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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리썬 윤정샘 May 02. 2020

아이의 아픔 뒤에 비로소 알게 된 것들

엄마, 삶에 눈 뜨다.

어느덧 훈이 수술 날이다. 훈이가 잠에서 깨어 얼마 지나지 않은 이른 시간, 수술실로 이송하는 침대가 입원실로 들어왔다. 에휴, 조금만 더 늦게 오시지... 잠에서 깨자마자 수술실로 가야 하는 아이가 무척이나 안쓰러웠다. 훈이가 많이 무서워해서, 아빠가 이동 침대에 올라타 훈이를 안고 함께 수술 대기실로 향했다. 수술 대기실에는 훈이가 제일 먼저 도착했다. 그리고 어느덧 8개의 침대가 수술 대기실에 가득 찼다. 그중에는 공갈 젖꼭지를 물고 있는, 아주 어린 아기가 둘이나 있었다. 훈이를 수술 대기실에 데려갈 때도 잘 참았던 눈물이 그 아기들을 보자 참기가 힘들어졌다. 7살 훈이가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도 이렇게나 마음이 아픈데, 저렇게 어린 아가를 수술실에 들여보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오죽할까. 앳된 젊은 엄마는 애써 씩씩한 미소를 보이고, 할머니는 뒤에서 숨죽여 눈물을 닦으셨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목이 메고 눈물이 나서, 훈이 앞에서 눈물을 참느라 혼이 났다.



  훈이는 수술실에서 5시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다. 아주 애가 탄 우리 부부는 계속 수술실 앞을 서성거렸다. 회복실로 갔다는 소식의 문자만 하염없이 기다리며 수술실 앞에 서 있다가, 아이를 기다리는 다른 두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병원 처음이시죠? 저는 여기서 벌써 3번째 수술이라 그냥 덤덤하게 기다려요 하하."


 "저는 병원 앞에 나가서 화장품도 사 오고 먹을거리들 장도 보고 왔네요."


  두 분 다 서울대병원에서 몇 차례의 수술을 경험해보신 분들이었다. 한 분은 속눈썹을 진하게 붙이고 예쁜 원피스를 입고 계셨고, 다른 한 분은 머리에 고운 꽃무늬 두건을 두르고 계셨다. 예쁘게 꾸미고 계신 분은 말씀도 워낙 밝게 잘하셔서 그저 가벼운 수술을 하는 것이려니 생각했고, 머리에 두건을 두른 어머니는 아이 간호 때문에 머리를 감지 못해 모자 대신 쓰고 계신 것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데 알고 보니 한 분은 아이가 림프종.. 그리고 다른 한 분은 본인이 한 달 전에 유방암 수술을 하셔서 두건을 쓰고 계셨던 것...



  우리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있음에도 두 분의 표정은 제법 평안해 보였다. 어쩌면 아픔을 겪어왔던 그 세월이 그들을 그만큼이나 단련시켜 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분들도 처음에는 울기도 많이 울고 밥도 못 먹으며 그렇게 수술실 앞을 지키셨다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고. 그래 봐야 마음만 힘들고 애들 볼 힘도 나지 않더라고. 이렇게 꾸미기도 하고 먹고 싶은 것도 먹으면서 그렇게 그 시간을 견뎌내는 게 훨씬 더 낫더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느덧 훈이는 회복실로 옮겨갔고, 한 시간쯤 뒤에 다시 병실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런데 아침에 수술 대기실에서 만났던 어린 아기의 할머니께서 여태 걱정스러운 얼굴로 수술실 앞을 서성이고 계셨다. 훈이가 수술실에서 회복실로 옮겨가고 또 회복실에서 병실로 옮겨가는 7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 공갈 젖꼭지의 아기는 여전히 수술실에 있다고 했다. "먼저 올라갈게요. 잘 될 거예요." 하며 인사를 나누고 병실로 가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겁던지. 7살 훈이도 5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느라 입술이 터질 듯 부어올랐는데, 그 아기는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뒤로 병원에서 그 아기를 보지는 못했는데 꼭 수술이 잘 되어서 아기가 기기 시작하고 걷기 시작할 때의 기쁨을 그 부모님께서도 꼭 누려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게 될 것이다.




