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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현 Sep 01. 2022

<노스맨> - 신화와 기술의 기묘한 대비

The Northman, 2022 - 로버트 에거스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전>, <미드소마>의 ‘아리 에스터’ 감독, <놉>, <겟 아웃>의 ‘조던 필’ 감독과 더불어 현대 호러 영화의 삼대장이라고 불리는 감독이 있다. 바로 <더 위치>와 <라이트하우스>의 ‘로버트 에거스’ 감독이다. 물론 삼대장과 같은 호칭은 공식적이지 않고 일부 개인이나 매체의 주관적인 평 일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호칭에 매우 공감하고 더 나아가 호러라는 장르를 빼고 현대 장르 영화를 이끌어갈 차세대 트로이카라고 생각한다. 그 배경에는 영화가 담고 있는 참신한 소재, 그리고 그것을 표현해나가는 뛰어난 연출력이 뒷받침되고 있다. 아리 에스터의 <미드소마>와 조던 필의 <놉>, <겟 아웃>은 브런치에 글을 작성해 올린 적이 있고 그 글 안에 각각의 감독들이 어떤 영화를 만들고 개인적으로 어떻게 그 영화를 해석했는지 언급했었다. 따라서 오늘은 두 감독 말고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이야기를 조금 하면서 서두를 열어볼까 한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은 <더 위치>라는 영화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필자도 그 영화를 봤다. 그리고 두 번째로 본 것이 <노스맨>이다. 고작 두 편의 영화이지만 로버트 에거스의 공통의 특징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두 영화 모두 차근차근 서사를 구축하는 빌드업이 뛰어난 데 서사 자체만 놓고 보면 다소 정적이고 때로는 단조롭기까지 하다. 로버트 에거스는 이런 서사에 강력한 생명력을 부여하고 그를 통해 몰입과 충격을 선사한다. 그 생명력은 ‘원시’의 제의적 성격을 띤 주술 장면들에서 온다. 신비스럽고 몽환적이며 강렬한 장면들은 마치 관객의 감각마저 마취시키는 듯하다. 주술사(마녀)의 묘사도 인상적이고 이들이 단지 기능적으로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의식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두 영화의 차이가 있다면 <더 위치>는 공포/미스터리 장르 영화고 <노스맨>은 액션/모험 장르 영화라는 것이다. 또한 <노스맨>은 북유럽 신화 속에서 복수극의 형태를 띠고 있기도 한 영화다. 그러면서도 앞서 설명한 로버트 에거스의 연출이 잘 녹아 있다.     


 <노스맨>은 삼촌 ‘피욀니르(클레스 방)’의 배신으로 아버지 ‘아우르반딜 왕(에단 호크)’을 잃은 왕자 ‘암레트(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말 그대로 와신상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유럽의 대자연 속에서 둥둥 울리는 북소리와 전사의 고함을 기반으로 한 음악이 시종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앞서 언급했듯이 복수극의 서사는 단조롭고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이를 보여 주는 연출은 생명력이 넘쳐난다. 영화의 초반 암레트가 강하게 성장하길 바란 아우르반딜 왕은 그를 주술사 ‘헤이미르(윌렘 대포)’에게 데려가 마치 늑대인 양 행동하는 애니미즘적 제의를 벌인다. 나중에 성장한 암레트는 그르렁거림 만으로도 사나운 개를 쫓아내고 울부짖음으로 늑대와 여우 등 ‘개’ 과의 동물들을 통제하기도 한다. 또한,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제의도 등장하고 이러한 과정엔 항상 주술사가 빠지지 않는다. 주술사 외에 초월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마녀도 등장한다. <더 위치>처럼 마녀와 주술이 등장하지만, <노스맨> 여기에 더해 가장 중요한 한 가지 관점을 더 고려해야 한다. 바로 북유럽 신화이다. 애니미즘적 제의에서 호랑이나 사자가 아닌 늑대를 따라 한 것도, 초월적인 존재들이 암레트 앞에 등장하는 것도 신화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북유럽 신화 속에서 늑대란 매우 강력한 존재이다. 북유럽 신화의 종말의 날인 ‘라그나로크’ 때 거대한 늑대인 ‘펜리르’가 북유럽 최고 신인 ‘오딘’을 한입에 잡아먹은 내용은 유명하다. 비교적 추운 지방에 서식하는 최고 포식자가 늑대였다는 현실적인 이유는 차치하고 오랫동안 북유럽 지방에서 늑대는 배제할 수 없는 대상임을 신화를 통해 알 수 있다. 단순히 무서운 괴물이 아니라 늑대를 일종의 ‘토템’으로 여기고 숭배한 종족들도 있었다.     


 늑대 외에도 신화적인 요소들은 많이 등장한다. 일단 주인공 암레트는 오딘을 믿는다. 그래서 자신이 죽으면 발키리의 인도를 받아 전사들의 궁전인 발할라로 들어갈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그를 인도하는 발키리의 꿈을 꾼다. 이외에도 죽은 사람의 영혼이 까마귀에 깃드는 것과 밤에만 뽑을 수 있는 검, 정해진 운명은 바꿀 수 없고 따라야 한다는 운명론까지 모두 신화와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북유럽 신화에 조예가 깊었다면 그만큼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을 영화인데, 그렇지 못해 단편적인 사실만 받아들이는 점이 아쉽다. 하지만 자세한 신화를 몰라도 정해진 운명을 따라야 하는 개인의 서사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영화의 제목이 ‘암레트’가 아니라 ‘노스맨’인 것도 이와 연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영화는 얼핏 보면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암레트의 영웅 설화 혹 신화처럼 보이지만, 암레트를 부각하려는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는 운명이라는 신화 속에서 그것을 따르는 것 외에는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는 일개 개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신화 속에선 복수의 왕자 ‘암레트’도 그냥 북쪽 남자 아무개일 뿐이다.     


 더불어 신화라는 것은 그 단어 자체만으로도 아우라가 있지만, 사실은 원시적이고 때로는 야만적인 믿음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고대인은 불과 비를 내려주는 것도 신이고 몸이 아프거나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신이라고 믿었다. 이런 믿음과 공포 등이 이야기와 만나 전해져 내려온 것이 신화다. 하지만 현대인은 불이 붙고 비가 내리는 과정을 과학적인 원리로 설명할 수 있고 몸의 아픔과 건강은 의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종교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우제를 하고 때로는 인간을 제물로 바치기까지 했던 원시의 야만적 신화와 현대의 종교를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이러한 야만적인 신화가 거대한 스크린과 웅장한 사운드 속에서 재현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요즘의 영화 영상은 그야말로 최신 기술이 집약된 매체가 아닌가?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내용이 최신의 기술과 만나 기묘한 대비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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