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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밍고 Dec 28. 2019

접영을 하고 싶어요

접영, 수영의 마스터?!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수영장에 가지 않으면 온 몸에 가시가 돋는 병이 있다. 대개 수력 3개월부터 발병하는데, 그때 되면 물에서 뜰 수 있고 적어도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 나는 이제 수력이 만으로 3년이 넘어가는 스위머임에도 여전히 그 병을 앓고 있다.


처음에 수영을 배울 때 목표는 '저 끝 레인의 상급자들처럼 접영을 멋지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초급자레인과 출입문과 가장 먼 곳에 있는 상급자레인은 상당한 거리감이 있다. 그건 초급자에게 '야, 너 하다가 좀 안 되면 금방 저 문으로 달아날 거지?' 같은 뉘앙스를 주는데 난 또 그렇게 나를 밟아뭉개는 발언에는 지렁이처럼 꿈틀하는 사람이어서 정말 초창기부터 열심히 수영을 다녔다. 


6개월 정도 수영을 배우고 중급쯤 다다랐을 때 나는 바로 옆 레인에 있는 상급자들을 좀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됐다. 그들의 자유형, 배영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접영을 할 줄 안다는 차이가 있었다.





나는 8회짜리 개인강습을 끊었다. 강사는 훤칠하게 잘생긴 대학생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내게 뭘 배우고 싶냐고 물었다. "접영만 좀 집중적으로 하고 싶어요." 선생님은 웃었다. "접영이 멋있죠. 근데 접영만 하기는 힘들 텐데요" 선생님은 접영이 체력 소모가 많은 영법이라며 내게 노파심ㅡ그가 노파는 아니었으나 먼저 배운 사람 입장에서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ㅡ에서 말했다. 난  "그래도 하고 싶어요."라고 내 주장을 펼쳤다. 세상에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세상에서 접영 하나 배우는 것도 내 맘대로 하지 못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특훈 아닌 특훈을 받았다. 접영 웨이브부터 시작해 리듬을 맞춰 한팔 접영하는 법을 배우고 감을 좀 잡자 한팔-한팔-양팔 순으로 접영하는 법을 배웠다. 이를 악물고 곧잘 하는 나를 본 선생님은 무척 놀라시며 "오, 체력이 진짜 좋으신데요? 잘하고 계세요." 원래 수강생들 놀리기 좋아하고 허허실실 웃기만 했던 (약간은 야매 같던) 그 어린 선생님은 내게서 자신의 체대 입시 시절의 그 간절한 모습을 보았던 걸까. 그는 날 태릉선수촌ㅡ아 요샌 진천이지ㅡ에 보낼 것처럼 수영을 시켰다. 


그러나 접영은 그렇게 하는 영법이 아니었다. 실제 접영 경기에서도 100m, 200m 종목으로 단거리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체력과 유연성이 받쳐줘야 하는 영법이다. 나는 좌식생활자였고 수영 외에 따로 하는 근력운동도 없었다. 당연히 접영을 오래 할 수가 없는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는 선생님에게 "죽을 것 같아요. 다른 거 해요." 하며 내가 다른 영법을 하자고 애걸복걸했다. 접영은 잠시 접어두고 그동안 접영에 몰두하느라 게을리했던 자유형, 배영, 평영의 동작을 교정 받았다. 그 강의 덕에 접영이란 것을 '할 줄은 알게' 되었지만 사실 접영에 물렸다(Sick and tired). 





그 개인강습이 종료된 이후 한동안 수영을 다니지 않았다. 물 근처에만 가도 접영 알러지가 생기는 것 같았다. 접영이 영영 해결하지 못할 숙제처럼 느껴지고 온몸의 근육이 뻐근해졌다. 일주일만 쉬어도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게 수영이다. 수영을 안 하면 안 한 기간에 비례해 귀신같이 체력이 반토막 난다. 물에 들어가면 힘드니까 물과 더 멀어지고, 그렇게 아예 수영장에 오지 않는 참사로까지 이어진다. 그렇게 난 6개월을 쉬었다.


그러다 회사에서 부서 이동이 있고, 정말 지랄뱅이 영감탱이를 만나 개고생을 했다. 나에 대한 폭언은 아니었지만 늘상 사무실에는 욕설이 난무했고, 가끔 나도 가서 혼나는 경우가 있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의 맘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ㅡ애초에 재량이라는 것은 없었다ㅡ 다 욕을 먹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직원들은 학습된 무기력감에 빠져서 시키는 일만 했다. 그리고 일하는 표를 내기 위해 밤새서 야근을 했다. 운동은 안 하고 매일 석식은 꼬박꼬박 챙겨 먹으니 다들 배 나온 아저씨화 돼 갔다.