  사실 지방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우리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아주 심각한 축에 속했었다. 옆 침대의 엄마가 훈이 어디가 아픈 거냐고 물으셨을 때 “척추에 종양이 있대요.” 하면서 나는 울먹이고 그 엄마는 나를 토닥여주셨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아이들도 대부분 그리 무겁지 않은 일로 입원한 듯 보였다. 멀쩡하게 잘 걸어 다니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왜 우리에게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이 생겼을까, 때로는 그 상황이 참 원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서울대병원에 가보니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하루에 소아암 아이들을 몇 번이나 마주치고, 온갖 기계장치를 달고 있는 갓난아기들을 수도 없이 만난다. 갓난아기의 엄마들은 분유 젖병을 세숫대야에 모아두었다가 휴게실 개수대에서 그것들을 씻는다. 보호자 식은 비급여로 한 끼에 만 원씩이나 해서 엄두도 못 내니, 날마다 컵밥과 김으로 끼니를 때우며 아이들을 돌본다. 아기띠도 할 수 없는 갓난아기를 안고 링거 줄 가득 연결된 폴대를 잡고서 병원 복도를 서성이며 자장가를 불러준다. 집에 있는 다른 형제들과 영상 통화하는 모습들도 심심치 않게 본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 가족들과 생이별한 상태로 힘겹게 지내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내가 서울대병원에 직접 입원해보지 않았다면 아마 영영 모르고 살아갔을 것이다.

 



 우리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누려왔던 일들.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서 아이를 안아주고 뽀뽀를 하고, 젖을 먹이고, 내 집에서 편안하게 젖병을 씻어 소독하고,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기어 다니는 아이들 쫓아다니고, 걸음마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손뼉 치고, 그 모든 것들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나는 병원에서 뼈저리게 느끼고 배웠다.



 세 아이를 키우는 동안 한 번도 아이들이 병원에 입원해 본 적이 없었고, 그 흔한 독감 한번 걸려보지 않았고, 만 원 이상의 병원비를 결제해본 적도 없었기에, 나는 하마터면 내 아이들의 건강에 대해서도 자만할 뻔했다. 내가 잘 키웠기에 아이들이 이만큼 아프지 않고 잘 자라고 있는 거라며 자부심을 갖고 살아갈 뻔했다. 그런 마음가짐 자체가 아픈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지 그때는 몰랐다. 아이가 아플 때 엄마를 힘들게 짓누르는 것은 '내가 잘못해서 이 아이가 아픈 것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과, '내가 조금 더 신경 쓰고 더 잘 보았다면, 아이가 아프지 않고 조금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미련이다. 어쩌면 그러한 자책과 후회가, 아픈 아이를 바라보아야 하는 찢어지는 가슴보다도 더 엄마를 괴롭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내 아이가 진짜로 아파보기 전까지는 차마 알지 못했다.



  훈이를 임신했던 그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유를 찾으려 하고 병원에 좀 더 일찍 데려가지 않은 나를 질책하는, 그러한 마음들로 너무나 괴롭던 그때, 나를 일으켜준 한마디는 "괜찮을 거야. 훈이 분명 좋아질 거야."라는 말이 아니라, "너 잘못이 아니야. 그 어떤 이유도 없어. 그냥 이 일이 너에게 온 것뿐이야. 자책하지 않아도 돼."라는 말이었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다시 일어섰고 힘을 내어 여기까지 왔다.



  병원에서 만난 엄마들은 그 어떤 엄마들보다 강했다. 짜증 내고 불평하며 그 열악한 상황을 하소연하는 엄마를 보지 못했다. 겸허한 마음으로 묵묵히 아이들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뿜어내는 짜증과 분노는 어찌 보면 사치에 가깝다는 것을, 건강과 사랑 그 이외 것들은 모두가 욕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픔이 가득한 곳에서 무수히 깨닫고 배웠다. 그곳에 있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지켜주던 엄마들이 세상에 희망을 전하고, 또 누군가의 희망이 되어주며 살아갈 것을 나는 믿는다.




  우리가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함께 있음에 감사하며 그동안 당연하게 여기며 누려왔던 그 모든 것들에 감사하기를. 더욱 낮은 곳을 바라보며 겸허해지기를. 삶이 힘겨워지고 불평하고 싶을 때, 그곳에서 힘내어 살아가고 있을 그분들을 떠올리기를. 그들을 보며 흘렸던 눈물을 기억하기를. 그곳에서 찾은 내 삶의 우선순위를 항상 생각하기를. 그리고 많은 이들이 보내준 응원과 기도, 아낌없는 사랑을 절대 잊지 말기를. 나 또한 누군가의 희망이 되어 살아가기를. 그리고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이 날마다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마음을 다해 기도하며 오늘 하루도 힘차게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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