외국의 스포츠 문화가 얼마나 뿌리 깊고 가족적인지 들었다. 그들에게 스포츠 팬으로서의 정체성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의 문화로서 물려받는 것이면서, 나이가 들어서도 손자와 함께 할 수 있는 취미다. 우리에게 그런 문화가 없음이 내내 아쉬웠다.
어떤 나라가 선진국인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을 수 있다. 나름 스포츠 업계에 일했던 관점에서 한 가지 기준을 더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지역의 스포츠팀의 팬이 되고 경기를 관람하고 즐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실 스포츠 자체에 반감을 갖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일이 많았다. 마치 시간 낭비처럼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비단 스포츠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는 모든 문화와 취미와 애호가 그저 노는 것으로 죄악시되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이런 인식의 차이가 우리를 선진국과 가르는 기준인 것 같다. 어쩌면 그 차이가 우리 사회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좀 더 삶을 다채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스포츠는 좋은 수단인 것 같다. 어느 만화가가 말했다. 좋아하는 팀이 생긴다면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달라지지만, 마치 스포츠 팬과 일반인은 서로 외계 행성에 사는 것과 같아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정말 동의하는 말이지만 그래도 안테나로 외계 행성에 메시지를 보내듯이 교신을 시도해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경기장에서 만난 유니폼을 입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부럽기도 하다. 그 아이들에게는 부모님과 같이 경기를 봤던 것이 추억이고, 또 그 추억을 통해서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물려받아 자랑할 수 있을 테니까. 그건 어떤 의미에서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린 마음에 좋아하는 팀이 패배하면 속상하기도 하겠지만, 바로 그 점이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3. 연고지라는 인연
사실 승부가 결정되면 미리 일어날 계획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었기 때문이다. 고양체육관은 늘 공간이 부족해서 주차하는데도 한세월이 필요하지만, 마찬가지로 빠져나가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는 예상치 못하게 연장전으로 흘러갔다. 공수가 뒤바뀌며 엎치락뒤치락 승부를 알 수 없었다. 나는 화장실조차 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마지막 순간까지 경기를 지켜보았다.
결국 홈팀이 승리했다. 사실 이미 플레이오프 진출은 결정되었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의미 있는 승부는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 경기는 그 차후 결과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가치 있고 나름의 재미가 있다. 홈에서 오랜만에 승리를 거머쥐어서인지 체육관은 축제 분위기였다.
덕분에 주차해둔 차를 꺼내오는데 이미 재빠른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어서 난리였다. 운전석에 앉아서 멀리 있는 거대한 체육관을 바라보며 스포츠 팀의 연고지를 둔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의 고향과 지금의 나를 연결하는 것은 이제 많지 않다. 성인이 되며 고향을 떠났기에 이미 십몇 년째 외지인으로서 살고 있다. 하지만 나의 고향과 이어진 가늘고 긴 끈이 바로 내가 응원하는 팀의 연고지라는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스포츠팀의 연고지 제도는 꽤 재밌는 제도다. 마치 봉건시대처럼 태어난 지역에 따라서 자신이 응원할 팀이 정해지고 상대와 싸워서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 요즘 새롭게 시작된 이스포츠들에서는 연고지 제도가 당연히 없었지만, 흥행을 위해 오히려 도입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사람들을 열광케 할 수 있는 카드임에는 분명하다.
고양 사는 다른 주민에게 고양은 대표할만한 무언가가 없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저 서울 배후 신도시로서 자부심이랄까 애향심을 들게 만드는 상징이 부족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일개 농구팀이 그 모든 역할을 다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팬들에게는 연고지와 자신들을 연결해주는 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