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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균 Aug 02. 2024

2. 고대 문명에 대하여 (산토리니)

한 번뿐인 그리스 신혼여행기

1. 고대 문명 애호

아직 나는 고대 문명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옛 아틀란티스가 바로 산토리니이다. 나는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느 북카페에서였다. 커피를 주문하고 책장을 살폈다. 어디를 가든 어떤 책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버릇이다. 그러다 꽂혀있던 지중해 여행기를 펼쳐 들게 된 것이다. 워낙 여행도 책도 좋아하기 때문에, 여행기는 늘 실패하지 않는 선택이다.    

그 책에서 산토리니 대폭발에 대해서 읽게 되었다. 기원전 16세기, 인류가 수천 년 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초대형 화산 폭발이 산토리니에서 있었다. 아니, 옛 산토리니가 원래 일부였던 거대한 섬에 있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초승달 모양의 산토리니는 과거 있었던 거대한 폭발의 껍데기 혹은 흔적에 불과하다. 지금도 산토리니 절벽에 올라 바다를 보면, 섬들이 둥글게 화산섬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원전 16세기는 한국에서는 단군 신화가 겨우 가닿는 시기이다. 그 시절에도 산토리니에는 문명이 있었다. 지중해는 워낙 잔잔하다. 그리스 여행 중 늘 바다를 보면서 그 평온함에 놀랐다. 그런 바다를 사이에 두고 산토리니는 크레타를 바라보고 있기에, 고대 미노아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 고고학 유산을 통해서 우리는 당시 산토리니 섬이 지금의 홍콩이나 싱가포르처럼 상업을 통해서 먹고사는 작지만 부유한 지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던 도중 섬이 말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거대한 화산 폭발로 당시에도 잔잔했을 바다가 뒤집히고 하늘에는 검은 재만 내렸다. 가까이 있던 미노아 문명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몰락해버렸다. 어떤 이들은 성경에 기록된 탈출기의 10가지 재앙이 산토리니 대폭발의 영향이라는 둥 중국 하나라 기록에서도 당시 폭발을 확인할 수 있다는 둥 이야기한다.   

아틀란티스에 대한 진술은 자그마치 대철학자 플라톤의 것이다. 그는 헤라클레스의 기둥 밖 어딘가에 있는 부유하고 강대했던 아틀란티스를 묘사한다. 하지만 그곳은 하룻밤 사이에 지진과 홍수가 일어나 사람들이 땅속에 묻혔으며 그 땅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플라톤은 이 얘기를 솔론에게 들었고, 솔론은 어느 이집트 신관에게 들었고, 그 이집트 신관은 그들 사이에 내려오는 이야기라고 한다.   

플라톤은 기원전 4세기 사람이다. 만약 정말로 산토리니가 아틀란티스라고 한다면, 화산 대폭발이 있고 12세기가 지난 후의 사람이다. 우리와 신라 사이의 시간 차이가 플라톤과 아틀란티스 간에 있었다. 진정 천년도 넘는 시간 동안 그 이야기는 살아남은 걸까? 어느 날 운 좋게 목숨은 건졌지만 화산 폭발로 고향이 말 그대로 사라져버린 어떤 이가 그리워하며 말한 이야기가 이집트에서 전해졌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은 고향 사람들 한 명 한 명에 대한 추억과 건물 골목골목을 이야기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이제는 흔적조차 남지 않은 어느 섬에 대해서.   

피라 마을에는 산토리니 선사박물관이 있다. 호텔에서 걸어서 조금만 걸으면 도착할 수 있는 작은 박물관이다. 그 앞에 있는 Lucky's Souvlakis라는 그리스식 패스트푸드 식당이 워낙 유명하다. 우리도 여행 기간 내내 그리스인 주인장의 수블라키 요리 솜씨를 보며 점심을 즐겼다. 말 그대로 군더더기 없는 동작의 연속이었다. 그렇게나 사람이 많은 동네인데도 불구하고 산토리니 선사박물관은 생각 외로 한적했다. 적지 않은 관광객들은 산토리니까지 와서 박물관에 가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여행사에서 보내준 여행안내서에 이 박물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화산섬인 산토리니에 오랜 세월 인간의 발전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신기해하는 관람자들이 많다.” 작은 박물관이지만, 산토리니 대폭발 이전의 아크로티리 유적지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구성에 감동할 수 있었다.   

