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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고 Jan 21. 2022

임테기의 두줄

엄마가 된다는 두려움

신혼 3년 차에 임신 소식을 마주하고 나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티브이에서 보면 신테스트기 두줄을 보며 기쁨의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는 하던데 그것과는 거리가   감정이 만나지 않은  뱃속의 존재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평소에 그다지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엄마로  용기가 안나 덜컥 겁이 났다.  이름은 지워지고 애엄마 이름표로 살아가야 하는 위기감을 느꼈다.


엄마와 아빠는 불공정, 불평등, 인맥, 학벌, 출신으로 얼룩진 시대를 살아오셨다. 그 속에서 받은 상처와 쓰라린 기억들은 다른 삶을 선사해주고 싶은 부모님의 꿈이 되었고 그 꿈을 자식들에게 투영했다. 지금도 사회의 불공정이란 존재하긴 하지만 그때만큼 노골적이진 않을 터. 본인들의 상처가 크기에 자식들을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이지 않게 무던히 훈련시켰다. 그것이 그들의 사랑 표현이었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부모님은 자신을 드러내고 아이를 가슴에 넣고 살았고 그걸 보고 자란 나는 서서히 나를 비우고 부모님의 기대와 꿈을 온몸에 넣고 살았다. 그 누구도 개별화되지 않은 채 뒤엉켜 풀 수 없는 매듭같이 어지러웠다. 조기유학과 기러기 아빠 붐의 파도에 올라탄 나는 조금씩 조금씩 부모님의 꿈이 담기기 시작했다.


보통 남편의 성을 따르는 서양문화에서 아빠 없이 가족이 사는 데다가 엄마와 내가 성이 다르니 모두들 이혼했다 생각했다. 한국은 이혼율이 높냐며 학교 선생님이 나한테 물어본 적도 있다. 가족이 온전히 유학 끝까지 지켜지는 경우가  많기는 했지만 가족의 해체도 많이 보았다.  친구는 아버지가 한국에 외로이 홀로 있다가 바람이 나서 어머니가 유학을  접고 돌아갔으나 가정은 이미 파탄이  후였다. 돌아간  친구도 크나  상처를 입었다. 반대로 어머니가 외국에서 바람나  년간의 피눈물 나는 외로움을 견디던  아버지는 배신감과 분노에 사로잡혀 비행기 타고 칼부림을 이르킨 적도 있다. (그리고 그는 추방당했다.) 욕망과 꿈으로 시작된  가족의 웅장한 모험은  한인사회를 시끄럽게 하는 가십거리고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 강렬한 욕망과 희생 속에서 한국 특유의 기형적인 가족형태가 아슬아슬하게 90년대부터 한국의  축을 지탱하고 있다. 다행히 우리 부모님은 돈독 전우애를 유지하셨지만 그런 희생의 기운은 우리 집안의 공기를 지배했고 가끔 숨이  막혔다. 기대의 시선과 나의 성과에 일희일비하는 부모님 표정이 어디든  뒷모습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녀 좌절할  없었다. 벗어날  없었다. 부모님도 나도  아무도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없는 10대를 보냈다.

    

내가 겪은 부모 됨이란 자발적인 가족 해체를 할 만큼, 매달 돈을 벌어 유학비를 대며 나 홀로 외로움을 견딜 만큼, ‘희생’, ‘사랑’, 혹은 ‘열망’의 시작이었다. 적어도 내가 본 바로는 그랬다. 내 삶의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 같은 크나 큰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내 앞에 놓인 이 작고 기다란 물체가 내가 이미 부모가 되었음을 뚜렷하게 알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새로운 부모상을 개척 중이다. 의식적으로도 나의 욕구를 아이의 욕구보다 앞세울 때도 있다. 육아는 나의 삶의 일부일  전부가 아니란  되새기며 살아간다. 개인 시간을 위해 비용을 지불하며 육아 도움을 받기도 하고 여행도 종종 떠난다.  달에 한두번은  남편과 단둘이 데이트도 즐긴다. . . 벨을 열심히 지키면서 육아는 양보다는 질이라며 셀프 위로도 열심히 한다. 마치 육아계의 이단아 같은 기분이 종종 들어 불편해지기도 하지만 불편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이는 나의 여행 같은 삶에 같이 동반해서 손잡고 걸어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주인공인 삶을   아이도 스스로 주인공인 삶을 상상하며   있다. 엄마의 삶이 절절한 슬픈 영화가 아닌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비추어 지기 바란다. 나의 삶이 한겨울의 단골 장르인 절절하고 먹먹한 발라드가 아닌 하나하나의 음들이 불규칙 속에 규칙을 찾는 춤처럼 위트가 있는 재즈이길 바란다. 그런 편안한 공기 속에서 엄마의 삶을 걸어가는  보면서 우리 아이도 평온함 속에서 본인이 주인공인 삶을 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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