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5 니스에서의 특별한 체험
어제부터 보조배터리가 왔다 갔다 하더니 결국 가버렸다. 뜻하지 않게 스마트폰 디톡스하기로 했다. 지도도 최소한으로 보고, 사진 찍을 때만 폰을 꺼내 이용했다.
오전엔 향수 만들기 예약해 뒀는데 가기 전에 가이드가 소개한 최고의 크루아상을 찾아서~ 크루아상, 뺑오쇼콜라랑 커피 한잔 사 먹는데 눈이 번쩍하진 않지만 맛은 있다. 역시 맛집인지 내가 사고 나니 줄을 선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가 프랑스어였는데 성적이 그리 좋지많은 않았지만 발음은 자신 있는 편이었기에 이런 프랑스어로 된 메뉴를 주문할 때는 프랑스 발음을 최대한 써보았다. 잘 알아듣고 받아주시는 걸 보면 기분인 슬쩍슬쩍 좋아진다. 봉주ㅎ 같은 인사는 잘 알려져서 쓸 수 있지만 전에 동유럽 갔을 때 구텐모르겐이나 도브리단 같은 인사말을 현지어로 하면 현지어를 할 수 있는 줄 알고 현지어로 쏟아내는 경우가 많았어서 이때부터 인사말은 헬로나 굿모닝으로 하고 고맙습니다는 현지어로 했다.
향수 만들기는 아시아인은 나 혼자뿐이었지만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골고루에서 왔다. 선생님은 사샤인데 니스부심이 있다. 니스다음에 마르세유 간다니 왜 굳이 거기 가냐고 한다. 그리곤 니스에 6일 있다고 하니 조금 놀라신다. 니스 한 곳에 6일이면 충분히 길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향수의 기본 이론부터 시작하는데 향수에 익히 알고 있는 향유고래의 토사물부터 온갖 오물이 다 들어간다. 기본 베이스 향을 조합하고 원하는 향을 추가하는 방식인데 사람들이 만든 향을 맡아보고 어땠으면 좋겠다 하면 뭐 몇 방울, 뭐 몇 방울 딱딱 진단 내려주신다. 여러 향을 계속 맡으면 코가 둔해지니 코를 리셋시키는 용도로 원두가 담긴 병도 준비돼 있는데 원두의 강하고 중립적인 향이 코에 남아 있는 다른 향을 정리해 줘서 다시 새로운 향을 맡을 준비가 된다.
내가 그리 민감한 사람은 아니라 전적으로 선생님의 말을 따랐다. 마린계열 향을 선택했는데 기본레시피 용지를 주시면 거기에 따라 향을 조합한다. 약간 나무 같은 시원한 느낌이나 과일향을 추가했으면 좋겠다니 fig와 out 추가를 추천해 주셨다. 역시 아주 좋았다. 완벽하게 내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뭔가 더 추가하면 이상해질 것 같아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완성. 이름도 지으라는데 약간 중성적인 향으로 만들랬는데 결국 남성향수가 결과로 나와서 Man Always Man으로 이름 지었다. 사실 옆자리에서 진행했던 여자분의 향수가 더 맘에 들었다. 그 분 것은 진짜로 중성적인 향이 느껴졌다. 이 레시피로 엑스트라분도 추가 구매가능 하다고 해서 100ml 결제하니 5시에 오라고 한다. 유명 브랜드는 아니지만 여하튼 내가 맘에든 향수니 가치가 있기도 하고, 병에 메이드 인 프랑스라고 쓰여 있어서 꽤 좋아 보이기도 해서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12시에 끝났는데 꽃시장이 1시 까지라기에 서둘러 가서 라벤더 비누를 좀 샀다. 며칠 전 가이드가 비누샵에서 사는 것보다 시장이 가성비도 좋고 품질도 좋다고 했기 때문에 믿고 샀다. 차량용 포푸리도 사고 싶었지만 향이 얼마나 갈지 모르고 차도 많이 안 타니 자제하기로. 점심도 가이드추천의 점심특선을 먹으려 했는데 품절! 결국 리소토 시켰는데 특선의 거의 두 배 가격이다. 근데 여기 맛있긴 하다. 론조햄을 더해 풍미가 팡팡이고 양도 많아 점심특선에 대한 아쉬움이 사라졌다. 바다멍 좀 길게 할랬는데 느끼함이 가시지 않아 커피 마시러 갔다. 여기 커피는 와! 한 데는 없어서 오래 있기 맘이라도 편한 스타벅스로 향했다. 한두 시간 책 보고, ott보고 향수 찾으러 가니 대기하는 중에도 사샤가 말 걸어주고 친절하게 얘기해 줬다.
숙소 와서 씻고, 내일 체크아웃이라 짐을 싸두고 니스의 데미를 장식할 유로파리그 보러 니스 유니폼을 입고 알리안츠 리비에라로 향했다. OGC니스 상대는 레알소시에다드. 좀 일찍 나오긴 했지만 트램을 타는데 유니폼 입은 사람이 나밖에 없다. 이 무슨 기괴한 관경인가.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아시아인만 유니폼을 입고 돌아다닌다. 경기장 근처 역에선 유니폼 입은 사람 좀 보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비율은 적고 유니폼보다는 구단 재킷이나 머플러 걸친정도가 대부분이다. 응원석일 것 같은 자리로 예매했기에 트램 내려서 우르르 따라갔는데 엇? 내 자리 반대쪽이다. 예매 화면에서 왼쪽이 홈응원 국룰 아닌가? 다행히 메인 응원석이 아녔을 뿐 내쪽도 홈관중용이긴 했다. 홈응원이 꽤나 볼만했기에 오히려 잘됐다. 응원 열기가 엄청나다. 저녁을 제대로 안 먹어서 출출해서 콜라 너겟 세트 사 먹고 경기를 기다렸다.
와 이거 15유로짜리 자리 맞나? 제일 앞인데 축구 전용 구장이라 시야가 좋다. 보다 보니 앞에 그물이 있어 반대 골대 쪽은 잘 안보이긴 했다. 옆에 스페인 여자분이 앉아 레알소시에다드를 열심히 응원 중이다. 산세바스티안 근처 비토리아란 데서 왔단다. 레알 소시에다드팬이기에 20년 전쯤에 입단하자마자 레알마드리드 가고 싶다고 한 미친 한국선수가 있었다고 얘기해 줬다. 바모스를 외치며 담배 피우는 남자들하고 기죽지 않고 싸우는 게 파이터다. 결과는 1대1로 비김 아쉽지만 잘 봤다.
돌아가는데 지도엔 트램이 끊긴 걸로 나왔는데 경기날이라 그런가 트램이 늦게까지 운행한다. 경기장에서 사람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니 언제 탈 수 있을까 했지만 트램은 5분 간격으로 왔고 안전이 우선인지 너무 꽉 채우지 않아서 생각보다 빨리 탈 수 있었고 별로 힘들지 않게 귀가할 수 있었다.
숙소 도착하니 12시! 내일은 마르세유로 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