박물관을 나서서 산토리니 거리를 돌아다니니 무언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지나가는 트럭에는 새파란 원숭이가 그려져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산토리니에 있는 브루어리 ‘블루 몽키’에서 생산하는 맥주를 운송하는 트럭이다.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삼천 년도 이전에 산토리니에 고대인은 자기 집 벽면에 파란 원숭이를 그려 넣었다. 물론 화산섬에 원숭이가 살 리가 없으니 아마도 이집트를 통해 넘어온 문화일 것이다. 마치 한국에는 사자가 살지 않지만, 불교를 통해 한국에서 예부터 용맹함의 상징으로 이곳저곳에 그리고 조각했듯 말이다. 원숭이는 아마도 이 섬에서 즐거움과 행복의 상징이 아니었을까 상상한다. 누구나 자기 집 벽화에는 솔직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담아내니까 말이다. 

산토리니 선사 박물관 갈대 벽화 @촬영

그런 눈으로 박물관을 둘러보니 아크로티리 마을의 다른 집 주인, 그가 꿈꾸었던 낙원을 그려볼 수 있었다. 박물관에는 갈댓잎이 그려진 벽화 역시 전시되어있었다. 어쩌면 그는 이집트 문화의 영향을 받아 이집트인과 비슷한 꿈을 꾸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이집트인들은 우리가 죽으면 땅 저 끝까지 갈대가 무수하게 펼쳐진 저승에 간다고 믿었다. 그 갈대숲에서 어떠한 육체적 고통도, 노동의 필요도 없다. 아마도 상업에 종사했을 집주인은 심한 육체노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출근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죽어서나 갈 낙원에서 원숭이들이 낄낄거리며 재롱을 부린다. 여성들은 춤을 추고, 남자들은 소를 뛰어넘는 묘기를 부린다. 하늘에는 제비가 날아다니고, 바다에는 문어와 물고기가 떠다닌다. 마치 시끌벅적한 축제와 같은 낙원이다. 선사시대 산토리니 인들은 그러한 낙원을 벽에 그리며 일상을 영위했다.   

선사시대는 글로 이야기를 남기지 않기 때문에,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벽화야말로 우리가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창이다. 이건 박물관의 설명이다. 여행의 다음 차례일 크레타에 있는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에서도 비슷한 벽화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시절 문명의 독특한 미술사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이들은 벽화에 위대한 신이나 영웅, 혹은 무시무시한 괴물을 그리지 않았다. 그들은 동물들과 물고기들 자신이 사는 세계를 마치 낙원처럼 그렸다.    



2.블루몽키와 APIVITA

블루몽키는 로컬 브루어리다. 잘은 모르지만, 브랜드 타깃은 아마 산토리니를 찾은 관광객들일 것이다. 그리스에서 와서 인상적인 사실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 조상의 문화적 콘텐츠를 재발굴하고 변형하여 상품으로 만들어내는데 꽤 능하다. 또한 섬마다 특색이 다른 나라여서인지 지역 콘텐츠에 기반한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물론 한국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리스는 이미 수십 년 동안 서양에서 대표적인 관광대국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제 관광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다지 잘 되어가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리스인들의 전통과 지역을 콘텐츠로 만드는 능력은 이러한 측면에서 부럽기도 하다. 한국에게는 어쩌면 미래를 생각할 때 콘텐츠의 부족이 큰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관광에 있어서 외국 관광객들의 피드백을 본 적이 있다. 그들에 따르면 한국은 서울이다. 서울 밖에서 새로운 것을 찾을 이유가 없다. 전국 어느 도시를 가든 작은 서울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는 외국인은 공항철도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반대로 지방에서는 그러다 보니 파이가 정해져 있는 국내 관광객들만 대상으로 관광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서울은 슬프게도 특색이 있는 도시가 아니다.  같은 아시아권 국가 중에서 굳이 서울을 방문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그리스에 여행 간다면 반드시 사와야 하는 상품은 화장품이라고 한다. 물론 화장품을 잘 만드는 한국에 사는 우리는 코웃음 나올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화장품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신혼여행을 통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고, 사용하게 된 브랜드가 하나 있다.