나도 자연스럽게 거기 동화되던 중이었다. 그러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어가 있을까 생각했다. 매일 고정된 시간에,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 때마침 강습 신청해둔 50m 풀 수영장에서 "수강 대상 순번이 돌아왔으니 레벨 테스트를 하자"고 했다. 나는 일 때문에 바빠서 그동안 못 가다가 레벨테스트 마지막 날 수영장이 문닫기 직전에 찾아갔다. "좀 빨리 오시지. 내일 다른 수강 대상자한테 문자 보내기로 돼 있었는데..." 하는 섭섭한 말을 하던 수영장 직원이 "안에 라이프가드한테 얘기하시고 레벨 테스트 받으세요."라고 선심쓰는 듯 내게 말했다.


나는 라이프가드가 해보라는 대로 자유형, 배영, 평영을 연달아 선보이며 내 기량을 있는 대로 펼쳤고ㅡ그 자리에서 그는 내게 접영을 할 수 있는지 묻지조차 않았다ㅡ 결국 나는 다시 중급반으로 배정되었다. 이후로부터 나는 정말 차근차근 새로 배우는 사람처럼 다시 수영을 했다. 야근을 할 일이 있으면 아침에 일찍 나와서 해서 일찍 퇴근을 했고, 주말에 할 수 있는 일이면 차라리 주말로 미뤘다. 평일 저녁은 온전히 내게 '수영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단 하나의 시간이었기에 나는 강박적으로 수영을 했다. 동료 스위머들ㅡ같은 레인 사람들ㅡ조차 놀랄 정도였다. 그들은 늘 내게 "안 힘들어요?"나 "잘하시니까 앞으로 가세요" 라는 말을 하며 알은체를 해왔다. 업무와 관계 없는 사람들과 서로의 수영 영법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강사님의 교수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는 게 꽤 즐거웠던 모양인지 어느 순간 나를 보니 수영장에 가면서 악셀을 신나게 밟고 있었다.





새로 들어간 중급반에서 접영도 새로 배웠다. 물론 나는 특훈을 한 이력이 있기에 접영의 기초적인 매커니즘을 알았다. 사람들은 내가 처음하는 동작임에도 잘하는 줄로 알고 "수영천재라 그렇다"고 추어올려 주었으나 사실이 아니었음을 이 지면을 빌려 고백한다. 아무튼 나는 우리 레인의 접영 천재가 되었고, 국가대표로 발탁되듯 강사님 손에 꼽혀 상급반으로 올라갔다.


나는 상급반이 단순히 접영을 가르쳐 주고 그저 강하게 체력 특훈을 하는 반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반은 접영을 가르쳐주는 반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존에 배운 영법을 다듬는 수업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물을 잡아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저항을 줄일 수 있을지, 그리고 더 힘을 들이지 않고 오래 헤엄칠 수 있을지 등과 같은 다소 물리학적인 부분을 다루는 반이었다. 


상급반에서 수영을 하며 폐활량이 기존의 200%는 늘었고ㅡ건강검진 결과를 토대로 보면 그러하다ㅡ, 더 오래 헤엄칠 수 있게 됐다. 정확한 수치로 말하자면, 적어도 쉬지 않고 1,500m이상을 헤엄칠 수 있게 됐다. 모든 영법을 올바르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고, 스타트와 턴을 하며 아마추어 선수라고 말할 수준까지는 이르게 되었다.






요즘도 수영에 미쳐있고, 해외여행을 가도 수영, 호텔에 놀러 가도 수영, 다른 지역에 놀러 가도 그 지역의 수영장을 찾아가 본다. 이런 내가 잠시 일 때문에 한 달여 간 수영을 전혀 못 했던 일이 있다. 그때 내 상태는 최악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위엄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지켜진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정도 수준은 지켜져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생각한다. 아예 주변에 수영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빈곤과 기아에 허덕일 정도는 아닌 국가에 살고 있으니까.


수영할 때 나는 비로소 자유롭고, 나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느끼고 있는 이 즐거움을 다른 사람도 알았으면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수영을 열심히 전도한다. 그중에 한둘은 수영에 입문해서 나와 기록을 다투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우리에게 일이 아닌 또다른 즐거움이 있다는 것은.


그리고 나의 대학원 연구 주제도 그것이 될 것이다. 수영장, 공원, 도서관 같은 생활 SOC시설의 보급, 그에 따른 국민의 삶의 질 향상. 수영을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연구다. 


아무튼 나는 예전부터 접영을 무지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접영은 결말이 아니었다. 접영은 과정이었고, 수영에는 결말이 없더라. 끊임없는 자기계발이지. 기록단축, 영법교정, 더 먼 거리를 헤엄치는 것, 다양한 수영장에 가보는 것 등. 이 즐거움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고, 내 연구가 거기에 보탬이 된다면 더없이 좋겠다. 


음, 그래서 내일은 IM(접영-배영-평영-자유형을 순서대로 하는 것)으로 기록단축을 해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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