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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고 Jan 03. 2022

조각된 성격

같은 뱃속에서 나왔는데 어쩜 성격이 하나도  닮았는지 서로 의아해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언니는 나보다 모험적이고, 즉흥적이며 에너지를 외부로 발산하는 외향적인 사람이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꾸미는 것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고 공부보다는 사람을 좋아했다. 어렸을  언니는 여러 가족이 같이 놀면 항상 다른 가족의 차를 타고 싶어 했고 부모님이 허락하면 쏜살같이 달려가곤 했다. 너무 매번 다른 차를 타고 싶어 하는 언니를 부모님이 혼내도 소용없었다. 언니가 친구 차를 타고 가면 나는 뒷좌석에 혼자 앉아 앞자리에서 흘러나오는 부모님의 푸념을 듣고는 했다.


“쟤는 왜 저러는지 몰라! 맨날 친구 너무 좋아해서 따라다니고! 맨날 남의 차 타는 애는 쟤 밖에 없어!”


그런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고 있으면 괜히 남의 차를 타지 않고 뒷좌석에 앉아있는 내가 잘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부모님 칭찬을 받고 싶은 나는 그 뒤로도 남의 차를 타고 싶어도 말하지 않았다.


언니와 나는 학습지를 매일 풀고는 했는데 친구와 놀러  생각에 정신이 팔린 언니는 학습지 선생님 오시는 당일에 허접 지겁 밀린 숙제를 풀었다. (엄마의 잔소리는 BGM) 나는 그런 언니를 보며 밀리지 않고 학교에 다녀오면 매일 학습지를 먼저 풀고 놀았다. 엄마는 지금도 내게 말한다.


“넌 어려서부터 미루지 않고 숙제부터 딱! 하고 놀고! 보통 애가 아니었어.”


언니는 유난히 갖고 싶은 것도 많고 입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였다. (욕심꾸러기!) 조르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엄마한테 사고 싶다고 10 말하면 엄마도 이내 마음이 약해져 사주곤 했다.

IMF로 사업이 어려워져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작아진 집의 평수와 이 집이 우리 집이 아닌 전세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고 있었다. 나는 항상 마지못해 카드를 꺼내는 엄마를 보며 사달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 엄마는 나한테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너는 어려서부터 갖고 싶은 게 많이 없었어. 사달라는 말을 거의 한 적이 없어. 가끔 보면 애늙은이 같았다니까.”


어디 가서 상처도 많이 받고 눈물도 곧잘 흘리는 언니는 부모님이 항상 걱정하셨다.


“쟤는 나중에 저렇게 연약하고 순수해서 어떻게 살려는 지 몰라.. 걱정돼 죽겠어. 나이 들어서도 쟨 내가 엄청 필요할 것 같아. 부모를 필요로 하는 언니가 미국으로 시집가버리고 혼자서도 잘 사는 네가 한국에 있게 된 게 아이러니 아니겠어. 너는 이렇게 똑 부러지고 강인한데 말이야.”


집에서는 혼자서도 척척 잘하고 강인하며 자신감 넘치는 (넘쳐 보이는) 나는 나도 엄마가 필요하고 상처를 받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감정을,  욕구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언니는 곧잘 이야기했고 때로는 욕을 먹고 혼나기도 했지만 공감을 받기도 했고 위로도 받았는데 나는 엄마의 표정을 살피며 내가 사랑받는 길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어린 눈에도 가정의 경제사정이, 부모님의 고민이 내가  욕구를 나열할 군번이 안됨을 직감하곤 했다. 나도 가끔은 친구 차에 타고 싶고 학습지가 좋아서 매일 푼 게 아니고 갖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였다. 아기 짓도 판만  깔아주면 잘할 자신 있었는데…(부모님은 내가 남편한테 하는 아기 짓을 보며 아직도 경악한다)


물론 둘째라고 모두가 첫째와 다른 성격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언니가 친구 차로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 따라 뛰기도  것이고 같이 학습지를 미루고, 사달라고 합창을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부모님에게 유난히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강해 언니를 보며 때론 반대로, 때로는 따라 하며  성격을 조각해 나갔다. 돌이켜보면 언니가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에 의해서도 아닌,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욕구와 감정을 과감히 드러내는 자유를 언니는 어려서부터 느끼지 않았을까? (물론 언니한테 물어보면 언니 나름의 고충을 길게 늘어트릴 테지만)


    과연 부모가 자식을 잘 안다는 게 진리일까? 부모님은 내 진정한 성격을 알고 자신 뱃속으로 낳은 나의 욕구나 감정을 잘 알아차릴까? 가끔은 부모가 가장 자식에 대해 눈이 멀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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