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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리썬 윤정샘 Apr 19. 2020

아들 셋의 엄마라서 슬픈 날

어디에선가 전전긍긍하고 있을 형제 다둥맘을 응원하며

  

   며칠 전 브런치에 층간소음 관련 글을 한 편 올렸다. 누군가에 대하여 평가를 하는 글도, 비난을 하는 글도,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식의 주장 글도 아니었다. 그저 형제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만한 고충과 힘겨움 들을 나의 경험 날것 그대로 가감 없이 쓴 것, 그것뿐이었다. 그 경험을 기록해놓고 싶었고 그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와,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하고 공감을 얻어가면 충분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글을 올리자마자 난리가 났다. 내 글이 다음 메인에 떠서 10만에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하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혔고, 그만큼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내 글에 댓글을 달았다. 공감 1000% 라며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도 계셨고 힘내라는 응원의 말씀을 남겨주시는 분들도 많이 계셨지만, 일부는 상당히 공격적으로 비난 가득한 글을 남겨놓기도 했다.


  아래층의 고통을 너무 쉽게 보지 마라, 너도 한번 똑같이 당해봐라, 구차한 변명으로 위로받으려 하지 마라, 그 어떤 노력을 했다 한들 뛰었다는 사실은 팩트다, 집은 뛰는 공간이 아니다, 아랫집은 조용히 지낼 권리가 있다, 1층 소음도 위층에 다 들리니 1층도 답은 아니다 등 난생처음 받아보는 비난의 댓글에 적잖이 몸살을 앓았다.

 

   나라고 왜 모르겠는가. 아래층에서 소음으로 겪는 고통을. 나도 20년이 넘도록 아파트에서 살아왔고, 위층에서 뛰는 소리, 싸우는 소리, 운동 머신 소리, 절굿공이 소리, 공사하는 소리 등등 수많은 소음에도 시달려봤다. 그럴 때 나의 선택은 ‘맞서기’가 아닌 ‘피하기’였다. 아이를 재우고 있는데 윗집 소음이 들리면 아이 귀를 막아주며 아이를 재웠고, 그마저도 안되면 아예 유모차를 끌고 밖으로 나가는 방법을 택했다. 대개 1시간 안에는 소음이 끝났다. 1시간 정도만 견디면 다 끝날 거야, 하고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단 한 번도 인터폰으로 항의를 해본 적은 없다. 그럴만한 용기도 없었을뿐더러 아파트에 사는 이상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지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에게도 그런 이해의 온정을 베풀어주는 이웃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형제를 키우다 보면 부모가 그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도 통제할 수 없는 순간이 분명히 온다.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서 정말이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보았다. 한겨울에 만삭의 몸으로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저녁 늦도록 동네를 배회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힘들고 서러웠지만 수많은 시간을 그렇게 보냈, 저녁 8시면 아이들을 안방으로 끌고 들어가 잠이 들 때까지 책을 읽어주었다.


  내가 만약 아랫집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더라면, 아랫집에서 겪을 고통을 과소평가했더라면, 그런 노력들은 아예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 피해를 주는 것이 너무도 싫었기에 노력할 수 있었다.


  하지만 3세 이하의 아이는 발달이론 상으로도 규칙 습득이 어려운 바, 두 살짜리 아이에게는 그런 노력들도 허사일 때가 많았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앞서는 아이, 규칙보다 본능이 앞서는 아이의 뛰고자 하는 그 첫 발걸음을 내가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떤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집에 있는 아이가 전혀 뛰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그 아이가 아프거나 묶여있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고.


  나에게 아이를 묶어둘 용기는 없었기에 분명 어느 정도의 소음은 발생했으리라는 것, 그건 충분히 인정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뛰도록 그냥 내버려 둔 적은 결코 없었으며, 아이들에게도 뛰면 아랫집에 피해를 준다는 점을 정말로 수도 없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이야기하고 교육시켰다. 해도 해도 안되어 결국엔 이사까지 했다. 그런 점들을 글로 모조리 남겼다. 그런데도 날 선 비난의 댓글을 남기신 분들은 내 글의 어떤 점이 거슬렸던 것일까?