욕실의 APIVITA @촬영

그리스는 특히 자연주의 화장품에 강세를 보인다. 환경을 생각하고 자연 추출물을 사용한다는 점이 세일즈포인트인 모양이다. 게다가 그리스라는 나라와 ‘그리스 화장품’이라는 브랜드가 썩 잘 맞기도 하다. 그중에서 APIVITA라는 브랜드가 있다. 그리스 호텔의 욕실에 비치되어있는 물건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처음 사용했을 때는 갑자기 꿀 냄새가 확 풍겨와서 놀랐었다. 나중에야 생각해보니 APIVITA라는 이름부터가 라틴어로 APIS(벌) 그리고 VITA(인생)의 합성어였다.   

당연히 APIVITA 로고는 벌을 형상화했다. 하지만 사실 선사시대 유물을 형상화한 것이기도 하다. 바로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벌 두 마리가 서로 꼬리를 맞대고 있는 금 펜던트다. 유럽의 최고(最古) 문명인 미노아 초창기에 만들어진 유물로 기원전 1800년경에 만들어졌다. 당시 그들은 원시적인 상형문자를 쓰거나 선형문자 A를 사용했다. 아직 우리는 선형문자 A를 해독할 수는 없으니 글로 그들을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금 펜던트를 통해 이 선사시대 문명이 벌과 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 배가 고픈 편이다. 등장인물들이 음식을 먹을 때 감정이입을 하면서 무엇을 먹나 주의 깊게 살펴보기 때문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는 주인공들이 무엇인가를 먹을 때 꿀을 당연하게 첨가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들은 아침에 먹는 구운 빵은 물론이고, 술안주들도 당연히 꿀에 푹 찍어 먹는다. 소설의 배경이 크레타섬임을 생각할 때 그들의 꿀 사랑이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왔음을 금 펜던트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당연히 그렇기에 APIVITA 사의 주요 제품에는 꿀이 들어가 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사용하다 보니 좋은 점들이 느껴졌다. 당장 향기가 그렇다. 로션이나 크림 등이 인기 제품이라 하는데, 이유를 알 수 있겠다. 아무래도 이런 화장품을 사용할 일이 없이 살아왔지만,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집에 장만해두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역사와 전통에 기반한 마케팅이나 브랜딩이 가능할까 생각해보게 된다. 요즘 제주도를 중심으로 지역을 배경으로 한 브랜딩은 시도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멋진 일이다. 적지 않은 조직들이 저마다 멋진 로고를 가지고 있지만, 별 의미 없이 바꾸기도 한다. 전통을 중요시해야 할 지방자치단체들이 오히려 더욱 그런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동시에 마케터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 '브랜드의 헤리티지'이기도 하다. 조직 스스로 정체성을 갖추기 위해 사용하는 유산(遺産). 그런 점에서 충분히 한국에서 변화가 가능하고 이제야 시작되었다는 생각 역시 갖게 된다.   

3. 산토리니 후기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머리를 자르러 갔다. 나이가 제법 있으신 미용사분과 그리스 신혼여행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분이 말씀하셨다.   

"그리스에는 온 마을이 하얀색인 마을이 있다면서요."   

