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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고 Dec 29. 2021

2번의 전학

다름과 특별함

<캐나다로의 전학>

    내가 캐나다의 한 초등학교로 들어가 교장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머리가 길고 곱슬이 아주 심한 금발 선생님의 뒤를 쫓아 반으로 들어갔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어렸을 때부터 낯가림이 아주 심한 내가 반 앞에서 모두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니. 내 심장박동 소리가 너무 커 모두에게 들릴 것만 같다.


    내가 개미 기어가는 소리로 내 소개를 간단히 하는 바람에 선생님이 대신 큰 소리로 환영의 박수를 촉구한다. 내 새로운 친구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과 작은 손바닥의 맞대는 짝짝 소리가 나를 반긴다. 쉬는 시간에 모두들 나에게 관심이 많아 와서 말을 걸고 자기 이름을 말해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학교에 언니와 나는 첫 동양인이었다. 지금 기억에 흑인도 한 명 없었으며 아마 그 친구들이 본 첫 동양인인 것 같았다.


    나는 금세 우리  인기스타가 되었다. 내가 특별히 유머러스하거나 친구들이 없는 장난감이 많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모두들 나랑 놀고 싶어 했다. 같은  친구 ‘ 내가 오늘 점심은 자기랑 놀기로 했는데  놀아준다며 오열을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모두 차례를 기다리다시피 하며 나랑 놀기를 원했다. 그런 관심이  버겁기도 했다. 모두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모두와  지내고 싶었다. 선생님이 책을 읽어주는 시간에 모두 오손도손 카펫에 앉는데 모두들 나와 앉고 싶어서  옆에는 항상 북적북적거렸다.


    사람들은 모르는  앞에서는 경계하고 긴장하기 마련이라고 들었는데 아니다. 경계와 긴장은 인간이 자라면서 수많은 경험과 실수들을 통해 발전시키는 일종의 본인 장치인가 보다. 하지만, 이렇게 어리고 순수한 영혼의 아이들은 모르는 것을 탐색하고 호기심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위험하지도 틀린 존재도 아니다.  마치 ‘특별하게 다른 친구였고 유일성 또한 있는 존재였다.  또한 나를 그들과 다르다는 것은 가슴속 깊이 알고 있었으나  ‘다름 특별하게 느껴져 으쓱했다.


<뉴질랜드로의 전학>


난 중1이고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한 고등학교에 서있다. 몇 번의 전학을 거친 나는 예전보다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 모두 앞에 서서 나를 소개하는데 몇몇 뒤에 있는 학생들은 키득키득 웃는다. 내 소개가 끝나자 나한테 질문이 쏟아진다.

“왜 발음이 미국인이야?”

“한국사람인데 왜 영어 잘해?”

“넌 그럼 국적이 뭐야?”

내가 밴쿠버에서 살아서 발음이 캐나다 발음이라고 설명하자 다들 나의 밴쿠버 발음을 따라 한다. (Vancouver, ver, ver.. ‘R’을 이렇게 굴리는 게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 뒤 내 별명은 캐나다인이었다.


    이들도 한국인 유학생은 익숙하다. 내 기억으로는 한국인 유학생만 총 20명 정도 되었던 것 같다. 크지 않은 학교였고 대부분의 한국인 학생들은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그리고 점심시간만 되면 다 같이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건물 앞에 모여 점심을 먹었다. 모두 학년도 다르고 고향도 다르지만 이 뉴질랜드의 작은 학교에서 작은 커뮤니티를 꾸리고 있다.

어렸을 때 이민 와서 소위 ‘키위’화(뉴질랜드 사람들은 자기를 키위라 부른다.)가 되어 외국사람들이랑만 어울리는 아이들 몇몇 빼고는 그 건물 앞에 모여 현지인들과 안 보이는 벽을 치고 그들만의 사회를 꾸리고 있다. 몇몇 아이들은 그 앞을 지나가며 특유의 동양인 조롱하는 눈 모양을 만들고 가기도 하고 모두가 먹고 있는 도시락 냄새가 역겹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기도 한다. 그럼 윗 학년 언니, 오빠들은 그들을 향해 중앙 손가락을 하늘 높이 빼고 맞대응했으며 상처받은 자존심이 조그마한 사회의 벽을 더 굳건히 세운다. 여기서는 모두들 서로를 향한 열린 마음과 호기심은 거의 사라진 듯하다. ‘다름’은 어울리기 꺼려지는 존재가 되고 때로는 상대방이 틀렸다며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왜 이리도 다를까? 물론 뉴질랜드의 인종차별은 북미보다 심했고 다양성도 부족했지만 과연 단순 나라 차이기만 했을까? 미국에서 나고 자란 형부도 한국말보다 영어가 훨씬 편하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동양인이다. 다른 인종 친구들이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은 사회에 나와서 일하면서 얻게 된 지인들이다. 내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불편함보다 대중 속에서 일종의 소속감을 느끼면서 얻는 위안과 평온 때문일까? 매슬로의 욕구의 단계에서 나오는 ‘애정과 소속의 욕구’가 채우기 위한 과정 속에서 나오는 당연하고 지극히 평범한 현상인 것일까?


    어렸을 때 다른 것이 특별하다고 여겼던 소녀는 언제부터 그 특별하다는 소중한 마음을 잃는 것일까? 나는 뉴질랜드의 한 고등학교의 ESL건물 앞과 현지 친구들이 노는 교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방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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