  내가 ‘아이 키우는 집이 다 그렇지. 그 정도도 못 참아요?’하고 안하무인격으로 나간 것도 아니고, 아랫집의 항의를 무시한 것도 아니었는데, 도대체 왜 나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냔 말이다. 비난의 댓글을 적어준 분들의 요지는 그거 하나다. 당신이 어떤 노력을 했건 말건 피해를 준 가해자인 건 엄연한 사실이라는 것. 그 사실을 미화시키지 말라는 것. 집에서는 아이가 어리건 말 건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뛰어서는 안 되며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


  물론 모두 맞는 말이다. 부인할 생각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들은 이웃에게 단 한 번의 피해도 주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지, 앞으로도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자신할 수 있는지. 자신의 자녀가 이다음에 아들 셋을 낳아 본인의 집에 수시로 놀러 오면 그땐 어떻게 감당하시려는지. 게다가 언제라도 히스테리적 이웃을 만나, 본인이 대낮에 청소기 한 번만 돌려도 인터폰이 울릴 그 날이 오면 그때는 어떻게 대처하시려는지.


  1층으로 이사 오기 전, 우리 집에 수도 없이 인터폰을 울렸던 집의 아래층 들에게 그 집은 조용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아니라고 했다. 아이들 뛰는 소리가 들리지만 그러려니 하며 참아 주신다 했다. 인터폰을 한 번도 받아보지 않은 우리 아랫집 사람들은 본인들이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를 것이다. 그 아랫집의 이해와 배려 덕분에 본인들이 얼마나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어느 집이라도 완벽하게 조용할 수는 없으며, 우리는 아파트에 살아가는 있는 이상 누구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을 동시에 겪고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너도 당해봐라는 식의 날 선 비난들, 그렇게 이웃에 대한 배려를 주장하는 분들에게서 글쓴이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음이 참으로 안타깝고 씁쓸하다. 정말로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댓글을 결코 그런 방법으로 남기지 않을 것이다. 글을 더 꼼꼼히 읽어보고 맥락을 파악하여, 보다 정중한 방법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것이다.


 같은 글을 보고도 반응이 이처럼 달라질 수 있는 것을 보면, 역시 반응과 해석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의 틀을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같은 소음에도 조금만 소리가 들릴라치면 인터폰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이 키우는 집이 다 그렇지. 우리도 아이키워봐서 알잖아. 우리는 둔하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아.” 하며 너털웃음 지어 보이시는 분들도 분명히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어 이사한 지 9개월 만에 1층으로의 이사를 결심했다고 다. 그리고 이사를 한 후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또 누군가가 그런다. 1층 소음 위로 다 올라가니 1층도 답이 아니라고. 위층도 엄청 참고 있을 거라고.


  쫓기듯 1층으로 와 이제야 행복을 찾았다 생각했는데, 이제는 위층에 피해를 주는 가해자라며 손가락질을 한다. 낭떠러지 앞에 몰린 기분, 그들은 알까? 우리 형제들은 이제 어디로 가서 살아야 할까? 아들 형제들이 여기저기서 이렇게 천덕꾸러기가 될 줄은, 형제를 낳기 전까지는 미처 몰랐다. 그들도 형제를 낳아 키워보았다면 과연 이런 이야기들을 쉽게 할 수 있었을까.


 아들 셋 가족들 모아 집성촌이라도 만들어야 할까 보다. 그곳에서는 아이들이 아무리 뛰고 떠들어도, “허허 이 정도쯤은 약과죠~” 하며 서로 너털웃음 지어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면 또 누군가는 날 선 말투로 그러겠지. “꼭 그러세요. 그것만이 답이네요.” 하고 말이다.


  아들 셋의 엄마라서 참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는데,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어르신들도 새댁이 큰일 한다며 기특하다고 칭찬 많이 해주셨는데, 완전히 틀렸다. 겪어보지 않은 경험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세상, 과정보다는 오직 결과만 보며 배려 없는 비난을 퍼부어대는 세상, 이래서 우리나라의 저출산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나 보다. 밖에서는 측은한 시선을 견뎌야 하고 안에서는 잠재적 죄인으로 살아야 하는 형제 다둥맘들. 세상의 손가락질 그 뒤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을 엄마들을 응원한다. 우리 아들들도 이 땅에 온 이유가 분명히 있을 텐데, 어쩌다 이렇게 천덕꾸러기가 되었을까. 어쩐지 참 슬픈 날이다.




* 그래도 이렇게 힘나는 댓글 달아주시고, 배려와 공감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여전히 세상은  참 아름답다는 걸 느낍니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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