사실 하얀색으로 칠한 네모난 건물들은 키클라데스 제도 어디든 널리 퍼진 전통이다. 그래서 어느 섬에 가든 볼 수 있는 광경이긴 하다. 하지만 물론 나는 미용사분이 어디를 말씀한 것인지 알고 있다. 아마도 이아 마을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포카리스웨트 CF 촬영 장소로 유명하다. 낭떠러지 위에 쌓아 올린 하얀 건물들. 밤에 아래서 보면 도시가 절벽 위에 있는 만년설처럼 보인다. 내가 본 해질녘 이아 마을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당일에는 솔직하게 말해 관광지가 다 그렇듯이 사람이 너무 많아 지쳐버렸다. 사람이 이런 절벽 위에 어떻게 마을을 만들고 삶을 영위했는지 놀랍긴 하다. 산토리니 섬은 건조하다.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들다. 화산섬인 산토리니에서 바람이 불면 건조한 모래가 휘날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뜨거운 햇살을 피해 동굴을 팠다. 그 동굴은 지금은 분위기 좋은 카페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살인적인 물가와 넘쳐나는 사람들의 밀도는 미감(美感)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름다움이 잘 안 느껴지고, 나중에는 지쳐 아무 곳이든 쉴 수 있는 장소만 찾았다. 그래서 간 곳이 산토리니 해양 박물관이었다. 박물관 마니아로서 당연한 선택이었다.   

유럽에 가면 느끼는 점이 있다. 작은 건물 한 채에 유물 몇 점이 전부인 사설 박물관이 많다. 그곳도 그런 곳이었다. 어느 산토리니에 살던 선장이 죽은 후, 그의 소장품들과 함께 해양박물관을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한 사람당 5유로나 받는다. 굳이 관광객들도 찾지 않는 곳이었다. 나도 욕심을 버렸다. 그저 고요한 장소를 찾은 것이 좋았다. 박물관은 이아 마을의 전통적인 가옥을 개조한 곳이었고, 마당 나무 아래 앉아서 쉴 수 있었다.   

1925년 산토리니 화산 분화로 산토리니는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전까지 많은 지중해를 항해하는 선원들에게는 중간경유지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폭풍우가 치는 바다에 잠시 배를 피신시킬 수 있는 항구 정도였다. 그러던 도중 화산으로 인해서 온 유럽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일군의 무리는 화산 폭발로 위험에 빠진 섬을 구하기 위한 자선가들이었고, 다른 한쪽은 직접 폭발하는 화산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괴짜들이었다. 어느 쪽이든 그들은 산토리니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나중에 그리 주민도 많지 않은 화산섬에 1956년 지진이 발생하여 건물들이 무너졌다. 이에 섬이 관광지로서 개발되기 시작했고 지금의 우리가 아는 산토리니가 되었다.    

노을이 지는 화산섬 @촬영

그래서 산토리니에는 산토리니 사람이 없다는 얘기도 한다. 관광지 산토리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아테네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성수기에는 산토리니에서 일하고 겨울에는 모두 아테네로 돌아갔다. 그런 점에서 산토리니는 테마파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요트를 타고 ABBA 노래를 듣고 있노라니 그 멋에 취할 수 있었다. 옛 아틀란티스 전설의 원천이 되었던 화산을 바라보며 감상할 수도 있었다.   

화산섬을 구경하다가 고개를 왼쪽으로 좀 더 틀어 남쪽을 바라보면, 수호신처럼 둘러싼 섬들 너머로 남쪽 바다가 보인다. 그 너머에는 산토리니와 불가분의 관계인 크레타가 있다. 저 바다를 건너 사람들은 온갖 이유로 이 섬을 찾았을 것이다. 우리는 반대로 절벽을 타고 내려가 항구에서 페리를 타고 크레타로 갈 준비를 했다. 절벽을 염소처럼 타서 이동하는 이들의 운전 솜씨에 감탄하다가, 연착된 페리에 분노하기도 했다. 신혼여행은 미코노스와 산토리니를 지나 이라클리온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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