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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리썬 윤정샘 Apr 14. 2020

아들 셋이 어때서

편견 가득한 세상에서 엄마의 자존 키우기

  저녁노을이 예쁘게 물들 무렵, 오랜만에 온 가족이 다 함께 동네 산책을 나섰다. 아이들과 잡기 놀이도 하고 달리기 경주도 하고 보도블록 색깔별로 콩콩 뛰며 캥거루 놀이도 하고, 그러다 보니 나까지도 덩달아 신이 난다.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서늘한 저녁 공기, 거기에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더해져서 하루 동안 고되었던 마음들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아이들도 나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몸을 많이 움직여서인지 첫째가 출출하다며 새우 김밥이 먹고 싶다 하여 가까운 김밥 가게에 들렀다. 그런데 김밥을 말고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깜짝 놀라시며,

  “엄마야~ 아들만 셋이에요? 아이고 엄마 정말 싫겠다.” 하시는 거다.

그랬더니 옆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든든하니 좋구먼.” 하며 기분 좋은 말씀을 해주셨는데,

  “아이고 좋기는 뭐가 좋아요. 장가보내면 그날로 장모 아들 되는 건데. 요새는 딸 없으면 안 돼요.” 하시는 게 아닌가. 그 말투며 표정까지, 정말 너무 싫겠다는 그 표정이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엄마 싫겠다.”라는 소리를 우리 아이들이 들었으면 어쩌나, 저 말과 표정을 다 이해했으면 어쩌나 염려스럽기도 했다. 아들 셋 함께 출동하면 워낙에 신기하다는 눈빛, 안쓰럽다는 눈빛 들을 많이 보내와서 내 마음도 어지간히 단련된 지라, 웬만해서는 웃고 넘기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기분 나쁜 감정이 쉬이 가시질 않았다.


  “아들이 셋이라서 얼마나 좋은데요. 자기들끼리 친구처럼 잘 어울려 놀고, 옷값 걱정 덜고, 장가보내고 나면 엄마는 더욱더 자유로워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그때까지 자식과 연결되어 있으려는 건 욕심이잖아요. 저는 지금이 좋아요. 형제들끼리 잘 노는 모습만 봐도 얼마나 마음이 꽉 차는데요. 충분히 행복하고 감사해요.”라고 말하지 못하고 나온 것을 후회했다. 아이들 앞에서 엄마 마음을 좀 더 명확하게 표현하는 걸 보여줬어야 했는데, 두고두고 아쉬운 마음이다.


   물론 나라고 해서 처음부터 아들 셋을 바라고 있었던 건 결코 아니다. 아이를 낳기 전, 내가 꿈꾸는 육아의 장면 속에는 항상 딸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셋째가 뱃속에 꼬물꼬물 자라기 시작했을 때에도 셋째만큼은 딸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성별을 알기 전까지 거의 날마다 꿈에서 딸 낳는 꿈을 꿀 정도였으니, 그 간절함이 예상될 법도 하다. 하지만 아이의 성별이라는 것은 결코 부모 마음대로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님을.


  나는 셋째가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 순간부터, 그동안 가졌던 딸에 대한 기대와 미련을 단 한 톨도 남김없이 모두 내다 버렸다. 그 후로 신기하리만치 딸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기대와 미련이라는 것은 0.1%의 가능성이라도 있을 때 생기는 것이지, 가능성이 사라진 곳에 기대와 미련이라는 것이 남아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비록 상상치도 못했던 일이기는 하지만 ‘아들 셋 엄마’가 된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자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졌다. 이 아이들의 존재 그 자체가 소중한 것이지 딸이건 아들이건 그 소중함이 달라지는 건 결코 아니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러니 아들만 둘이건 셋이건, 엄마들은 정말 괜찮다. 다들 본인들의 삶에 만족하며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왜 옆에서 이 엄마들을 가만히 두지 못해 안달이란 말인가.

 - 아이가 하나면, "외동은 외롭다. 형제자매가 있어야지."

 - 아들만 둘이면, "엄마는 딸이 있어야 하는데."

 - 딸만 둘이면, "아들 하나는 있어야 든든하지."

 - 셋 이상이면, "자식 욕심이 많구나. 키우기 힘들어서 어쩌니."

 거기에다 아들 셋이거나 딸 셋이면 온통 측은한 관심을 쏘아 보내는 이상한 세상 속에 살고 있으니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각자의 상자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십 대가 살아야 할 상자, 삼십 대가 살아야 할 상자, 사십 대가 살아야 할 상자. 그 상자의 바깥으로 벗어나면 매년 명절마다 고문을 당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측은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실패한 인생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죠.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자존을 싹 틔우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바깥이 아닌 안에 점을 찍고 나의 자존을 먼저 세우세요.

- 박웅현, 여덟 단어 - 』


   딸 하나, 아들 하나 골고루 있어야 금메달이라는 낡은 프레임 안에 점을 찍어두었다면, 아들 셋을 키우는 나의 목메달 삶은 아마 더 많이 고단했을 것이다. 하소연과 신세 한탄으로 소중한 시간을 날려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삼형제가 있는 이곳에 나의 점을 찍었고, 삼형제의 엄마라는 사실이 충분히 자랑스럽고 좋다. 툭하면 엄마를 껴안고 뽀뽀하고 잠잘 때마다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아이들, 나에게 그저 이 천사 같은 아이들이 와 주었다는 사실이 감사할 뿐, 성별이 어떠했든 아이 수가 어떠했든 그 마음이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건 변하지 않을 진리다.



  보고만 있어도 든든하고 예쁜 우리 삼형제. 장모님 사랑 듬뿍 받는 멋진 아들들로 자라날 테니, 아낌없이 사랑 주는 따뜻한 남자로 잘 자라날 테니, 나 또한 아들 셋 엄마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가 되어줄 테니, 부디 세상의 편견 속에서 더 이상 자식들 성별로 상처 주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아들 셋이 어때서! 딸 없으면 어때서! 우리는 지금 이대로 충분히 행복하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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